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픈 곳을 콕콕 찔러준 노래와 삶

'노동가수' 지민주를 알게 된 기쁨

등록 2007.06.20 12:12수정 2007.06.2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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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처럼 두려웠나요. 음 알고 싶어요
밤새 뒤척이다 어느덧 하얀 달도 기울고
벽에 걸린 빨간 머리띨 보면 왠지 걱정이 되죠
겁 많고 눈물 많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몰라서
쫓겨 가는 동료를 봐도
아무 말 못하고 속만 태웠죠
고개만 숙였죠 입술만 깨물었죠
이런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도 강해져야 할 텐데

- 지민주 2집 앨범 '파업전야' 중


석 달 쯤 전, 지민주 2집 앨범에 담긴 이 노래를 처음으로 들었다. 집에 지민주 2집 앨범이 있는 걸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해 온지 한참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저 앨범이 어떻게 있냐고? 자칭 지민주의 열혈 팬(?)인 남편 덕분이다. 사전예약을 한 저 앨범이 집에 도착한 날, 남편은 지민주 사인이 담긴 저 앨범을 자랑스럽게 내 앞에 내보였건만 내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떠오른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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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주의 2집 앨범 '길 그 끝에 서서'. ⓒ 조혜원

언제부터였을까? 새로 나온 민중가요들을 듣지도 않고 외면하기 시작한 게. 사오년 쯤 되었나보다. 그 때는 민중가요 신곡들이 오로지 '개인의 삶'만 노래하는 듯 했다. 듣기엔 편하고 좋았다. 그래, 내 이야기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갈증이 생겼다. 화도 났다. 언제는 개인의 삶이, 내 삶이 힘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공통의 아픔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난 3월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책상 서랍에 있는 지민주의 2집 앨범을 꺼냈다. 컴퓨터에 저 음반을 넣고 제일 먼저 들은 노래가 바로 '파업전야'다.

맨 처음 듣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무언가 내 가슴을 '퍽'하고 치는 듯 했다. 눈물이 나왔다. '이럴 수가! 이런 노래가 있다니!' 이 노래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파업이나 투쟁 같은 거, 태어나서 처음 해보았을 KTX 여승무원들이 떠올랐다. 그네들한테 불러주면 어울릴 듯 했다. 하지만 곧 지나서 깨달았다. 나한테 딱 맞춤인 노래라는 걸.

정말로 겁 많고 눈물 많은 난, 십년도 더 전에 마치 폭탄처럼 쏟아지는 지랄탄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무너져 거의 실신할 지경에 이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더는 '폭력'이 예상되는 집회에 나가지 못했다. 아니 가기는 했다. 본 대오에 들어가지 못하고 멀찍이서 바라보는 사람으로.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고 돌아온 날이면 '노래'한테 너무 부끄러워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 힘들었다.

'현장'에서 더욱 빛나는 지민주의 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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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3일에 있던 '전노련 6.13대회'에서 열창하는 지민주씨 모습. 공연장에서 너무 열심히 뛰어다니며 노래하는 덕에 지민주씨 사진 찍기란 무척 힘든 일이라고 한다. ⓒ 전노련

십년 넘게 남몰래 간직해 오고 있는 이 콤플렉스가 이 노래 때문에 아프게 떠올랐다. 그러면서 이 노랫말을 쓴 지민주라면 이런 내 콤플렉스를 이해해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다. 아니 그보다 혹시 지민주도 나처럼 '겁 많고 눈물 많아 힘들었던 때'가 있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지민주씨, 당신도 나처럼 겁 많고 눈물 많던 때가 있었나요? 알고 싶어요."

이렇게 2집 앨범을 들으면서 푹 빠져버린 노동가수 지민주씨. 드디어 '집회 현장'에서 그 사람의 노래를 들을 기회를 잡았다. 지난 6월 17일,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이랜드 일반노조 2007년 투쟁문화제'에서다.

그 장소에는 '노동운동'과는 상관없이 살았을 법한 아줌마들이 계셨다. 이랜드에서 잘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지민주는 그분들한테 정말 딱 맞을 노래 ‘파업전야’를 불렀다. 그 노래를 목이 아프게 따라 부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집에서 혼자 들었을 때랑은 정말 다른 이 느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렇게 혼자 찔끔거리다가 이어지는 힘찬 노래 '비수', '파도 앞에서'를 들었다. 오디오와 현장의 차이가 이런 걸까? 아니면 머리와 가슴의 차이가 이런 걸까? 음반으로 들었을 때보다 훨씬 멋지고 힘차게 들리는 노랫소리에 완전히 감동을 받았다.

가창력이 정말 엄청났다. 듣는 내내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 진한 감동은, 아마도 십수 년 동안 현장에서 갈고닦은 지민주 만의 '아우라(Aura)'가 보태져서 일 테지.

이렇게 '현장'에서 더 빛이 나는 지민주의 노래를 듣고 따라하면서 마음속으로 사람들한테, 그리고 나한테 이렇게 외쳤다.

'들어 봐라, 저 사람의 힘찬 목소리를! 이게 바로 민중가요다. 그저 지난 추억 속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현장에서 불려야 하고 부를 수밖에 없는 바로 그 민중가요다!'

공연을 본 그날, 집에 오자마자 지민주 홈페이지(http://jiminju.naroot.net)에 가보았고, 그곳에서 난 다시 한 번 울음을 터트려야 했다. '민주의 현장일기' 때문이었다. 지민주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쭉 서오고 있는 현장과 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나를 울린 '민주의 현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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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주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민주의 현장 일기.' 노동가수 지민주가 풀어내는 삶과 노래에 대한 따뜻하고 애틋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지민주 홈페이지

이렇게 열심히 노래하는 사람이 버젓이 있건만 내 멋대로 그런 사람은, 그런 노래는 없노라고 단정하고 지낸 시간들이 미치도록 부끄러웠다. 지민주라는 사람이 '문화 노동자'로서 살아 온 시간들이 오롯이 담긴 따뜻하고 애틋한 그 글들은 '머리'로만 노래를 해온 나를 끊임없이 반성하게 만들었다.

문화 노동자, 노동가요, 노동문화에 대하여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간 저 글은 내 가려운 곳을 쓱쓱싹싹 긁어주었다. 내 아픈 곳을 콕콕 찔러주었다.

한 번씩은 내 마음이랑 비슷한 글이 나와서, 흐뭇하기도 했다. 지민주와 내가 (마음으로만) 통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만 옮겨 본다.

'내가 노동가요를 알고 부르고 있는 지금까지의 날들을 적어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내 신념이 투철해서도 아닐 것이다. 노동가요를 알면서 세상을 보는 법을 알았고 그 속에서 나의 삶 또한 규정되었기 때문에. 그 노래의 진실과 거짓, 아니면 다른 모든 이면들까지도 내겐 너무나 소중한 또 다른 나의 분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 나의 노래가 좋다. 노래하는 것이 한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모르긴 해도, 내가 고등학생이던 1994년부터 연대를 위한 노래모임, '좋은 친구들' 활동을 했다고 하니 지민주가 나보다 언니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민주 언니'한테 편안하게 몇 마디 건네고 싶다.

"민주 언니, 저도 노래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그저 들어서 좋고 맘 편한, 그리고 즐거운 노래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기에, 오늘도 그 세상의 노래를 하고 있는 언니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노동문화에 투자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 돌아온다던 언니 생각에도 백번 천 번 마음을 같이 한답니다.

그거 아세요? 언니가 '비상'에서 노래한 것처럼 언니가 부른 노래들이, 나도 모르게 멈춰버린 내 심장을 두드려 깨웠다는 거. 내 심장 두드려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제부터라도 언니처럼 더 낮은 곳의 노래를, 더 아픈 곳의 노래를 불러보도록 애써 볼 게요. 노동자와 문화 노동자가 함께 세상의 주인이 되는 그날까지 말이에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구 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키우는 인터넷 신문 '은평시민신문(www.ep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구 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키우는 인터넷 신문 '은평시민신문(www.ep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민주 #노동가요 #민중가요 #노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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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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