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김 정치' 부활 아닌 정책적 이념으로 통합하라

등록 2007.06.18 16:12수정 2007.06.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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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독재와 민주' '민주대 반민주'란, 정치인들에 있어 단지 정치적 프레임으로서는 여전히 유효할지 모르지만 지난 시간 그것으로서 변별시키고자 한 정치는 결국 대중의 요구와 희망과는 거리가 먼 반목과 대립의 정치, 진영논리만 난무하는 정치로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 21세기의 시대정신이 될 수도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된다.

이 글은 '민주화 20년'을 돌아보며 한국정치에 있어 '민주세력'이란 누구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본질에 대한 고민과 성찰,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쓰여 졌다. 참고로 본문의 '민주세력'은 민주화의 수혜로 정치에 입문한 '민주화 정치세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그것이 곧 민주화를 위해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모든 민주세력을 통칭하는 말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필자 주>


구악으로서의 '3김정치'

'3김정치'란 1980~1990년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김씨가 자신들의 지역기반인 영남·호남·충청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호 협력과 경쟁,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지역패권주의 정치', '부패정치', 1인 보스 중심의 '붕당정치'로 한국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깊은 골을 파놓은 구태 정치를 통칭해서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경향은 87년 '6·10 민주화 항쟁' 이후 특히 그 열매가 김영삼-김대중 두 김씨에게로 독식됨으로서 그 절정을 이뤘다. 이러한 쏠림현상으로 인해 김영삼-김대중 사이에 치열한 경쟁 구도는 더욱 확대되어 갔으며 이는 다시 김종필에게 둘 사이의 역학관계를 이용한 카운터 파트너로서의 기회를 제공하여 3공 세력을 다시 부활시키는 반역사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당시 한국에서 정치를 희망하는 지망생들이라면 보편적 상식처럼 되어버렸던 소위 '깃발론'은 이들의 '공천장=당선증'이라는 공식이 어김없이 증명될 정도로 이들 지역에서는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일명 '묻지마 지지'의 지역주의를 고착화시켰다. 이러한 '지역패권주의'는 당연히 공천헌금, 정치헌금 등 끊임없는 부패의 고리로 낳았고 이는 다시 세력의 확장으로 이어져 한국정치는 이들의 우상에 갖힌 '붕당정치'의 악순환이 곧 민주화 정치세력의 역사이기도 했다.

혹자는 박정희가 지역주의의 전범이라고 말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가 호남에 대한 차별로 호남민들에 있어 소외와 불평등에 대한 지역주의가 태동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 것은 맞지만 적어도 이들 '3김시대'와 같이 어느 특정 지역의 패주로 오랜 동안 군림하면서 그것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가지는 않았다.


되돌아보면 사실 민주주의 원리와는 한참 괴리된 이들의 정치행태가 절대의 위력을 발휘하며 한국정치의 한 시대를 거침없이 농단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한국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이들의 빗나간 정치행태를 일정부분 묵인할 정도로 절실했기에 가능했던 시대적 아픔이었다. 그만큼 '민주화'란 그 시대에 있어 우선적으로 쟁취해야 할 절박함에 다름 아니었다.

배반당한 민주주의의 꿈


단언하건대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공헌자는 당연히 모든 군부독재에 '피와 희생'으로 항거했던 '민중'에 있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민중'은 한낱 이용물일뿐 그 공은 언제나 소수에 독점되어 버렸다는 데에 있다. 6·10 항쟁이 미완의 혁명으로 자리매김 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배경적 요인으로 (당시에는 미처 드러나지 않았었지만) 6·29 선언은 군사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전두환 각본·연출에 노태우 연기의 한판 거짓 연극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배경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김영삼-김대중, 양김씨가 당시 민중일반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분노를 단지 자신들의 연금해제, 정치재개의 조건과 맞바꿈으로서 이는 이후의 분열 보다도 더욱 뼈아픈 실패의 근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6·29선언 주요 내용은 이를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민중의 모든 민주화에 대한 공과 희생은 철저하게 이들 양김씨에게로 독식되었다는 데에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과 아이러니가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20년을 되짚어 보면서 과연 김대중-김영삼이 온전히 민중의 편이었는가에 대해 수많은 회의를 느낀다. 그들에 있어 민주주의란 과연 어떤 의미였으며 어떤 신념이었을까. 당시 민중일반에 있어 6·29 선언은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용(직선제 개헌 하나만 관철됨)을 담고 있었음으로 민중진영에서는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투쟁해 나가기를 원했다. 해서 이들은 양김씨에게 '노동자 대투쟁'에 함께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양김씨는 이를 냉담하게 거절하였고 이후 이들이 보여준 것은 7·8·9월의 노동자 대투쟁은 철저히 외면하며 단지 직선제 개헌에 의한 새 정치일정에 맞춰 광주와 부산에서 앞 다퉈 서로 자신들이 '최고의 민주화 공헌자'라는 주장과 함께 대규모 군중집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으로 대권 세몰이에만 열을 올렸던 데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분열은 이들에게 있어 이미 이때 예정된 수순은 아니었을까. 들어보라. 당시 이들의 본심을 미처 간파하지 못하고 그토록 군사독재종식을 염원했던 민중들의 회한이 여전히 역사의 눈물이 되어 통곡하고 있는 소리를. 민주화 20년이라지만 다수 민중의 자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묻자. 이것이 고작 우리들의 모든 피와 눈물의 대가란 말인가.

'피가름'으로 이룬 민주주의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자괴감과 자기부정에 다름 아닌 말이 일반화 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양김 주도권 싸움의 뼈아픈 과오는 불행히도 민주화 20년 오늘날 까지도 별 성찰 없이 여전히 현재형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양김씨의 이러한 원칙과 역사성 없는 헤게모니 싸움의 결과는 노태우 '군사정권 연장'이라는 참담한 결과로 귀결되었고 민중의 희망은 무참하게 좌절되었다. 하지만 양김씨의 영향력은 일정부분 현재까지도 여전하다. 역사는 도대체 누구에게 그 죄를 물어야 하나. 분열한 바 없는 민중에게 물어야 하나.

매우 뼈아픈 지적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정통성은 이들에 의해 무너졌다. 즉 한국 민주주의는 김영삼-노태우-김종필, 그리고 김대중-김종필의 연속된 군사혈통들과의 '피가름'으로 탄생된 이른바 '불륜의 사생아'일 뿐이다. 그런데 이 사생아들이 지난 20년 내내 김영삼계와 김대중계로 나뉘어 '민주-반민주'의 구도로 역사와 정치를 농단해온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양김은 이러한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재야 시민사회세력을 경쟁적으로 수혈함으로서 자신들의 과오를 희석시키고자 했다.

물론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민주세력 내에서 일정 부분 저항한 세력도 있었다. 이른바 95년 야권분열반대와 지역주의 반대를 외쳤던 김원기, 노무현, 김정길, 이철, 박석무, 원혜영, 이미경, 이강철, 김원웅, 제정구, 이수인, 김홍신, 김부겸, 홍사덕, 홍기훈 등의 국민통합추진회의(이하 통추) 멤버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96년 총선에서 전멸한 후 각자 살길을 찾아서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로 뿔뿔이 흩어져 갔다. 즉 김영삼과 김대중 세력으로 다시 백기투항 함으로서 비로소 정치적 회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3김정치의 영역을 벗어난 어떤 세력도 자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방증해 준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출현이 불가능했던 것은 국민의식의 미성숙에 있었다기보다는 전적으로 이러한 정치풍토에 기인한 바가 크다. 정당의 문화는 정책적 이념에 의해 분화되고 구별되지 못했기에 단지 이들 패거리에 의한 패싸움이 하나의 정치문화로 자리 잡았고 국회는 군사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들의 '거수기장'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이른바 상도동파, 동교동파, 청구동파 등 3파로 나누어진 붕당정치의 악순환이었다.

누가 군사독재 잔존세력을 부활시켰나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주간사진공동취재단
나는 이들 소위 민주세력들에게 투철한 역사의식이 있었다고 믿지 않는다. 김영삼은 '5공 특검'이라는 요식행위를 통해 전두환, 노태우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며 김대중은 박정희 기념관 건립안 등으로 박정희에게까지 면죄부를 주었다. 그리고 희대의 반민주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살아있는 옥상옥의 법으로서 서슬 퍼렇게 존재하고 있다.

이런 악법을 방치해 두고도 이들 스스로 민주정권이었다고 자부하며 여전히 민주-반민주를 정치구호로 내걸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성찰 없는 역사 모욕이며 민주화 과정의 희생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누가 3공, 5공 세력을 부활시켰나. 아니 더 근본적으로 이들은 정말 부활한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민주세력과의 피가름에 의해 단지 양 진영에 나뉘어 암세포처럼 존재하고 있다가 다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았을 뿐이다. 나는 이것에 대한 동인을 87년 이래 20년 동안 역사적 정통성 없는 민주세력들이 확고한 역사 청산의식과 국가경영에 대한 최소한의 능력 없이 단지 자신들의 진영논리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해 끊임없이 조작한 '민주-반민주'라는 이분법 하나로 버티며 온 무능과 자충수가 그 직접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사정권 후예들이 이들 보다 탁월하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군사정권 후예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이라고는 민주세력의 거듭된 실정을 과거의 향수로 교묘하게 치환시킨 전략적 성공, 즉 순전히 반사이익에 의한 망령들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민주세력의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듯이 현재의 범여권을 모두 민주세력으로 볼 수 없듯이 한나라당 전체를 모두 군사정권의 후예로 몰아붙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당대표 하나로 곧 당의 정체성이 규정될 수 없는 것과도 같다.

87년을 민주화 원년으로 보는 것에 동의 한다면 그것을 기점으로 볼 때 민주세력은 크게 김영삼계-김대중계로 나누어진 것이고 김영삼계가 당시로서는 다수였던 5공세력인 민정당과의 합당으로 군사정권의 후예들이 김대중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율이 높아진 것일 뿐, 본질적으로는 군사정권의 후예들과 민주세력의 '혼혈아'들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일반의 인식이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은 김대중 정부가 정권을 잡으며 김영삼의 민자당(구한나라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과장되게 덧씌운 이미지가 오늘날까지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양김씨에 있어 도대체 누가 누구를 변절과 반민주세력으로 몰아세울 수 있단 말인가. 과연 김영삼의 3당 합당은 변절이고 김대중의 'DJP연합'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나. 혹은 그 반대라고 말할 수 있나.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그럼 민주세력이 아니고 단지 진보세력일 뿐이란 말인가.

모든 우상(偶像)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그렇다. 모든 우상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박정희 우상이 파괴되어야 하는 것처럼 소위 민주세력에 대한 우상도 이제는 함께 파괴되어야 한다.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추구했다는 것은 자유, 평등, 인권을 지향하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로서 충분히 존중되어야 할 것이지 곧 그것이 우상으로 떠받들어 지고 더군다나 정치적 능력으로까지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즉 민주주의는 인간사회의 선택 가능한 하나의 제도적 가치이지 민주주의가 곧 우상숭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지적한 대로 '3김정치', 특히 '김영삼-김대중'식의 정치가 더 이상 이 땅에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노무현 역시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참여정부의 실패로 인해 그 정당성이 심각히 훼손되면서 최근에는 다시 양김씨의 정치적 부활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자의든 타의든 다시 허용한다면 이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그렇듯이 곧 한국 민주주의의 명백한 퇴보다.

나는 김대중의 "우리 국민은 양당제를 원한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박정희 시대 이래로 이와 같은 동일한 주장을 해왔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여야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동조하는 것이야 말로 현재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주장은 '민주-반민주'로 전선을 최대한 단순화하여 기존 정치세력의 정치적 기득권을 최대한 획득하려는 목적 이외에 어떤 시대성을 담고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민주화 20년이다. 이 땅의 오늘날 민주화가 전적으로 민주세력의 헌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다수 민중의 희생과 피로서 이룩되었듯이 이미 21세기의 정치지형은 다원주의 하에 '국가권력'이 '대중권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추세이고 특히나 정책적으로 아무 변별력 없는 양당제로는 더 이상 이러한 대중의 다양한 욕구와 희망을 담아 낼 수 없음이 자명하다.

다른 면에서 한국정치인들의 의식구조가 이와 같이 여전히 '87체제'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대중의 요구가 적절하게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원천차단 당하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길을 지체시켜 왔다는 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반민주가 아니라 정책적 이념으로 분화하라

위에서 살펴 본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범여권의 '반한나라연대', 즉 '민주-반민주'로의 이합집산 노력은 애초 그 출발부터 아무런 역사적 정통성도 시대정신도 담고 있지 못한, 단지 생존전략의 진영논리에 지나지 않았음으로 해서 그 실패를 이미 노정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은 '도로 민주당'도 '도로 열린우리당'도 아니다. 또한 지지율만으로 볼 때, 이미 많은 한국 국민은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오늘의 민주화 20년에 대한 정치사적 평가는 한나라당내의 민주세력을 포함 '범민주 정치세력'의 총체적 실패에 대한 '산업화 세력'의 총반격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오늘의 '민주세력'이 당면한 위기는 87년 이래로 국민이 거듭 세 번의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중의 요구를 정치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역사의 반동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실패의 원인에서 해법을 찾아서 나아가는 것이 순리이고 정도가 아닐까.

간략히 말하자면 민주세력의 실패는 사회경제적으로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도입과 이의 적용, 그리고 이념적으로 급속히 군사독재세력에 흡수된 우경화에 있다. 이것은 87년 이래 민중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역한 필연적 결과로 보인다. 벌써 잊었는가? 온통 지랄탄, 발광탄이 난무하는 6·7·8·9월의 뙤약볕 아래서 곤봉에, 방패에 찢기고 피흘리며 목 놓아 외쳤던 민중들의 그 함성을 기억하는가? "근로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흩어지면 노예 되고 뭉치면 인간 된다"에 담겨있던 민의의 진정한 의미를….

그때 우리는 그랬다. 우리는 군사독재를 일소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했다. 우리는 군사독재의 억울한 죽음들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고 준엄한 역사적 단죄를 원했다. 우리는 군사독재가 정경유착으로 저질러 놓은 모든 잘못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부패를 일소하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와 분배, 그리고 공평한 시장의 룰을 통한 산업구조재편을 원했다.

그때 우리는 믿었다. 민주정권만 들어서면 이 모든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지난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런데 민주화 20년, 민주세력이라는 당신들은 도대체 뭘 했나. 당신들이 찬란한 금배지 달고 요정에서 술 마실 때 우리는 여전히 초라한 뒷골목에서 '노동3권' 조차도 보장되지 않는 허울뿐인 민주정부에 속고 속으며 눈물과 한숨뿐인 소주잔을 기울여야 했다. 당신들이 개발계획도 들고 집사고 땅사고 '억억'하며 강남으로 몰려다닐 때, 우리는 눈 뜨면 치솟는 집값에 아득한 절망만 곱씹으며 월세집으로 전셋집으로 유랑민처럼 떠돌아야 했다.

당신들이 망쳐놓은 교육제도로 변죽만 울리며 자식들을 교육환경 좋은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동안 우리는 살인적으로 치솟는 사교육비 마련에 몸 팔고 빚 떠안으며 하늘만 원망해야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인고의 20년도 부족하다고 아무 준비도 안 된 우리들에게 이제 '한미FTA'해서 본격적으로 경쟁을 더해보자고? 여전히 개방이 대세이며 성장이 우선이고 분배는 저절로 따라 올거라고? 기업의 성과와 효율이 노동의 가치 보다 우위에 있으니 경쟁에서 살아남아 자본의 노예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잉여인간,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라고?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민주정치'란 말인가.

정치는 형이상학이 아니다. 정치는 좌파든 우파든 그 본질이 인민을 고루 잘살게 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방법론과 절차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다. 오늘날 다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보다 선호되는 것은 그것이 지닌 가치가 보다 합리적이고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감히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권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민중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즉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순간 정권의 종말을 각오해야만 할 것이다. 그만큼 이제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 민중의 신념은 확고하다고 보여 진다.

지금 범여권의 '반한나라연대' 호들갑은 별로 차이도 없는 김대중식 민주주의가 김영삼식 민주주의 보다 우월하다고 한껏 과장하며 위기론을 설파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조차 과거 군사정권의 이름뿐인 민주주의로 돌아가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고 믿는다. 또한 이미 99% 개방되어 있는 한국 경제적 측면에서도 군사정부로의 회귀는 곧 자살행위이다. 이것은 물론 반한나라연대의 허상을 지적하기 위함이지 한나라당의 집권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한국 정치지형의 새판을 고민하라

나는 이제 한국 민주주의도 본격적으로 좌파와 우파가 양립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까지의 정책적 이념으로 볼 때 한나라당은 우파이고 소위 범여권으로 지칭되는 세력은 중도우파에 가깝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을 그나마 유일한 좌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보 고유의 '가치'가 아닌 '변화'라는 사전적 의미만을 떼어놓고 볼 때에만 이들 민주세력을 한나라당에 대한 상대적 진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진보일 수는 있지만 진보가 곧 좌파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파 일색인 한국 정치지형을 어떻게 일신하고 새 판을 짤 수 있는가에 바로 소위 '민주세력'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 각자가 지닌 정책과 이념으로 분화하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더 큰 성장을 위한 '진보'이다.

그러므로 이 길이 바로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뿌리내릴 수 있는 올바른 토대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또한 나는 그것이 다른 세상을 원하는 국민들에 대한 정치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올바른 도리라고 믿는다.

나는 단언하건대 국민 다수는 과거 박정희식 독재정치도 지난 15년간의 소위 '민주세력'식의 정치도 원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더 이상 어떤 대안도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민중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50년'이었다. 만약 범여권 진영이 지금 움직임처럼 일부 시민사회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으로서 자신들의 껍질만 세탁하고 김대중식 패거리 정치로 회귀한다면 그것은 또 한번 역사에 죄인이 되는 것은 물론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믿는다. 한나라당내 민주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87년 그 때 우리가 함께 동지가 되어 목터지게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 고작 이런 것이었던가? 모두의 초심을 위해 여기 고 박종철 열사의 당시 추모시를 옮겨 놓으며 마친다.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오늘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솟아오르는 분노의 주먹을 쥔다

차가운 날
한 뼘의 무덤조차 없이
언 강 눈바람 속으로 날려진
너의 죽음을 마주하고,
죽지 않고 살아남아 우리 곁에 맴돌
빼앗긴 형제의 넋을 앞에 하고
우리는 입술을 깨문다

누가 너를 앗아갔는가
감히 누가 너를 죽였는가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우리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너는 밟힌 자가 될 수 없음을
끝까지 살아남아 목청 터지도록 해방을 외칠
그리하여 이 땅의 사슬을 끊고 앞서 나아갈 너는
결코 묶인 몸이 될 수 없음을

너를 삼킨 자들이
아직도 그 구역질나는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이 땅, 이 반도에
지금도 생생하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너

철아,
살아서 보지 못한 것, 살아서 얻지 못한 것
인간, 자유, 해방
죽어서 꿈꾸어 기다릴 너를 생각하며
찢어진 가슴으로 약속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이 땅
너의 죽음마저 거짓으로 묻히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말하리라
빼앗긴 너를 으스러지게 껴안으며 일어서서 말하리라
오늘의 분노, 오늘의 증오를 모아
이 땅의 착취,
끝날 줄 모르는 억압,

숨쉬는 것조차 틀어막는 모순 덩어리들,
그 모든 찌꺼기들을
이제는 끝내주리라.
이제는 끝장내리라.

철아,
결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우리의 동지여,
마침내 그 날
우리 모두가 해방춤을 추게 될 그 날
척박한 이 땅 마른 줄기에서 피어나는
눈물뿐인 이 나라의 꽃이 되어라.

그리하여 무진벌에서, 북만주에서 그리고 무등에서 배어난
너의 목소리를 듣는 우리는
그 날,
비로소 그 날에야
뜨거운 눈물을 네게 보내주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3김정치 #민주화20년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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