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 사이에서 진짜 여행을 시작할 시간이었다.김종휘
불안해?
초고를 마치고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다음날 그렇게 물었다. 뭐가? 내가 출가할까봐. 니 입으로 그랬잖아. 내가 출가할 것 같아? 아내는 웃음을 참으며 수수께끼를 내듯 자꾸 물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아내는 말했다. 출가 안 해. 이번 생은 너랑 잘 사는 게 내 업이야. 다음 생에 또 인간으로 오면 그때 출가할게. 걱정 마.
나는 나를 걱정해야 했다. 바바 여행을 마치고 원고도 마쳤으니 그간 느끼고 생각하고 글로 쓴 그대로 나의 어떤 생활 태도를 마쳐야 할 때였다. 인생의 전반과 후반 사이에서, 땅과 바다 사이에서,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너와 나 사이에서, 머리와 발 사이에서,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에서 진짜 여행을 시작할 때였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소리친 좀머 씨의 말대로 이제는 내가 날 그냥 놔둬야 할 차례였다. 나는 원고를 마무리할 즈음 다시 일을 했다. 기획하고 가르치고 글 쓰고 방송하는 나날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나 그 일들이 조금은 다른 의미가 되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일에 파묻혀도 일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했다.
좀 더 보태고, 좀 더 완벽을 기하고, 좀 더 진도를 나가고, 좀 더 성과를 내고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일을 하다말고 중간에 밖으로 나가 그냥 걷다가 돌아오는 때가 늘어났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다시 바바 여행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불안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내가 내가 아닌 채 살아가는 것 같은 심증의 소란들.
배꼽!
바바 여행 후 해를 넘겨 이사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요즘 아내와 나는 그럭저럭 평온하다. 아내는 얼마 전 삭발을 했다.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쥐 파먹은 것 같은 까까머리를 한 아내가 씨익 웃고 있었다. 정말 웃겼다. 내가 머리를 깎을 때 쓰는 전기 '바리깡'으로 아내 혼자 삭발을 한 것이다. 뒷머리 곳곳에 머리칼이 삐죽삐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