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만의 수신료 인상 성공할까?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정치공방 돌파 위한 속도전에 '응원군' 발목 잡혀

등록 2007.06.15 15:58수정 2007.06.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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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BS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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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수신료 인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한국방송 KBS는 가능한 한 속도전으로 처리하기로 한 것 같다.

KBS는 13일 경영회의를 열고 텔레비전 수신료를 현행 2500원에서 4000원으로 1500원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오는 25일 공청회를 열고 27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이 안건을 처리할 계획이다.

방송법은 텔레비전 수신료는 국회에서 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KBS가 이사회 의결을 거쳐 방송위원회에 수신료 인상안을 제시하면, 방송위원회는 60일 안에 이에 대한 검토 의견서를 첨부해 국회에 송부토록 돼 있다.

이 과정에서 KBS는 여론 수렴 과정과 시청자위원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방송위원회에 수신료 인상안을 제시할 때 수익금액의 증가와 그 사용 내역, 시창자위원회의 의견, 여론 수렴결과 등을 같이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KBS는 이미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57.2%가 수신료 인상안에 찬성(반대 42.8%)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학자 21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찬성률이 71.3%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한 달 전 리얼미터 조사 결과(찬성 14.5%)와는 큰 차이가 난다. <조선일보>는 15일자 사설에서 "수신료를 얼마나 올려야 하느냐"고 물은 조사방법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시청자위원회에서도 최근 수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논의했다. 시기의 적절성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시청자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오히려 '수신료 문제'를 적극 제기할 것을 KBS측에 건의해왔던 만큼 수신료 인상안은 무리 없이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7일 이사회 의결만 거치면 곧바로 방송위원회에 수신료 인상안을 넘기게 된다.


KBS의 오랜 숙원 '시청률 인상'

a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지난 3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당주동 사무실에서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이헌 변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KBS 수신료 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지난 3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당주동 사무실에서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이헌 변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KBS 수신료 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KBS가 수신료 인상 추진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지난 5월 초.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 방송 활성화를 위한 디지털방송법안이 확정된 직후다. 디지털방송법안에는 방송사업자의 디지털 전환에 따른 비용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수신료 현실화와 방송광고 제도 개선 등을 명시하고 있다.


KBS는 즉각 수신료 인상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디지털 전환 재원 마련의 명분을 앞세웠다. 인상폭은 '1000원+α'이 제시됐다. 정액인상방법과 '일부정액+물가연동' 방안을 놓고 검토한 끝에 13일 경영회의에서 정액인상으로 결론을 냈다. 5월 초 수신료 인상 추진 방침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지 한 달 만이다.

KBS로서는 최근 보기 드문 신속한 행보다. 어차피 그동안 수없이 논란이 돼 왔던 사안이고, 정치적 공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한다면 대선국면에서의 정면 돌파가 성공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듯하다. 사사건건 경영진과 충돌해왔던 노조도 이번에는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다. 26년 동안 묶여왔던 '해묵은 난제'를 풀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듯하다.

그렇다면 KBS의 오랜 숙원이던 수신료 인상은 이번에 이뤄질 수 있을까? 일단 방송위원회 통과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예상이다. KBS 감사 출신으로 정연주 KBS체제 하에서의 수신료 인상 반대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강동순 방송위원조차도 "방송위원회 구성상 여러 조건을 달아서 통과는 될 것"(5월 29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이라고 예상할 정도다.

문제는 국회다. 한나라당의 벽을 어떻게 넘느냐가 가장 큰 난제다. 정연주 사장 체제의 KBS에 대해 경계와 적대의 시선을 거두고 있지 않는 한나라당이 과연 '수신료 인상'을 받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KBS 바깥은 '비관'... KBS 내부는 '낙관'

a 지난 2003년 11월18일 오후 국회  문광위에 출석해 KBS TV수신료 분리징수시 감소액에 대해 정연주 KBS사장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03년 11월18일 오후 국회 문광위에 출석해 KBS TV수신료 분리징수시 감소액에 대해 정연주 KBS사장이 설명하고 있다. ⓒ 이종호

KBS 바깥은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방송의 편파성 문제를 집중 제기해왔던 한나라당인 데다가 시기적으로도 한나라당의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당 지도부나 대선 후보들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가 시기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다.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 언론들은 물론 일부 보수시민단체들이 '절대 불가'라며 저지선을 펴고 있는 마당에 한나라당 지도부나 대선 후보들이 이를 외면하고 다른 선택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KBS 내부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이번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적지 않다. 그 같은 낙관적 전망의 근저에는 명분에 있어서나 실제에 있어서 이번 '수신료 인상안'이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자신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디지털 전환에 따른 재원 마련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는 만큼 정치권도 '정략적'으로만 접근할 수 없으리라는 계산이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 등을 따져 볼 때 '대선국면'이 적기일 수 있다는 셈법일 수도 있다. 나름대로 그동안 펴온 정치권에 대한 설득작업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수신료 인상폭이나 그 사용 용도에 있어서도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어 보인다. KBS가 이번에 제시한 '1500원 인상안'은 27년만의 인상 치고는 인상폭을 낮게 잡은 셈이다. 지난해 KBS의 총 수입은 1조3000여억원. 이 가운데 수신료(대당 2500원) 수입이 5300여억 원으로 40.7%를 차지했다.

수신료를 1500원 올리게 되면 수신료 수입이 3000억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KBS는 대신 KBS2 TV의 광고 수입 비중을 현재의 48%에서 33% 수준으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KBS 2TV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40% 정도를 광고가 없는 '그린 프로그램'으로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공영적인 프로그램을 편성할 여지가 확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수신료 수입의 3% 수준인 EBS에 대한 수신료 지원율을 7%로 높이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결코 '독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EBS의 수신료 지원금은 연간 157억 원 규모에서 587억 원으로 늘게 된다. 이와 함께 외주제작 예산을 2012년까지 매주 10%씩 인상하겠다는 것을 비롯해 난시청지역 완전 해소도 수신료 인상을 위한 '약속'으로 제시했다.

KBS는 이런 정도의 계획이라면 여론의 지지는 물론 정치권의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KBS로서는 수신료 인상폭을 최소화하되 광고 수입의 축소, EBS 수신료 지원금 확대, 난시청 지역 해소 등 공영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만큼 정치권도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검토하면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다수 신문들, 수신료 인상에 반대 입장 피력

a 정연주  KBS사장이 21일 오전 국회 문광위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정연주 KBS사장이 21일 오전 국회 문광위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하지만 KBS의 이런 '이성적인 설득'이 '정서적인 거부감'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장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반응은 차갑다.

문화관광위원인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한마디로 염치없는 생각 아니냐"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재정 운영 상황부터 투명하게 공개하고, 자구노력부터 한 다음에 제안해도 해야 할 일이지, 수신료부터 올려 달라 하면 누가 동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다른 문광위 의원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자료를 훑어보았지만, KBS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의구심이 짙은 상황에서 생산적인 논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해 다른 문광위 의원실 관계자들 역시 "검토해보아야 하겠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유보적인 반응이 많다.

여론의 반응 역시 우호적이지 않다. 15일 다수의 신문들은 사설에서 수신료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했다.

<조선일보>는 KBS 여론조사에 대해 '여론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연주사장의 퇴진'을 먼저 요구했다. <국민일보>와 <세계일보>는 공영성과 방만한 경영을 문제 삼아 역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향신문> 역시 경영의 투명성과 보도의 공정성을 그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자구노력 없이 손부터 벌리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나선 점에서는 <경향신문> 또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한겨레> 정도가 '수신료 인상'과 '공영방송의 질'을 연계해 사후 평가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전제로 긍정적인 논의를 당부했을 정도다.

KBS 속도전에 심사불편해진 응원군들

KBS는 과연 이런 여론의 역풍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KBS로서는 '응원군'이 절실한 실정이다. 그 응원군은 수신료 인상에 그동안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던 언론시민단체들이 한 축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응원군'들이 요즘 심사가 불편하다. KBS의 속도전 때문이다.

양문석 언론연대 정책실장은 수신료 인상에 적극적이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평소 수신료를 "최소한 2500원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양문석 언론연대 정책실장이 요즘 손을 놓고 있다. "수신료가 갖는 공영방송 시스템에서의 역할, 신문·방송·뉴미디어를 포과하는 미디어 균형 발전 측면에서의 접근 등 고려해야 할 여러 측면을 간과한 채 KBS 위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에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단체의 인사 또한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혀왔지만, 이러한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며 KBS의 일 추진 방식에 대해 불편해했다. "지금까지 KBS가 수신료 인상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며 "이런 상태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KBS가 25일 공청회를 열고 이틀 후 곧바로 이사회에서 수신료 안건을 통과시키려는 일정을 잡은 것 자체가 '여론수렴'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반증 아니겠느냐는 푸념도 나온다.

KBS는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까

이들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더 불편하게 하는 것은 수신료 인상과 함께 다뤄져야할 공영성이나 공공성의 문제 등 여러 전제 조건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않고 밀어붙이는 방식이어서는 '부정적인 여론'을 결국에는 돌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언론단체 관계자들 가운데서는 "기록용 아니냐"는 신랄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또 모른 채 손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는 점이 이들의 판단과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KBS가 '속도전' 보다는 '지구전'으로 방향을 틀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서중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공동대표(성공회대·신문방송학 교수)는 "수신료를 인상하자면 궁극적으로는 국민과 시청자 단체 수용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KBS가 KBS만의 시각이 아니라, 공영방송의 공공성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증을 이끌어내는 전략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는 시민단체로서는 처음으로 20일 수신료 인상에 관한 세미나를 연다. 25일에는 KBS가 주최하는 공청회가 열린다. 그 이틀 후 KBS는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KBS가 '부정적인 여론'을 '속도전'으로 돌파할지, 아니면 그 방향 전환을 모색할지는 27일 이사회가 분수령이 될 것 같다. 결국은 '정서적 반발'과 '이성적 판단'의 간극을 속도전으로 돌파할지, 좁혀가는 방식을 택할 것인지가 문제다.
#백병규 #미디어워치 #수신료 #KBS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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