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다한 핵발전소, 이제 저 세상으로 보내자

핵발전소 고리1호기, 위험한 수명 연장 시도 중단돼야

등록 2007.06.19 15:12수정 2007.06.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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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고리 핵발전소 앞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국내 상업적 핵발전의 시초인 고리 핵발전소 1호기 장례식이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 등에 의해 진행되었다. 고리 1호기는 1967년 10월 장기전원개발계획에 따라 계획이 확정된 후 1971년에 착공, 1977년 상업적 핵발전을 시작했다. 설계수명은 지난 6월 18일로 만료되었고, 이에 앞서 9일부터 가동이 중지된 상태다. 고리 1호기 발전소의 설계 수명 만료와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006년 6월에 과학기술부에 10년의 수명 연장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핵발전소 계속운전인가, 수명연장인가

한수원 등 관계 기간은 수명연장이라는 말 대신에 계속운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계속운전은 '설계 수명에 도달한 원전이 관련 법령에서 요구하고 있는 안전기준을 만족해 설계수명 이후에도 계속해서 운전하는 것'을 말하며, 설계수명은 '원전 설계 시 설정한 목표기간으로서 원전의 안전 및 성능 기준을 만족하면서 공학적으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 기간'을 말하는 것이라 강변한다.

사실 계속운전이라는 모호한 용어는 '발전소 수명연장(PLEX)'을 가리키는 말이다. 발전소 수명연장은 발전소 수명관리(PLIM), 장기 가동(LTO)과 함께 동일한 활동(주요한 문제점 없이 가동되어 왔던 것으로 보이는 노후한 핵발전소들의 가동을 시간에 관계없이 확대하는 것)의 또 다른 명칭일 뿐이다. 계속운전은 한수원 등이 노후화해 위험한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조치로, 이 모호한 개념은 위험성을 은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위험의 사회적 수용, 계속 자동차와 비교할 것인가

그러면서 주요한 부품의 교체 및 교환을 통해 자동차의 수명을 늘리듯 핵발전소의 수명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장주경 고리핵발전소장은 '안전 입증된 고리1호기 수명연장하자'라는 글에서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과 비교하며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을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이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자동차와 비교하는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핵발전소의 사고 현황 및 안전성에 관한 연구는, 아래 그림에서 확인되듯이, 핵발전소 사고 비율이 핵발전소의 가동 초기와 이론적인 설계 수명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급격하게 높아진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초기 가동 과정에서 발전소 설계 및 운전상 실수에 의한 사고가 많아지며, 이후 이론적인 설계 수명 기간 동안 수용 가능한 사고 비율을 나타내다가, 설계수명이 종료되는 시점부터는 급격하게 사고가 많아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핵발전소 설계 수명을 넘어선 수명연장의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핵발전의 안전관리 및 운영의 인위적 한계를 넘어서는 위험성에 대한 경고다. 핵발전소 안전성은 당위적으로 설명되는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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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사고 비율의 전형적 곡선(HIRSCH, 2005) ⓒ 생태지평


비단 직접적인 사고 비율 문제만이 아니라도, 우리 사회가 핵발전소를 비롯하여 각종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양한 위험 중 어떤 위험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핵발전소의 위험'을 개인의 선호와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와 비교하는 방식은 적절치 못하다. 그 둘은 위험의 대상과 영향, 개인과 사회의 선택의 범주가 절대적으로 비교조차 되지 않는 대상이다.

사실 1970~1980년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핵 발전 중흥 정책'을 '민족적 과제'이자 '강대국으로 가는 지름길'로 설명하였던 시대에 핵 발전에 대한 국민의 이해는 제한되어 있었으며, 전력원에 대한 자기 결정이나 위험과 기회에 대한 국민의 선택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당시 국제적인 에너지 파동을 거치면서 정부로 대표되는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에 의한 '전력원으로서 핵'의 선택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국가적 명령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 여전히 1970년대와 같다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확률적 통계상 핵발전소의 사고 위험성이 낮다고 할지라도, 핵발전소에서 비롯된 위험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은 여전히 낮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렇기에 사고 위험이 낮다는 핵발전소와 방폐장 등 관련 시설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한수원 등 원자력계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라는 시대적 과제에 충실해야 하지만, 그와 달리 막대한 광고비를 들여 핵발전소 안전성만을 홍보하는 희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을 뿐이다.

노후화하는 핵발전소... 각국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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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원자력 발전소의 운전 시간(IAEA PRIS 2005). ⓒ 생태지평


위 표에서 드러나듯 세계적으로 30년 설계수명이 만료됐거나 그 시점이 도래하는 핵발전소(붉은색 도표)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즉 신규 핵발전소는 급감하고 상대적으로 노후한 발전소가 많아졌다. 또한 이 표는 체르노빌 사고(1986) 이후 핵발전소 건설이 세계적으로 급감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핵발전소 건설의 불확실성 및 대중의 반대, 높은 비용 투자, 장기 건설 과정 등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핵발전소들은 발전소 수명연장과 출력 증강 같은 방식을 택하고 있다.

특히 발전사업자들은 안전성 부분과 무관하게 핵발전소 초기 투자비용을 이미 오래전에 회수했기에, 가능한 한 핵발전소에서 장기간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 수익성 향상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수명연장을 선호한다.

그러나 발전소 수명연장과 출력 증강은 사실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위협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적인 경향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더 위험스럽게 할 뿐이다.

현재 존재하는 OECD 국가의 핵발전소 평균 가동연수가 20년 정도며 평균 수명을 30년으로 볼 때, 2015년 무렵 핵발전소의 폐로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할 전망이며 그것이 새로운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고리1호기의 수명연장 필요성을 주장하는 원자력계의 주장처럼 국제적으로 대부분의 상업용 핵발전소의 수명은 국가마다 상이한 기준과 상황에 근거하지만, 대부분 핵발전소의 설계 수명은 30~40년이다. 이는 원자로 노심과 노심 냉각시스템을 포함하는 부품들이 중성자 조사, 고온, 고압에 의해 약해지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수명연장을 한 핵발전소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례로 미국에서만 104개의 핵발전소 중 48기의 핵발전소가 수명연장(면허 갱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원자력으로 생산한 전력은 전체 전력 생산의 20%(연차 에너지전망 2006에 따르면 2030년에는 총 전력 생산량 중 15% 차지)에 불과하며, 1979년 TMI(쓰리마일섬) 2호기에서 최악의 노심 용융 사고가 발생한 후 지금까지 단 1기의 신규 핵발전소도 건설하지 못한 것 역시 사실이다. 총 23기의 원자로 중 10기를 수명연장 하였다는 영국 역시,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경제성에 대한 논란과 노후화로 2023년까지 1기의 원전을 제외하고 폐쇄해야 할 형편이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 역시 최근 메르켈 총리 체제(기민-사민당 연립 정부)가 등장했음에도 핵발전소의 발전량에 따라 2020년까지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지를 결정했던 2000년 법안은 바꾸지 않을 전망이다. 이로 인해 2007년 3월 독일 환경부와 독일 원자력 규제기관은 독일 전력회사 RWE가 신청한, 비블리스(Biblis) A 핵발전소를 2011년까지 수명연장 하는 방안을 거부했다.

또한 수명연장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관련 법제도에 대한 논의가 장기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고, 각종 일상적인 점검 평가제도(미국과 캐나다가 체계적 성능평가(SLA)와 개별적 원전점검(IPE), 2년 주기의 운영허가 재심사 등)를 시행하고 있다. 여타의 나라들도 주기적 안전성 평가를 10여 년 전에 도입하여 평가제도로 활용하고 있다(평가제도일 뿐 수명연장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명연장을 하는 핵발전소의 각종 정보 공개와 공청회 등을 통한 의견 수렴, 주민 참여 절차가 충분하게 마련되어 있다. 유럽의 ESPOO 협약 혹은 Aarhus 협약은 타국에서 진행되는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와 의견 수렴, 주민 참여 절차를 제공하고 있을 정도다.

외국의 이런 상황은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관한 정보 공개 자체가 한수원이라는 발전 사업자의 영업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거부되는 우리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리 1호기의 폐로를 공고하다 2002년 폐로 계획 자체를 폐지하고, 2005년에 원자력법을 졸속으로 수정할 지경이다. 그렇기에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한 국내외 상황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며 수명연장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은 위험에 대한 알권리와 사회적 수용성, 전력원에 대한 국민 자신의 결정 권한 등 국가 및 사회적 이익과는 무관한, 핵발전소를 소유한 발전사업자의 자기 이익을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2005년 9월 수명연장을 결정하였던 영국의 던니스-B 원전(AGR)의 성능 개선 프로그램 책임자 앤 워드(Ahn Ward)가 "원전의 수명을 연장키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상업적 이유며, 브리티시 에너지(BE)사가 동 원전에 바라는 것은 10년 간 수명연장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을 정도다. 누가 이 상황에서 사회적 이익을 이야기하는가?

핵발전소 폐로는 새로운 변화의 기회

우리가 고리핵발전소 1호기와 관련해 살펴봐야 할 것은 수명연장에 대한 법률적 절차를 한수원의 신청과 과기부의 안정성 진단으로 극히 간단하게 만든 제도 자체의 문제점, 무엇보다 최소한의 정보공개와 수명연장의 타당성 검토의 합리성, 전문가와 지역주민에 대한 검토 과정 등이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수명연장 논란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지와 폐로를 이제 본격적으로 고민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장·단기적으로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지를 결정한 국가(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오스트리아, 독일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상식적인 핵에너지 지속 주장을 종결하고 재생가능 에너지원을 확장하기 위한 국가 에너지 정책 전반의 전환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핵발전소 폐쇄는 공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100개의 우라늄 광산, 90개의 상업용 원자로, 250개 이상의 연구용 원자로와 연료 사용 시설의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핵발전소 폐로를 세상의 종말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그로 인해 이익을 받아왔던 원자력계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래 표는 세계 각국의 상업용 원자로 폐로 현황 관련 자료 중 일부다. 이 표에서 드러나듯이 핵발전소 폐로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각국에서 진행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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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상업용 핵발전소 폐로 현황. ⓒ 생태지평


핵발전소의 수명연장과 폐로와 관련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002년 원자력 안전 검토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수명연장이 시도되고 있으나, 결국은 해체작업을 수행해야 하므로 이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성공적인 해체작업을 위해서는 가능한 빨리 해체에 대한 세부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에는 해체에서 발생할 페기물의 파악, 관리 방안, 처분 시설 가동 계획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IAEA, Nuclear safety Review of Year 2002)"

고리 1호기 수명만료에 이어 2012년이면 또다시 월성 1호기 설계 수명이 종료된다. 고리1호기에 대해 편법적이고 졸속적인 수명연장이 결정된다면, 지역 주민과 국민 스스로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을 결정할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게 되는 꼴이다. 어떤 전력원을 선택하고 그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소비자이면서 위험을 감수할 주민과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논란은 우리 사회의 핵 중흥 정책과 재생가능 에너지 확장 정책의 갈림길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수명연장이 아니라, 관련 법제도에 대한 합리적 점검과 핵발전 시설의 안전성에 대한 종합 접근, 장기적으로 폐로를 현실적으로 검토하고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핵발전소의 폐로, 이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변화를 위한 시간이다!(It is time for change!)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레디앙(www.redia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레디앙(www.redia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 #고리1호기 #수명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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