미국은 왜 이라크라는 수렁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하는가.

미국을 위한 충고 2

등록 2007.06.09 16:42수정 2007.06.0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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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는 대규모의 침공군에게 두 번 점령당적이 있다. 1258년 몽골과 2003년 미국의 침공이 그것이다. 약 750년의 시차만큼이나 두 사건의 전후(戰後) 처리는 상당히 다르다. 몽골은 가혹한 점령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저항에 직면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미군의 점령 후 저항세력의 반발은 끝이 없어 보인다. 무엇이 이 같은 차이를 만드는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슬람세계에 비친 몽골과 미국의 이미지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몽골은 이슬람정복지에 자신들의 전통이나 가치를 강요하기보다는 오히려 몽골군주들이 솔선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몽골의 전통법 대신 이슬람법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이슬람에게 몽골군은 오아시스를 점령하려는 또 다른 사막의 경쟁자로 받아들여졌을 뿐이었다. 이에 비해 미군에 대한 인식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명분아래 군사작전을 문명과 테러의 충돌로 색칠하려는 앵글로색슨계 이교도들이 자신들의 땅에 ‘제2의 십자군’을 보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이슬람인들은 이슬람전사가 되어 성전에 참여하는 것이 “이슬람인의 의무”이며 “내 한 목숨 던져서 가능한 한 많은 미국인들을 죽이는 게 나의 유일한 소망”이라고까지 말한다. 또 “탈레반이나 후세인은 힘이 없지만 이슬람은 강하다”고 하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침략자에 대해 한 자루의 소총이나 이것마저 없을 때는 한 자루의 칼에 의지해 싸워왔다”고 주장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도 “세계도처에서는 도끼에서부터 로켓트포까지 각종 잡다한 무기를 갖춘 수천, 수만 명의 이슬람전사들이 미국을 상대로 성전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이 대테러전쟁을 세계 각 지역으로 확대시키고 최신예 전력을 대규모로 사용하면 할수록 미국을 증오하는 모든 이슬람세력들은 금단의 산 속이나 건물의 숲 속 또는 사막의 바다로 깊숙이 들어가 장기적인 원시적 형태의 전투를 펼치면서 마치 모택동의 공산게릴라들이 장개석의 국부군을 괴롭히듯 자기들의 방식대로 미군을 실컷 골려주게 될 것이다.

한 예로 2004년 11월 10일 이라크 팔루자의 한 모스크에서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잘 훈련된 보이지 않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저격수 때문에 미 제1해병원정대 8연대 1대대 B중대의 공격이 하루 종일 좌절된 적이 있다. 견디다 못한 미 해병대는 500파운드 폭탄 투하를 포함하는 근접항공지원과 155mm 곡사포의 일제사격, 10발의 M1 에이브럼스전차포사격, 3만여 발의 자동소총사격 등을 퍼부었지만 상황은 현장을 취재하던 뉴욕타임스의 덱스터 필킨스 기자가 쓴 대로 “그럼에도 저격수는 여전히 사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최첨단 3세대 전차와 공격헬기 보유량 세계 1위라는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미 지상군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강이다. 1개 사단이 다른 강대국의의 군단보다 더 강하다는 미 지상군이 이라크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슬람저항세력의 비대칭 공격 앞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미국이 아무리 막강한 기계화사단과 최신예 항공모함 및 전폭기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졌든 그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또 그들이 자랑하는 최첨단 특수전 전력도 인명피해만을 고려한 치고 빠지기 식의 특공작전으로는 자살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반미 이슬람세력의 유격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없다. 이는 근본적으로 인디언토벌전쟁에서부터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전쟁방식이 지나친 과학기술 및 보급에 대한 의존성, 화력 위주의 대규모전, 비정규전 경시 및 정규전 위주의 고착된 사고 등에 기인하는 것이긴 하나 그보다는 상대방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현상이 더 심각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침공 이후 힘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전 세계국방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를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이라크 침공 2년 만에 월남전 전비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를 사용하고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두 개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이 테러와의 전쟁 5년을 맞아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2006년 7·8합본호에서 테러리즘 전반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는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 군사령관, 정보책임자 등을 지낸 전직 관료와 학계 및 언론계의 외교정책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평가는 정치성향과는 무관하게 놀라우리만치 일치했다. 무려 84%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86%는 전쟁 이후 오히려 미국이 더 위험해졌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이미 2006년 1월 25일자 뉴욕타임스와 USA투데이가 펜타곤의 의뢰로 작성된 중동정세분석문건을 토대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미군이 와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한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136쪽에 달하는 이 분석보고서는 두 나라에 주둔 중인 미군이 저항세력의 잦은 공세로 임무를 온전히 수행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와해’, ‘붕괴’ 등의 강한 어휘를 사용해 미군이 위기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중동파견을 위한 신병모집도 한계에 부닥쳐 새로운 인력의 충원이 어려워 졌기 때문에 이 지역 주둔 미군의 피로도가 감당할 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며 미군이 바그다드에 입성한 2003년 이후 줄곧 “미군의 이라크점령은 전 지역평정이 아닌 점과 선을 잇는 부분평정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추산에 따르면 전체 미군 가운데 육군·예비군·방위군·해병대·특전대 등 지상 작전이 가능한 인원은 약 80만 명 선이지만 50만 명 가량이 훈련, 보급, 물류업무를 맡고 있어 실제 전투원은 최대 30만 명 선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30만 명도 행정인력을 포함한 수여서 실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18만 명에 불과하다는 게 CSIS의 분석이다. 따라서 이라크 내 미군 15만 명은 비전투원이 포함된 수임을 감안하더라도 지상전투원을 싹싹 긁어모은 것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은 이라크에서 활약하고 있는 용병과 민간 군수업자 등이 10만 명에 달하고, 전 세계 어느 곳이든 18~72시간 이내에 급파될 수 있다고 호언장담(豪言壯談)해 온 미국 신속배치군의 핵심인 82공수사단까지 훈련이나 보급 등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다시 이라크로 출동명령을 부여받은 데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전쟁을 시작할 능력은 있어도 완전한 승리를 만들어 낼 힘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히 로마제국에 비견될 수 있는 현대판 조공체계를 작동시키기 위해 미국은 자신의 대리인인 이스라엘을 통해 이란이라고 하는 또 다른 주사위를 던지려하고 있다. 쇠퇴의 길에 접어든 패권국가는 예전의 위상을 지키려고 무리한 군사적 팽창정책을 남발함으로써 오히려 국력의 약화와 패권의 쇠퇴를 가속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군산복합체를 위한 이 같은 파시즘의 광란은 결국 종말을 향한 제국의 전성기에 불과할 것이다.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러시아원정을 감행함으로써 몰락을 자초했다. 1941년 히틀러는 나폴레옹의 실패의 원인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나폴레옹의 전철을 밟으므로 써 결국 그와 똑같은 운명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왜 이 같은 일이 발생 하는가. 그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을 진실로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과신하는 오만함 때문이다.

연속적인 성공에 도취된 히틀러는 자기는 나폴레옹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며, 미국도 자기는 자기들이 거꾸러트린 적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전쟁만큼 우연이라는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것도 없다고 하지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불완전한 승리를 바탕으로 ‘대테러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전쟁을 전 세계로 확대시키려한다면 행운의 여신은 더 이상 욕심쟁이에게는 미소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현재 미국은 15세기 스페인이나 20세기 초반 영국이 맞부딪친 것과 유사한 “제국주의적 과잉팽창”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두 나라 모두 도저히 다룰 수 없을 만큼 전략적 개입을 남발했기 때문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제국은 소화불량으로 사망 한다”고 한 나폴레옹의 말처럼 미국은 씹을 수 있는 능력보다 너무 많은 것을 입에 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외교정책이 계속해서 장군들과 제독들에 의해 만들어 진다면 미국도 나폴레옹의 경고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불과 2백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렇게 순식간에 팽창한 제국들은 그 수명이 결코 길지 못했다. 일찍 핀 꽃은 빨리 시들게 마련이다. 미국이라고 이러한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미국은 멈출 줄 몰랐던 역사의 수많은 정복자들의 비참한 실패를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오직 그들의 전철을 다시 밟는 비극의 악순환만 되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월간 군사저널 2007년 4월호에 게재됐던 것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월간 군사저널 2007년 4월호에 게재됐던 것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테러와의 전쟁 #제국의 전성기 #파시즘의 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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