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아도 한국 수출규정엔 신경 안 씁니다

[칼럼] 김종훈 FTA 수석대표님, 미국 소갈비가 '내수용'이라고요?

등록 2007.06.11 00:28수정 2007.06.1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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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소속 강기갑, 홍문표, 최규성, 김낙성 의원이 지난 5월 31일 기도 용인 유상냉장 냉동창고를 방문해서 뼈를 발라내지 않은 채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소속 강기갑, 홍문표, 최규성, 김낙성 의원이 지난 5월 31일 기도 용인 유상냉장 냉동창고를 방문해서 뼈를 발라내지 않은 채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a 김종훈 FTA 수석대표(자료사진).

김종훈 FTA 수석대표(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7일, 대표께서는 수출규정을 위반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참석해 'FTA 재협상 가능성'을 거론하는 가운데 나온 말이었습니다. "미국 내수용으로 쓰일 갈비뼈 섞인 쇠고기가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아는데, 미국 내수용은 먹으면 안 되는 고기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더군요.

저는 대표의 발언을 전해 듣고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종훈 대표께서는 스스로도 '검역 라인이 아니다'라고 밝힐 만큼 쇠고기의 안전성과 검역조건에 대해 잘 알고 계시지 못합니다. 그런 분이 왜 그런 무모한 (하지만 중대한) 발언을 하셨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선두에서 지휘하고 계신 분입니다. 쇠고기 전면 수입을 줄기차게 요구해 온 미국축산업자들은 대표의 발언에 환호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쇠고기 전면 개방'에 대한 요구도 한층 더 거세어질 것입니다.

'뼈섞인 미국 내수용 쇠고기는 먹으면 안 되느냐'는 대표의 주장은 곧 '뼈있는 쇠고기의 수입뿐 아니라, 현재 30개월 미만으로 규정된 쇠고기의 연령제한 철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대표는 협상이 진행되던 당시 '우리 측의 전략이 노출되면 안 된다'는 이유로 협상내용에 대한 최소한의 공개요구조차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FTA재협상'을 언급하는 자리에서 이와 같이 스스로 협상단과 보건당국의 입지를 좁히는 발언을 자청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뼈없는 30개월 소"→"뼛조각은 뼈 아냐"→"뼈가 문제냐"

그 동안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태도는 한국이 주권국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수치스러운 태도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난 해 광우병 발생 이후에도 미국은 계속해서 쇠고기 수입 압력을 넣었고, 결국 한국정부는 '뼈없는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라는 최소한의 단서를 붙여 수입을 재개했습니다.

이후 수입쇠고기에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었고 미국산 쇠고기가 남자태아의 정자 수를 줄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호르몬 잔류치는 검역 조건으로 고려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a 한미 FTA범국본 소속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국민감시단 회원들은 지난 5월 31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앞에서 미국산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한미 FTA범국본 소속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국민감시단 회원들은 지난 5월 31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앞에서 미국산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뼈없는 쇠고기에 한해서 수입을 허가한다'는 협상내용은 대표께서 지휘하고 있는 한미무역협정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한국의 양 정부가 합의하고 서명한 국가간의 엄밀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선적된 쇠고기부터 반복적으로 규정을 위반한 뼛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살코기에서 뼛조각이 검출되었다는 것은 해당 작업장이 도축과정에서 살코기로부터 위험물질을 안전하게 분리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협상조항에 따라 한국이 수입중단을 결정한 것은 당연하고 타당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뼛조각은 위험물질이 아니다'라는 핵심에서 벗어난 주장으로 수입재개를 종용했고, 한국정부는 이에 굴복하고 다시 수입을 시작했습니다. '뼛조각은 뼈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한국 관리의 입에서 나오고, 뼛조각이 나온 상자만 돌려보내겠다는, 협상내용을 스스로 무시한 양보안이 제시된 후였습니다.

얼마 후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통제 위험국(controlled risk)' 발표가 있자마자 한국 관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입조건을 개정할 것"이라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추석 이전에 갈비 수입도 가능할 것"이라는 '사견'을 내놓는 관리도 있었습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 "강제적 구속력이 없는 결정으로 수입조건 완화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일본 등의 다른 나라들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습니다.

한국 관리가 무시하는 수입조건, 미 수출업체가 지킬까요?

며칠 후 대표적인 제조업체인 카길과 타이슨의 두 업체는 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채 70톤에 가까운 갈비뼈를 수출검역증과 함께 한국에 발송했습니다. 해명을 요구하는 한국정부에게 미국이 내놓은 답은 "인간적 실수"로 "내수용이 수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말 한 마디였습니다.

얼마 후 '뼈가 포함된 미국 내수용은 먹으면 안 되는 고기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김종훈 대표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대표의 발언이 있은 다음 날, 정부는 화답하기라도 하듯 검역보류 해제조치를 내렸습니다.

a 미국에서 발견된 광우병 감염소. 미국에서는 지난해까지 세 건의 공식적인 광우병 사례가 확인되었으나, 광우병 증세를 포함해 비상적인 증상을 보이는 상당수의 소들이 아무런 조치도 없이 도살되어 식용으로 유통되고 있다.

미국에서 발견된 광우병 감염소. 미국에서는 지난해까지 세 건의 공식적인 광우병 사례가 확인되었으나, 광우병 증세를 포함해 비상적인 증상을 보이는 상당수의 소들이 아무런 조치도 없이 도살되어 식용으로 유통되고 있다. ⓒ USDA

솔직히 말씀드리면, "내수용이었다"고 미국당국이 '해명'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8년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저로서는 미국의 식품점에서 갈비뼈 붙은 쇠고기를 보기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인상점이 아닌 한, 소갈비는 꼬리와 다리처럼 미국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 부위에 속합니다.

소비자단체는 물론, <뉴욕타임즈>까지 나서서 뼈와 함께 요리하는 것은 물론, 뼈 근처에 붙은 고기는 피하라고 당부하는 게 미국사회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미국에서 잘 먹지 않는 '내수용' 갈비는 미국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위험한 방식으로 조리되어 한국인의 식탁에 오를 것입니다. 갈비찜과 갈비탕만으로도 뼈 속에 들어 있는 광우병 위험물질 프리온을 남김없이 우려내는 데 모자람이 없습니다.

코넬대학교 마이클 그레거 박사의 보고서('U.S. Continues to Violate WHO Guidelines for BSE')는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안전규정을 어떻게 무시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광우병이 세 차례나 발견된 이후에도 미국의 송아지는 여전히 소의 피로 만든 사료를 먹고 자라고, 폐사한 소로 기른 가금류의 배설물 및 도살 후의 잔여물질로 사육되며, 도살과 처리 과정에서는 광우병 위험물질이 살코기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도축업체들은 서거나 걷지 못하는 등 비정상적 행동을 보이는 소들까지 합법적으로 도살해 판매하고 있으며, 1% 미만에 지나지 않던 광우병 검사조차 90%를 줄임으로써 사실상 광우병 검사를 폐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FTA와 관계없는 쇠고기 수입에 왜 관심을 보이시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이미 허술한 조건으로 재개한 쇠고기 수입절차마저 스스로 무시하는 행태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 목축업자나 정부라면 한국에 수출하는 쇠고기의 안전규정준수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심각한 위반에도 실사과정도 거치지 않고 상대의 구두해명만으로 수입을 재개하는데, 뭐가 두려워 규정을 준수하겠습니까? 게다가 한국 정부의 관리들이 규정 위반을 오히려 규정완화를 계기로 만들어주는데 말입니다.

김종훈 대표께서는 '쇠고기 수입은 FTA와 관계없다'고 늘 강조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쇠고기 수입에는 왜 그리 많은 관심을 보이시는지요?

미국은 협상 과정부터 "쇠고기의 완전한 개방 없이 FTA 비준은 없다"고 공언해 왔습니다(그 전에는 "쇠고기 개방 없이 FTA협상 시작은 없다"였지요. 쇠고기 개방'의 의미도 '수입재개'에서 '뼈와 내장을 포함한 쇠고기 수입'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한 마디로 쇠고기 수입 없이는 FTA '협상시작'도, '협상비준'도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고, 한국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정부가 FTA 협상일정에 따라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것처럼, 앞으로 비준 일정을 맞추어 검역조건을 완화하리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조건완화'라고 하지만, 사실 완화할 조건도 별로 남아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김종훈 FTA 협상 대표께서 '내수용 쇠고기 수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종훈 대표께서는 쇠고기 이외에 'FTA와 관계없는' 또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스크린쿼터 축소와 대미 영화수출입 불균형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에 대해 "미국인이 볼 영화를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압력만으로 추출물량을 늘리려는 미국 쇠고기수출업체를 향해서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안전기준을 준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일갈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 지난 4월 1일 환경운동연합은 한미FTA 협상 저지와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를 요청하는 긴급퍼포먼스를 벌였다.

지난 4월 1일 환경운동연합은 한미FTA 협상 저지와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를 요청하는 긴급퍼포먼스를 벌였다. ⓒ 조한혜진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대정부 신뢰도 여론조사가 보여주고 있듯, 한국 국민들이 정부 관리들에 대한 기대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잘 살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몸 하나 건사하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면 됩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인지요?

미국과 싸워 대단한 것을 얻어내라고 부탁하지도 않겠습니다. 이미 합의한 "뼈 없는 30개월 미만의 소"라는 쇠고기 수출조건이라도 지키도록 해 주십시오. 이미 약속한 쇠고기 수출 규정조차 지키지 않는 터에, FTA가 비준된다고 한들 미국이 그 내용을 준수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미국을 향해 규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해야 할 한국의 관리가, "뼈가 든 내수용 쇠고기는 못 먹는 고기냐"고 도리어 국민들에게 반문하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은 참담해집니다. '한국의 관리들은 자국민보다 미국인의 이익수호에 더 관심이 많다'는 냉소적 반응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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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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