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성품을 닮은 품천(品泉)의 삶을 꿈꾼다!

안빈낙도를 즐기는 정읍문화지킴이 이용찬씨

등록 2007.06.18 14:30수정 2007.06.18 14:30
0
원고료로 응원
a '가진 것 없지만 풍요로움을 느낀다'는 정읍문화지킴이 이용찬씨

'가진 것 없지만 풍요로움을 느낀다'는 정읍문화지킴이 이용찬씨 ⓒ 정읍시민신문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체(體)다. 진수(眞水)가 아니면 그 신기가 나타나지 않고 정다(精茶)가 아니면 그 체를 엿볼 수 없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침체되었던 불교계에서 차 문화의 일대 선풍을 일으켰던 초의선사의 저서 다신전 ‘품천’의 일부다.

수려한 정읍 입암산 갓 바위와 내장산 문필봉이 바라다 보이는 상교동의 나지막한 야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진산마을 ‘영모재’에 물의 품성을 닮듯 차를 즐기며 야인처럼 살아가는 문화지킴이 이용찬씨가 있다.

영모재는 최근 문화 활동가인 이씨가 그동안 영모재에 쏟아왔던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그가 오랫동안 염원했던 빗물이 스미던 본채 지붕을 수리하는 개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본채가 공사에 들어간 덕분에 아래채의 누추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씨를 만났다. 그는 간단한 격식을 갖추고 먼저 공사현장을 찍기 위해 문지방을 넘으려는 기자를 ‘우선 차부터 한 잔 하시라’며 바닥에 앉힌 뒤 긴 시간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줬다.

영모재는 문화 활동가 이용찬씨의 노력으로 지난 2005년 11월 새내기문화재인 근대문화유산 제 213호(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구한말의 풍류방이다. 이씨는 “영모재는 구한말 전국에서 가장 모집기준이 까다로웠다는 정읍권번의 예기조합장 김평창의 한옥 별장으로 자신이 이끌던 정읍권번에서 양성되었던 기생들의 시, 서, 화, 악, 예의 종합예술을 익혔던 기생들의 예술적 역량을 검증하던 심사 장소로 쓰였다”라며 영모재는 120년 전 오늘날의 연예인들의 공개 오디션을 보던 장소와 비슷하다고 소개했다.

영모재는 담고 있는 독특한 문화적 이력만큼이나 일반 한옥과는 비교되는 화려한 누각의 위용을 자랑한다. 하지만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는 산과 묘지로 이어져 한동안 재각으로 쓰이다 버려졌던 123년이 지난 고가에서 제례식의 전통방식 그대로 고집스런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상식 그 이상이다.

특별한 난방시설 없이 땔감을 만들어 구들의 난방을 하며 겨울을 났던 이씨의 고집스런 삶의 이유를 물었다.

"오늘날의 시대 흐름은 많은 사람들을 정치와 경제로 표명되는 힘의 논리에 생각 없이 편승해 좌충우돌 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다"라고 밝히고 "이러한 흐름은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자긍심 없는 역사의식의 부재 속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정립된 자긍심 있는 역사의식의 정립 없이는 올곧은 방향을 찾지 못한다"라며 시대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외롭게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씨는 또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한 역사의식의 부재는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 삶인지 조차 우리의 방식이 아닌 서구문명의 잣대로 기준을 정립하는 황당한 시대적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현 시대는 우리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조차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와 경제적 욕구를 충족하는 도구로 전락되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어 특단의 소신 없이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서는 본질적인 우리문화의 순기능은 시킬 수 없어 고단한 안빈낙도의 삶을 자처하여 이를 즐기고 살고 있다"라며 고집스런 그의 삶의 이유를 덧붙였다.

이씨의 물의 품성을 닮아가는 풍류적 삶의 배경에는 그가 지적한 우리사회에 만연한 역사의식의 부재 속에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나름대로 지키고 실천하기위해 시대흐름에 편승하지 않는 그의 고집스런 삶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씨가 근대문화유산 영모재에서 물의 성품을 닮듯 살아가는 품천 적인 삶의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그동안 이씨에겐 정읍과 정읍의 문화를 위해 곧은 의견을 개진하며 입었던 상처들이 있다. 문화를 비롯한 여타 단체들이 조직화된 모습을 갖추고 단체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마치 모든 것이 진실인 양 호도되는 것에 지적과 비판을 아끼지 않는 이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은 것이다.


실제 얼마 전에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다 큰 봉변을 겪기도 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이씨의 치아(이빨)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영모재에 많은 지인들을 불러들여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대적 격동기 속에서도 차를 통해 종교와 정치, 더는 사상과 이념의 벽을 넘어 화합과 상생의 길을 열었던 선인들의 물을 닮은 품천적 삶을 쫓아 차를 통해 시대를 통찰하고 바람직한 역사와 문화를 엮어가기 위해 즐기는 안빈낙도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길, 그 길을 이용찬씨는 홀로 외롭게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읍문화지킴이라는 수식어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북 정읍지역신문 '정읍시민신문'에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전북 정읍지역신문 '정읍시민신문'에 실렸습니다.
#품천 #문화지킴이 #정읍 #이용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