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1시 용인 삼성에버랜드 정문 옆에서 외국인 공연단의 노동권과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중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착취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이정하
용인 에버랜드에서 퍼레이드 공연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예나 다름없는 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명 '노예계약서' 파문은 삼성에버랜드 공연단에서 무용수로 일했던 우크라이나인 옥산나(29.여)씨가 지난달 15일 수원외국인노동자쉼터에 상담을 의뢰하면서 알려졌다. 무거운 공연 장치를 착용하고 일을 하던 중 쓰러져 심각한 허리디스크에 걸렸지만 제대로 된 산재 처리나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1일 용인 에버랜드 정문 옆에서 다산인권센터 등 경기지역 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삼성에버랜드 공연단 이주노동자 노동권과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인권 및 노동권을 침해하는 삼성에버랜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초일류 기업이라고 자부하는 삼성이 국제적으로 말도 안되는 노예계약을 강요하는 등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다"며 "앞으로 '괴물 삼성'과 힘겨운 싸움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규탄 발언에서 "현행 파견법상 공연단의 업무가 26개 파견허용업종에 속하지 않는다"며 "삼성에버랜드측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에버랜드가 동일엔터테인먼트(이하 동일)에 인력파견 용역을 맡기면서 이중 고용구조 형태를 취한 것이 불법이라는 것.
때문에 삼성에버랜드와 동일은 공연단의 근로계약서를 파기하고 근로기준법에 맞게 재계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공연단 이주 노동자들의 산재처리 및 근무 환경 개선 등 삼성측의 책임 있는 자세를 주문했다. 이는 공연단의 근로감독과 업무 지시 등 실질적 관리를 삼성 에버랜드에서 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에버랜드와 동일측은 공대위의 이중 고용 주장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위법하다면 정부와 행정기관에서 17년 이상을 묵인해줄리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에버랜드와 동일은 지난 1990년부터 인력파견 계약을 맺어 오고 있다.
불법 파견업무 '에버랜드' 책임 공방
이날 기자회견에는 '노예계약서' 파문의 중심에 서 있는 옥산나씨도 참석, 에버랜드측에 노동권과 인권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서를 제출했다.
옥산나씨는 "지난해 11월 공연도중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며 "그런데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연습과 공연을 병행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3월에는 5kg 가량의 나비의상을 입고 춤을 추다 쓰러졌지만 산재보상은 커녕 오히려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2주 이상 치료를 요하는 질병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본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계약 조건이 문제였다.
공대위가 공개한 외국인 무용수들과 동일의 계약서에 따르면 공연 도중 사고 발생시 보험회사만이 모든 책임을 진다. 또 공연 도중 1개월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치명상을 입었을 경우 사측은 계약을 파기할 수 있으며 무용수를 본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더욱이 계약서에는 ▲염색을 하지 않으면 100달러의 벌금을 월급에서 공제 ▲휴게시간 동안 지정된 장소 이탈 금지 ▲2명 이상 그룹행동 금지 ▲1달러 이상의 진단서 발급시 즉시 해고 가능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공대위가 계약서상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며 '현대판 노예계약'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에버랜드 공연단 현장에서의 인권탄압 사례파악과 계약서상 노동권, 인권 위반조항 해석, 관계된 유사업종 등 조사 벌여 국가인권위원회, 노동부 등에 진정 할 예정이다.
한편 문제가 더 불거지기 전에 옥산나씨를 회유, 우쿠라이나로 돌려보내 입을 막으려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남경호 수원외국인노동자쉼터 대표는 "옥산나씨에게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한 관계자를 통해 2천만원을 줄테니 조용히 본국으로 돌아가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남 대표는 그러나 "삼성이나 동일측에서 회유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옥산나씨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주노동자 전체의 문제인 만큼 끝까지 싸우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