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 밭에 '무동력' 수로 공사 벌이다

'파스칼의 원리'이용한 계곡 물 끌어대기

등록 2007.06.16 14:39수정 2007.06.1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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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을 조금 크게 뚫으면 물이 퍼져서 나온다.
구멍을 조금 크게 뚫으면 물이 퍼져서 나온다.전희식
어제 오후 한나절은 수로 공사를 했다. 혼자서 설계하고 혼자서 시공하고 혼자서 준공식까지 했다. 버려져 있는 자재들을 이용하고 내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스프링클러 장치까지 만들었는데 물이 잘 분사되어 호박밭에 물주는 일은 걱정 안 해도 될 형편이다.


이른 봄에 직접 모종을 부어 단호박을 200포기 정도 심었었다. 괭이 한 자루만으로 일구어 낸 묵은 밭에 호박구덩이를 허리춤까지 파고 거름을 듬뿍 넣어 호박순을 심었는데 정작 물을 줄 수 없는 산언덕 밭이라 고심하다가 옆집에서 내다 버린 물 호스가 있어서 그것을 가져다가 계곡물을 끌어다 넣기로 했다.

작은 구멍에서는 물줄기가 가늘어 물이 높이, 멀리 간다.
작은 구멍에서는 물줄기가 가늘어 물이 높이, 멀리 간다.전희식
밭이 원래 십수 년을 묵어 있어서 팔뚝만 한 잡목까지 자라 있긴 했어도 땅이 농약기 하나 없이 깨끗했고 부엽토가 쌓여 있어서 농사짓기 좋은 상태였다. 할 일 많은 사람이 관리기조차 들어갈 수 없는 산골짜기에 괭이 하나로 어찌 그 많은 일을 해 낼 거냐고 말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땅을 놀리기가 아까워서 시작한 일이었다.

물 호스를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40m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우리 밭이랑 높이를 비교해 보고는 물 호스 박을 웅덩이를 만들었다. 파스칼의 원리라 했던가. 우리 밭 옆에까지 계곡 따라 내려온 물 호스를 2~3m가 넘는 밭 위로 올려놔도 자연압으로 물이 콸콸 나오기 시작했다. 한여름에는 자연폭포수로 이용해도 좋을 성싶었다.

밭에서 한참 올라간 계곡에 물 호스를 묻었다.
밭에서 한참 올라간 계곡에 물 호스를 묻었다.전희식
계곡물은 덕유산 서봉을 수원지로 하여 내려오는 것이어서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다. 너무 깨끗해서 고기가 단 한 마리도 살지 못할 지경이다. 언젠가 눈을 씻고 찾아봤지만 고기가 단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밭에까지는 단단한 고무호스였고 밭 안에서는 얇은 비닐 호스를 연결했다. 그리고는 호박 포기마다 빠짐없이 줄줄이 비닐호스를 지나가게 깔아서는 커다란 찔레 가시 하나를 꺾어 와서는 구멍을 뽕뽕 뚫었다.

구멍을 좀 작게 뚫으면 물줄기가 1m 이상 위로 치솟고 구멍을 좀 크게 뚫으면 분무기처럼 물이 좍 펴져서 나왔다.


감자밭이다. 꽃이 필 때쯤이면 이쪽으로 물 호스를 댈 생각이다.
감자밭이다. 꽃이 필 때쯤이면 이쪽으로 물 호스를 댈 생각이다.전희식
엊그제 내린 비가 많은 양이 아니어서 이제 개화가 시작되는 단호박이 물을 많이 먹는 시기가 되는데 이 자연압을 이용한 물 호스가 단호박 풍년의 단꿈을 꾸게 한다.
#수로공사 #단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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