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는 것만 좋아하면 도둑놈이지, 사람이여?"

[포토에세이] 물골에서 쓰는 여름편지2

등록 2007.06.16 13:39수정 2007.06.16 16:1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호박꽃을 찾은 손님들, 그들이 있어 호박꽃은 행복하다. ⓒ 김민수

뜨거운 여름 햇살, 천렵을 하여 매운탕이라도 끓여 먹으며 더위를 식혀야 할 정도로 햇볕이 따갑다. 물골집에서 산길을 따라 30여분 내려가면 내가 있고, 그곳에는 제법 피라미들도 많아서 어항을 놓거나 족대를 치면 매운탕 거리는 충분할 것이다.

불자도 아니요, 채식주의자도 아니지만 들꽃을 좋아하면서부터는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것이 생생하게 보이는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죄가 되는 듯하여 다년간 취미였던 낚시를 접었다. 매운탕이야 정 먹고 싶으면 한 그릇 사 먹으면 될 일이다 싶으니 냇가에 발을 담그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더위를 피한다. 피서가 따로 있나.

그러나 사실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산비둘기들이 콩을 파먹어서 비상이 걸렸다. 허수아비를 세워도 이미 영악해진 산비둘기들은 허수아비를 그야말로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밭을 서성이며 '훠이! 훠이!' 하며 쫓아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과 밀린 일들로 인해 하루를 버티고 서울로 돌아왔고, 노부모님들은 이런저런 농사일도 할 겸 물골에 며칠 더 남아계시겠다고 하셨다.

아침햇살에 호박꽃이 화들짝 피어난다. 햇살이 뜨거워지면 꽃잎을 오므리니 그전에 부지런히 벌들이 찾아온다. 그 가운데 개미들도 분주하게 오간다. 얼마나 간지러울까? 그러나 그들이 있어 호박꽃은 행복하겠지?

a

가지꽃, 보랏빛이 예쁜 꽃은 감자꽃을 닮았다. 그들은 '가지과의 식물'로 사촌간이다. ⓒ 김민수

서울로 돌아와 옥상에 올라가니 땅과 떨어진 공간이라 꽃이며 채소들이 시들시들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부모님들이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실 때에는 그저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아내는 바짝 긴장해 있다. 혹시라도 물골에서 돌아오신 부모님께서 옥상 텃밭 관리를 엉망으로 했다고 하기라도 할까봐.

"어머니, 가지꽃이 피었어요. 완두콩은 벌써 다 익어서 잎이 누렇게 변하데요. 그래서 전부 뽑아서 콩만 따로 까두었어요. 그런데 마늘은 물을 줘도 왜 그렇게 누렇게 변하는 거지요? 이제 거둘 때가 돼서 그런가요? 토마토는 하루가 다르게 커지구요, 호박은 벌써 두 개나 따먹었어요.

상추는 솎아 먹기가 바빠서 옆집도 주고, 친정에도 갖다 주었어요. 고추도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구요, 근대하고 아욱은 된장국 끓여 먹었지요. 꽃들도 잘 피고 있어요. 부추는 잘라 먹어도 되지요? 파꽃은 아직 그냥 둘까요, 아니면 꺾어서 말릴까요?"

a

꽃이지고 나면 열매를 맺는다. 꽃이 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법이다. ⓒ 김민수

아무래도 불안한지 전화통을 붙잡고 아내가 어머님에게 옥상 보고를 세세하게 한다. 전화를 바꾸니 아내에게 하지 못한 말을 하신다.

"그려, 그려 다 잘자라고 있다니 다행이네. 수고한다. 아무튼 열심히 솎아 먹고, 나눠줘라. 때 지나면 못 먹게 되는 것도 있으니까. 그래, 어떠냐? 그렇게 먹을 것이 많으니까 좋자? 봄에 옥상에 텃밭 가꾼다니까 입을 삐죽 내밀더니만 그렇게 싱싱한 것들, 농약 하나 안 들어간 그야말로 유기농 채소를 맘껏 먹으니 얼마나 좋냐?

내 그래서 옥상텃밭도 가꾸는 것이여. 물골에는 옥수수가 실하게 자라고 있다. 옥수수 열리면 멧돼지들이 파헤칠까 봐 걱정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문제 없다. 산비둘기 때문에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아무튼 거두는 것만 좋아하믄 안 된다. 그것만 좋아하면 그게 도둑놈이지 사람이여?"

아내가 들으면 조금 서운하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잘 있냐, 뭐 이런 것은 뒷전이고 오로지 옥상 텃밭에 관한 이야기만 하신다. 물론, 서울에 오시면 물골에 있는 밭이야기만 하시고.

a

토마토, 노란 꽃이 아침햇살에 빛난다. ⓒ 김민수

노란 토마토꽃이 아침햇살에 영롱하게 빛난다. 나는 토마토 이파리에서 나는 향기가 좋다. 살짝만 스쳐도 나는 향기는 곁가지를 쳐줄 때 더 진하다. 곁가지를 나오는 대로 그냥 두었다가는 풍성하기는 하되 제대로 된 열매를 얻을 수가 없다. 열심히 솎아주어야 실한 토마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거두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고 있다면 최소한 미안한 마음은 가져야 할 것이고, 뿌린 사람이 거둘 것을 허하지 않는데 거두고 있다면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어야 할 터인데…. 뿌리지 않고 거두는 것이 능력처럼 되어버린 사회에서 도둑놈 심보를 가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특히 대선과 관련하여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정치꾼들의 행태를 보면 여간 도둑놈 심보가 아니다. 자기가 그동안 뿌린 것을 겸허하게 거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잿밥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니 정치가 개판이 되어버렸다.

a

주렁주렁 열린 방울토마토 ⓒ 김민수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열린다. 모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꽃이 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꽃을 피우는 노력도 없이, 피어난 꽃 떨어지는 아픔도 없이 열매를 취하겠다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늘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정치꾼'이다.

80년대에는 '땡전뉴스'가 있었다. 그런데 시절이 지나도 여전히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뉴스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뉴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좋은 이야기는 거의 없으니 심기만 불편해진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뉴스를 특화시켜서 어떤 날은 정치와 관련된 뉴스를 단 하나도 내보지 않는 것이다. 정치꾼들과 관련된 뉴스만 하루 동안 듣지 않아도 국민은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상상, 그러나 정치꾼들은 자기들에 대한 뉴스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단 하루라도 나오지 않으면 미칠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망한다. 정치꾼이 아닌 정치인이 판치는 세상이길.

a

까마중, 저절로 자라나지만 막내가 좋아해서 농작물처럼 키운다. ⓒ 김민수

물골의 밭 한켠에는 반가운 손님이 뿌리를 내리고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그는 다름아닌 까마중이다. 그냥 가꾸지 않아도 알아서 크는 잡초(?)의 일종이긴 하지만 어릴 적 까마중은 아주 맛난 주전부리였다. 그런데 그것을 막내도 좋아한다.

그냥 두어도 때가 되면 따먹을 수 있지만 거름도 주고, 물도 주면 서리가 내릴 때까지 실한 열매들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직접 심은 것은 아니지만 몇 다른 곳에 있던 것들 몇 개를 더 뽑아서 아예 까마중 구역을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자연이 주는 선물이기에 노력하지 않고 취하기만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사람살이는 다르지 않은가! 거두는 일은 참 좋은 일이요,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럴 때 한 번 이런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금 거두려는 것이, 이루려는 것이 그동안 심고 가꾸는 과정이 있었던 것인지, 혹시나 남의 땀방울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 최소한 한 번쯤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거두는 것만 좋아하면 도둑놈이지, 사람이여?"
#텃밭 #호박꽃 #토마토 #까마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2. 2 마을회관에 나타난 뱀, 그때 들어온 집배원이 한 의외의 대처
  3. 3 삼성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영상... 한국은 큰일 났다
  4. 4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5. 5 "청산가리 6200배 독극물""한화진 환경부장관은 확신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