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서평] 고전연구회 사암 <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등록 2007.06.14 20:46수정 2007.06.1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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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전연구회 사암 <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고전연구회 사암 <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 포럼

<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는 조선 지식인들의 ‘말’에 대한 성찰 모음이다. 허균, 안정복, 유몽인으로부터 홍길주, 이덕무, 이익, 최한기의 글이 눈에 자주 띄는 가운데 정조대왕의 글도 있다.

우선 발견되는 특징은 ‘자기 통제’나 ‘자기 절제’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모양새다. 허균은 <성소부부고>의 ‘한정록(閒情錄)’에서 “병을 마개로 꼭 막듯 입을 다물고 말을 삼가라” 하고 “군사가 성을 지키듯 사사로운 욕망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라”라고 한다.


또 안정복은 ‘마음’에 대한 잠(箴)에서 “혹독한 관리가 조사하듯 샅샅이 살피고 무엇 하나 남기지 말고 촘촘한 빗자루로 먼지 쓸듯 하라”고 하고, ‘입’에 대한 잠에서는 “말로 마음이 드러나니 길흉, 선악이 드러난다. 음식으로 몸을 기르나니 장수와 요절, 삶과 죽음이 여기에 달려 있다. 이로써 성인은 말을 삼가고 음식을 조절하나니”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말과 마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태도다. 이는 이미 허균과 안정복의 글에서도 발견되는 바다. 말을 삼가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일이거니와 말은 곧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조대왕도 이러한 맥락에서 한 말이 있다. “마음이 좋아야 사람이 좋고 사람이 좋아야 말이 좋게 마련이다”라고.

최한기는 ‘말’과 ‘글’ 모두 그 근본이 ‘마음’에 있음을 말한다. 그는 <기측체의>에서 말과 글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말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은 모두 마음속에 희미하게 숨어 있는 것을 북돋워 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말에 대한 보상(報償)’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이채롭다. 상대로 하여금 좋은 말, 깨달음의 말을 들었으면 응당 그 대가를 치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도 이를테면 물건이나 재산 같은 것이므로 말을 얻고 나서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도적행위와 같다는 것. 이익의 본의는 그래야 좋은 말들(가령 좋은 제안이나 적극적인 간언)이 세상에 넘쳐난다는 것이다.

옛날 성인이 “눈으로 사방을 밝게 살피고, 귀를 밝혀 사방을 두루 통했다.”는 말 역시 이와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임금이 신하의 말에 대해 좋은 대가로 보상한다면, 천하의 보물인 진주와 옥이 다리가 없어도 움직이고 날개가 없어도 날아다니듯 천하의 온갖 훌륭하고 좋은 계책이 저절로 찾아들게 된다.


홍길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불필요하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말이 많은 사람은 실제로는 말이 적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일일이 다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텐데 이 사람(말이 많은 사람)은 저 할 말을 다 하고도 이것밖에 되지 않으니 실은 속에 품은 말이 얼마나 적겠느냐‘는 것.

그의 또 다른 글에서는 자신의 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들을 적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장점만 말하고 허물을 말하지 말라. 문장이나 글짓기 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은 좋으나 예전에 여러 차례 말했다면 되풀이해 말하지 말라. 말은 간결해야 하고 지루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미처 답변하지 못하면 조용히 기다리고 빨리 대답하라고 재촉하지 말라.’ 등등. 마치 무슨 토론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덕무의 <사소절>에서는 배려의 말이 들려온다. 사람 앞에서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철에라도 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면 춥다고 말하지 말라.”

다른 책 <청장관전서>에서는 우리말의 어원을 확인해볼 수 있다. ‘엄마(母)’는 범어 ‘아마(阿摩)’에서 왔다는 것. 이밖에도 우리말에는 이런 형태의 단어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더 예를 들자면 ‘마도사남→사람’, ‘보타(普陁)→바다’ 같은 것들이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한정주ㆍ엄윤숙 / 펴낸날: 2007년 5월 10일 / 펴낸곳: 포럼 / 책값: 9800원

덧붙이는 글 * 지은이: 한정주ㆍ엄윤숙 / 펴낸날: 2007년 5월 10일 / 펴낸곳: 포럼 / 책값: 9800원

[POD] 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 개정판

고전연구회 사암.한정주.엄윤숙 지음,
포럼, 2015


#말 #마음 #정조 #허균 #안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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