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주간사진공동취재단
나는 이들 소위 민주세력들에게 투철한 역사의식이 있었다고 믿지 않는다. 김영삼은 '5공 특검'이라는 요식행위를 통해 전두환, 노태우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며 김대중은 박정희 기념관 건립안 등으로 박정희에게까지 면죄부를 주었다. 그리고 희대의 반민주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살아있는 옥상옥의 법으로서 서슬 퍼렇게 존재하고 있다.
이런 악법을 방치해 두고도 이들 스스로 민주정권이었다고 자부하며 여전히 민주-반민주를 정치구호로 내걸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성찰 없는 역사 모욕이며 민주화 과정의 희생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누가 3공, 5공 세력을 부활시켰나. 아니 더 근본적으로 이들은 정말 부활한 것일까. 아니다. 이들은 민주세력과의 피가름에 의해 단지 양 진영에 나뉘어 암세포처럼 존재하고 있다가 다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았을 뿐이다. 나는 이것에 대한 동인을 87년 이래 20년 동안 역사적 정통성 없는 민주세력들이 확고한 역사 청산의식과 국가경영에 대한 최소한의 능력 없이 단지 자신들의 진영논리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해 끊임없이 조작한 '민주-반민주'라는 이분법 하나로 버티며 온 무능과 자충수가 그 직접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사정권 후예들이 이들 보다 탁월하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군사정권 후예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이라고는 민주세력의 거듭된 실정을 과거의 향수로 교묘하게 치환시킨 전략적 성공, 즉 순전히 반사이익에 의한 망령들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민주세력의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듯이 현재의 범여권을 모두 민주세력으로 볼 수 없듯이 한나라당 전체를 모두 군사정권의 후예로 몰아붙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당대표 하나로 곧 당의 정체성이 규정될 수 없는 것과도 같다.
87년을 민주화 원년으로 보는 것에 동의 한다면 그것을 기점으로 볼 때 민주세력은 크게 김영삼계-김대중계로 나누어진 것이고 김영삼계가 당시로서는 다수였던 5공세력인 민정당과의 합당으로 군사정권의 후예들이 김대중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율이 높아진 것일 뿐, 본질적으로는 군사정권의 후예들과 민주세력의 '혼혈아'들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일반의 인식이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은 김대중 정부가 정권을 잡으며 김영삼의 민자당(구한나라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과장되게 덧씌운 이미지가 오늘날까지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양김씨에 있어 도대체 누가 누구를 변절과 반민주세력으로 몰아세울 수 있단 말인가. 과연 김영삼의 3당 합당은 변절이고 김대중의 'DJP연합'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나. 혹은 그 반대라고 말할 수 있나.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그럼 민주세력이 아니고 단지 진보세력일 뿐이란 말인가.
모든 우상(偶像)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그렇다. 모든 우상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박정희 우상이 파괴되어야 하는 것처럼 소위 민주세력에 대한 우상도 이제는 함께 파괴되어야 한다.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추구했다는 것은 자유, 평등, 인권을 지향하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로서 충분히 존중되어야 할 것이지 곧 그것이 우상으로 떠받들어 지고 더군다나 정치적 능력으로까지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즉 민주주의는 인간사회의 선택 가능한 하나의 제도적 가치이지 민주주의가 곧 우상숭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지적한 대로 '3김정치', 특히 '김영삼-김대중'식의 정치가 더 이상 이 땅에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노무현 역시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참여정부의 실패로 인해 그 정당성이 심각히 훼손되면서 최근에는 다시 양김씨의 정치적 부활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자의든 타의든 다시 허용한다면 이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그렇듯이 곧 한국 민주주의의 명백한 퇴보다.
나는 김대중의 "우리 국민은 양당제를 원한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박정희 시대 이래로 이와 같은 동일한 주장을 해왔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여야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동조하는 것이야 말로 현재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주장은 '민주-반민주'로 전선을 최대한 단순화하여 기존 정치세력의 정치적 기득권을 최대한 획득하려는 목적 이외에 어떤 시대성을 담고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민주화 20년이다. 이 땅의 오늘날 민주화가 전적으로 민주세력의 헌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다수 민중의 희생과 피로서 이룩되었듯이 이미 21세기의 정치지형은 다원주의 하에 '국가권력'이 '대중권력'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추세이고 특히나 정책적으로 아무 변별력 없는 양당제로는 더 이상 이러한 대중의 다양한 욕구와 희망을 담아 낼 수 없음이 자명하다.
다른 면에서 한국정치인들의 의식구조가 이와 같이 여전히 '87체제'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대중의 요구가 적절하게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원천차단 당하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길을 지체시켜 왔다는 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반민주가 아니라 정책적 이념으로 분화하라
위에서 살펴 본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범여권의 '반한나라연대', 즉 '민주-반민주'로의 이합집산 노력은 애초 그 출발부터 아무런 역사적 정통성도 시대정신도 담고 있지 못한, 단지 생존전략의 진영논리에 지나지 않았음으로 해서 그 실패를 이미 노정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은 '도로 민주당'도 '도로 열린우리당'도 아니다. 또한 지지율만으로 볼 때, 이미 많은 한국 국민은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오늘의 민주화 20년에 대한 정치사적 평가는 한나라당내의 민주세력을 포함 '범민주 정치세력'의 총체적 실패에 대한 '산업화 세력'의 총반격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오늘의 '민주세력'이 당면한 위기는 87년 이래로 국민이 거듭 세 번의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중의 요구를 정치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역사의 반동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실패의 원인에서 해법을 찾아서 나아가는 것이 순리이고 정도가 아닐까.
간략히 말하자면 민주세력의 실패는 사회경제적으로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도입과 이의 적용, 그리고 이념적으로 급속히 군사독재세력에 흡수된 우경화에 있다. 이것은 87년 이래 민중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역한 필연적 결과로 보인다. 벌써 잊었는가? 온통 지랄탄, 발광탄이 난무하는 6·7·8·9월의 뙤약볕 아래서 곤봉에, 방패에 찢기고 피흘리며 목 놓아 외쳤던 민중들의 그 함성을 기억하는가? "근로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흩어지면 노예 되고 뭉치면 인간 된다"에 담겨있던 민의의 진정한 의미를….
그때 우리는 그랬다. 우리는 군사독재를 일소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했다. 우리는 군사독재의 억울한 죽음들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고 준엄한 역사적 단죄를 원했다. 우리는 군사독재가 정경유착으로 저질러 놓은 모든 잘못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부패를 일소하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와 분배, 그리고 공평한 시장의 룰을 통한 산업구조재편을 원했다.
그때 우리는 믿었다. 민주정권만 들어서면 이 모든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