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불출마 선언'과 '묻지마' 통합론

국민이 원하는 건 통합 아니라 노무현 넘은 새로운 세상

등록 2007.06.13 16:11수정 2007.06.1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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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불출마를 선언한 김근태 의원이 13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국민경선의원모임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근태하면 현 정치권에서 몇 안 되는 깨끗한 정치인이자 소위 진보개혁세력의 대표주자로 평가받아온 인사다.

이런 점에서 그가 던진 '불출마 선언', 즉 '기득권 포기선언'은 일정부분 향후 범여권 통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원칙도 대의도 없는 '묻지마 통합론'

그러나 그의 이런 비장함이나 진정성과는 전혀 별개로 그가 헌신하고자 하는 '대통합'이라는 아젠다에는 근본적으로 어떤 시대정신이나 당위성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의 이런 희생이 국민들의 지지로까지 연결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왜냐하면 애초 통합은 대세도 국민의 요구도 아닌 단지 국민의 이름을 빙자한 '구 열린우리당' 세력의 아전인수격 헤쳐모여의 자의적 목표설정이기 때문이다. 다수 국민들은 오로지 누가, (지금 노무현정부와는 다른) 어떤 다른 세상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 있을 뿐이다.

김근태의 이번 성명에는 언론의 분석대로 대략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첫째, 유시민·김두관·신기남·김원웅·김병준 등 열린우리당 친노 당사수파 배제, 둘째로 '반한나라-비노무현'으로의 통합 범위 규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놓고 보면 이러한 통합이 개인적 호불호 이외에 도대체 어떤 대의를 담고 있는지 매우 모호하다.

'반한나라-비노무현' 하자면서 단지 탈당의사를 비추고 있다하여 이해찬, 한명숙, 김혁규 등 대표적 친노인사들을 통합의 대상으로 넣고 구애하는 것 자체가 이미 상호 충돌하는 모순이다.

또한 손학규 문제에 이르면 도대체 통합의 원칙과 목적이 무엇인지 부쩍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손학규가 누군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의 적자이자 대표적 간판 스타 중의 하나였다.

이런 고무줄 원칙이라면 향후 만에 하나 이명박-박근혜 둘 중 어느 하나가 경선결과에 불복하여 탈당한다면 자칭 '민주개혁세력'의 간판으로 내세울 수 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반한나라 연대'라는 기치 자체가 머쓱해지는 '이현령비현령'식의 통합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자칫 김근태의 살신성인은 각 대권주자들의 자의적 해석과 이에 따른 자파 세력불리기, 즉 김근태 세력을 흡수하려는 각 세력간의 각축전의 또 다른 양상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또한 '친노직계'를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 사수파들에게는 명분과 원칙을 앞세워 역공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반한나라 연대의 본질

직시해보자. 현 범여권의 통합론이 그 출발부터 위와 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통렬한 '자기부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를 계승하자는 것도 그렇다고 부정하자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단지 국민의 신망과 지지를 잃었으니 일단 난파선에서 뛰어내리고 보자는 식의 기회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어떻게든 자신들의 정치생명은 연장해야겠기에 나온 궁여지책이 바로 '반한나라 연대'이다.

즉 이 전략은 한나라당이 지난 4년 내내 노무현 정부와 의도적 대립각을 세워 자기 세력의 결속과 반사이익을 챙겨왔던 '주적개념'의 방법을 그대로 모사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것도 집권여당이었던 세력이 (설령 지금 아무리 한나라당이 지지율이 높다고 해도) 현재 집권당도 아닌 일개 야당을 향해 내건 구호치곤 참으로 궁색하기 짝이 없는 선동정치의 극치다.

참으로 편리한 발상이다. '반한나라당'을 외치는 순간,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자기부정은 완전히 소멸하고 지난 4년간의 모든 잘못에 대하여 자신들 스스로가 면죄부를 주면서 모든 탓이 오로지 한나라당 때문이며 한나라당만 없어지면 자신들의 무능도 잘못도 모두 상쇄될 것이라고 호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만약 지난 4년간 한나라당이 집권당이었고 참여정부와 같은 실정을 했다면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국민은 동일한 심판을 했을 것이다. 여기서 '다소 정도의 차이'라는 것은 애초의 기대와 배반에서 온 실망감이 다소 참여정부에 대하여 보다 가혹한 심판으로 작용했다는 정황상의 문제를 감안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형평성으로 논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역대 어느 정권을 보더라도 우리 국민이 (애초 152석의 총선결과가 말해주듯이) 참여정부만큼 전폭적 지지를 보내준 정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의 지지가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에게 무려 70%가 넘게 몰리는 현상은 적어도 노무현 정부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자괴감과 반발 심리에 다름 아니다.

범여권에 뚜렷한 후보가 없다는 것은 단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역시 동일한 출발점에서 자의든 타의든 대선 후보로 거론되어온 인사들은 오히려 한나라당 보다 더 많았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지리멸렬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인물이나 자질이 형편없이 부족해서가 아님은 자명하다.

국민들 맘 좀 헤야려 주면 안되나

무엇보다 범여권으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점은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인 마지노선 30%를 감안하고 보면 지금 무려 40%대 전후의 국민들이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역으로 '반한나라 연대'가 얼마나 민심과는 동떨어진 괴리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소통합'이든 '대통합'이든 그것이 분명한 정책과 변별되는 정체성을 가질 때 지지할 수 있는 것이지 또 다시 자신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만다면 어느 국민이 지지하겠는가 말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알만한 국민들은 다 안다.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공약'의 실현가능성과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박근혜 후보의 '열차페리' 공약의 비경제성과 그가 군사정권의 적자였다는 사실 모두를.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이 이들을 지지하는 이유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도 하지만 적어도 노무현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심리 또한 함께 담겨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직시해야 한다. 기존 정동영, 김근태 등의 여권 후보가 매우 낮은 지지율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보기에 노무현과의 차별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즉 또 다른 참여정부 모조품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든 '평화'든 '개혁'이든 결국 밥 굶어 가며 지켜야할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지금 다수 국민들의 생활은 그만큼 극심한 위기상황에 내몰려 있다는 방증은 아닐까? 그러니 그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지도자에게(비록 다분히 과거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다할지라도) 보다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뒤집어 보라. 만약 한나라당이 집권세력 이었고 노무현 정부와 같은 우편향적 정책으로 일관해 다수 국민을 파탄으로 내몰았다면,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미FTA와 같은 패악을 저질렀다면, 그래도 당신들은 이에 여전히 찬성하겠는가? 지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근태 #백의종군 #불출마선언 #통합 #반한나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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