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실패자들의 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로마인이야기 응모글] 미완의 혁명가, 그라쿠스 형제

등록 2007.06.18 18:39수정 2007.06.2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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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니발 전쟁으로 알려져 있는 로마와 카르타고와의 전쟁(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기원전 2세기경 이탈리아 반도를 뛰어넘어 지중해의 패권국가로 웅대하게 비상하였다. 지중해에서는 더 이상 그들의 적수가 없었다. 이제 승리를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은 그들은 새로운 갈등으로 주춤하게 된다. 이 갈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내재하고 있었지만 전쟁으로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갈등이었다.

<로마인 이야기> 제2권 <한니발 전쟁>이 박진감이 넘치는 전쟁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면, 제3권 <승자의 혼미>는 전쟁 이후 카이사르의 등장까지의 이야기로 약간 주춤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로마는 내재적인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로마가 천년 넘게 그 수명을 간직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지중해의 패권국가가 된 이상 계속적인 영토 확장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로마는 일단 숨 고르기의 단계로 들어갔다. 역사적으로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고 자신들의 페이스를 지켜온 로마의 생존 방식은 로물루스의 건국 이후에 지루할 정도로 전진과 후퇴를 계속하면서 서서히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 과정을 지켜본(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자들로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과정이다.

귀족과 평민의 대립으로 나타난 포에니 전쟁 이후의 갈등구조는 어찌 보면 로마에게 있어서는 행운이 작용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 시기 동안에 한니발과 같은 강력한 적이 있었다면 로마는 귀족과 평민의 대립을 정리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고, 내재한 갈등은 로마의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카이사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특별하게 외부의 적이 출현하지 않았다. 그동안 로마는 나름대로 귀족과 평민에 대한 갈등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물론 이 해결이 평민을 위한 개혁에 도달하지 못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해결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름대로 로마는 뒤이어 등장하는 시기를 위한 과도기를 훌륭하게 보낼 수 있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혁명가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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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로마노 ⓒ 한길사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세계사 과목을 돌이켜보면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국가가 되었고, 카이사르가 등장하기 이전에 평민의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라쿠스 형제가 호민관이 되어 개혁을 시도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다.

<로마인 이야기> 제3권에서 접한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어찌 보면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무모함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박진감 넘치는 대결과 카이사르의 등장 사이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라 많은 사람들이 수박 겉핥기로 넘어갈 수 있는 약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 시기의 등장인물은 이후 로마 제국이 제국답게(?) 틀을 갖출 수 있게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사람들 중에 그라쿠스 형제들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이 아니라 평민들의 권리를 올바르게 대변하기 위해서 노력한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어쩌면 로마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호민관'이라는 직책에 가장 어울리는 역할을 감당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로마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오면서 로마의 귀족들은 정치와 경제적인 면에서 상당한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권력을 쥐고 있는 그들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면 시작하기 힘든 도전이었다. 또한 그들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표현에 적합했던 아쉬울 것이 없는 환경을 벗어나 '이상적인 로마'를 위해 자신들의 전 존재를 내거는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그라쿠스 형제는 호민관으로서 평민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로마의 정치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 호민관을 지낸 사람이 원로원에 진출하였던 당시의 상황에서 '출세가 보장된' 호민관으로서 원로원이 버티는 귀족에 대항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보면 상당히 무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들은 귀족들의 음모에 의해서 좌절하였고, 목숨까지 잃었다. 이렇게 실패자의 모습으로 알려진 그들의 개혁은 왕정에서 공화정, 그리고 제정으로 이어지는 로마의 역사 속에서 소홀히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소수자의 목소리였다. 그들이 대변한 평민(민중)은 힘을 합쳐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들이었다.

곧이어 등장한 카이사르의 화려함으로 쉽게 잊혀갈 운명에 처해버린 그라쿠스 형제들이 유달리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주류(역사의 승자)에 대한 비주류(역사의 패자)에 대한 동경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시오노 나나미가 말한 바와 같이 '혼미한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 시기는 로마가 지나친 확장을 통한 오버페이스에 빠지지 않도록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드러난 혼미한 상황은 권력을 쥔 자들에게는 지속해서 가지고 있어야 할 장점으로 보였을 것이고, 권력에서 소외된 자들에게는 반드시 고쳐야 할 약점으로 보였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개혁이나 혁명은 항상 불평등한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역사 속에서 뛰어난 감각을 타고난 자에 의해서 간파되었다. 뛰어난 감각을 소유한 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개혁과 혁명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대부분 개혁과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사람들은 적당한 타협과 양보의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라쿠스 형제에게는 이러한 미덕이 없었다. 호민관으로서 개혁의 선두에 선 그들은 결국 권력자들에 의해서 제거되어야 할 암적인 존재로 인식되었고, 죽음으로 그 자신이 생과 함께 민중에 대한 꿈도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하고 좌절했다고 하더라도, 기록으로 남은 그들의 노력은 후대의 역사를 통해서 끊임없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 그 당시 시대 속에서는 실패자로 남았지만 역사 속에서는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혁명가로 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원했던 것은 후대의 역사를 통해서 비록 변질되기는 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전승되고, 시도된다는 점에서 그들을 단순히 실패자로 구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간단히 로마의 약점에 대해서 과감하게 비판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그것을 고치려고 했다. 그들은 정상을 차지하려는 욕심보다 불평등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이것이 뒤에 등장하는 카이사르와 다른 점이었다. 카이사르 역시 현 로마의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당시 로마의 구조 속에서 자신을 성장시켰고, 그 제도 속에서 결국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가 최고의 위치에 올랐을 때, 그는 자신의 의지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상황으로 로마를 고치기 시작했다. 물론 마지막에 암살을 당해 생을 마감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유산은 그의 뒤를 이은 황제들에 의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계승되었다.

'실패'로 끝났기에 더 큰 가능성 지닌 패배자들

역사는 실패자들에게 성공자들보다 더 큰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성공자는 이미 그들의 성공이 역사를 통해서 증명되었기 때문에 더는 논할 가치가 없다. 그러나 실패자들은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성공자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로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백범 김구' 선생을 꼽는다. 그는 해방 전후에 지도자 중에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유력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그러나 암살범에 의해 그의 뜻이 도중에서 미완성된 상태로 남겨졌다. 그리고 그의 이상과 꿈은 그의 일기 '백범일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만약 김구가 우리나라의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올랐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떠했을까? 최고 통치자가 되었기 때문에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런 모습은 상당히 많은 사람의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러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패자로 은퇴했을 때 적들조차도 경의를 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와 대통령에 오른 이후,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또한 사르트르가 극찬한 '체 게바라' 역시 그 생은 독재정권에 의해서 좌절되었고, 죽음을 맞이했지만 오늘날 역사를 생각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참된 인간의 꿈에 대해서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역사는 역사 나름대로 평가 기준이 있다. 성공자는 성공한 모습이 가지고 있는 양면적인 성격 때문에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패자는 실패한 이유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크고 성공했을 때의 기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역사는 실패자가 꾸었던 세상을 알게 모르게 변형된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자기의 모습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이야기 글쓰기 대회 응모작입니다'

덧붙이는 글 '로마인이야기 글쓰기 대회 응모작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로마인이야기 #시오노나나미 #그라쿠스 형제 #호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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