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마당에서 문규현 신부님을 비롯한 생명평화 마중물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송성영
며칠 전 우리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사)생명평화 마중물 사람들입니다. 문규현 신부님을 비롯해 서울, 대전, 전주, 인천에서 여러분들이 오셨습니다. 우리 집에 있는 가지가지의 탁자와 의자들을 총동원해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집에서 기른 채소와 가마솥에 펄펄 끓인 감자탕과 떡을 준비했는데 식탁은 그 이상으로 푸짐했습니다. 어떤 분은 과일이며 수육을 준비해 오셨고 또 어떤 분들은 막걸리에 맥주와 오량예라는 술까지 준비해 오셨습니다.
(사)생명평화 마중물은 그 삶터가 있는 전북 부안에서 주로 모임을 하는데 가끔 회원들 집을 돌아가며 만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서울과 부안의 중간쯤에 자리한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던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해 놓고 만난 것도 아니었고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의무 사항도 없었습니다. 그냥 시간 나는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우리 가족이 마중물 식구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겨울, 서울 모임에 참석했다가 얼떨결에 마중물 식구가 된 것입니다. 그날 회원도 아닌 나는 이웃사촌인 정한섭씨의 손에 이끌려 농사에 대한 얘기를 함께 하자는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나처럼 대부분 초보 농사꾼들이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본래 낯선 자리에 서면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촌놈이었기에 무척 힘든 자리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날 마중물 사람들은 "어디에 살든, 직업이 무엇이든, 모두가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키우는 농부의 정신, 농부의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함께 했습니다.
문규현 신부님과 더불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었기에 한동안 세상일에 등지고 살아온 나로서는 여러모로 빚진 기분이 들어 부담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나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규현 신부님의 걸어온 길이 그러하듯 마중물이라는 모임이 뒤틀린 세상을 바르게 되돌려 놓겠다는 어떤 심각한 대화들이 오고갈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내 예상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절망적인 농촌현실을 바꿔보자는 어떤 '결의에 찬' 얘기도 없었습니다. 심각한 대화보다는 가벼운 대화들이 더 많이 오고 갔습니다. 무엇보다 실천이 중요하니까요. 거기다가 어린아이처럼 회원들 사이를 기웃거리고 다니며 커피 잔을 나르는 신부님의 격의 없는 모습에 비로소 긴장된 마음을 풀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 자신조차 예상치 못하는 말들이 툭툭 튀어나오곤 하는데 그날도 역시 느닷없이 손을 번쩍 들고 말았습니다.
"저기요, 회원 가입은 아무나 할 수 있남유?!"
다들 박장대소로 신입회원을 환영했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아마 내 얼굴은 홍당무처럼 발갛게 달아올랐을 것입니다.
토요일 오후, 우리 집에 느지감치 찾아온 마중물 식구들은 닭장도 둘러보고 장독대와 앵두나무가 삼삼하게 서 있는 집 뒤 뜰이며 채소밭을 둘러봤습니다. 며칠 전부터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음식을 장만하면서 마냥 들떠 있던 아내는 도시에서 버림받은 재활용물품으로 꾸민 집 구석구석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