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흔들어야 할 것은 '성조기'가 아니다

등록 2007.06.22 08:48수정 2007.06.22 09:24
0
원고료로 응원
성경 마태복음 23장 13절에 나오는 말이다. 예수가 군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한국 교인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개역한글판 성경은 20세기 초반의 언어로 쓰였는지라, 위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표현이 상당히 생경하고 어려운 편이다. 특히 '외식'이라는 표현은 한문 외식(外飾)을 모르고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단어다.

차라리 '위선'이나 '허식'이라고 했으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중국어로 쓰인 한 성경에서는 외식을 '선한 체 가장하는'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이 외식을 외식(外食)으로 이해한 할머니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그 할머니는 오로지 성경만 배운 독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할머니는 열심히 성경을 읽었고 또 믿음도 독실했다고 한다.

일부 불교 신자들이 정확한 의미를 모르면서 어려운 불경을 유창하게 외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어느 종교든지 간에 그런 경우에 '무식'이 믿음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경말씀이니까 무조건 믿고 실천해야 한다?


성경 말씀과 목사님 말씀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그 할머니는 자신이 배운 것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교회를 열심히 믿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외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식(外食)을 말이다.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성경에서 외식을 하지 말라고 했기에 그 할머니는 문자 그대로 그것을 실천한 것이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자들이여!"라고 했기에 외식(外食)을 하면 무슨 천벌이라도 받을지 모른다는 그런 공포심을 갖고 말이다.


이 할머니의 경우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을 많이 배운 기독교 신자들의 경우에도 어려운 개역한글판 성경 구절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무조건 열심히 읽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수십 년간 열심히 부른 찬송가 가사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내용 여하를 자세히 따져 보지도 않고 "성경 말씀이니까 무조건 믿고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독실한 크리스천들이 한국에는 적지 않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성경 디모데후서 3장 16절을 문자 그대로 믿은 나머지, 성경을 기록한 것은 결국 인간이고 인간이 기록한 것이기에 거기에도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매우 상식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나마 양반 축에 끼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차라리 순수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사람들의 맹목적인 신앙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외식문화가 좀 타격을 받아 식당 주인들이 울상을 짓는다면 모를까.

목사가 흔들어야 할 것은 성조기가 아니라 천국의 깃발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성경 말씀도 아닌 목사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 신자들이다. 목사의 설교가 성경에 없는 이야기인데도, 심지어는 성경에 위반되는 이야기인데도, 그저 "목사님 말씀"이니까 하면서 무조건 믿고 또 무조건 "아멘!" 하고 외치는 신자들이 있다.

특히 위험한 것은, 목사의 설교를 듣는 중에 목사의 정치적 신조까지 무조건 모방하는 신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목사가 기도 중에 성경과는 무관한 정치적 신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에도 무조건 "아멘!" 하고 외치는 것이다.

사단 마귀와 하등 다를 것 없다는 '악의 축' 북한을 두려워하는 목사님의 기도 소리를 눈 감고 들으면서, 목사님이 싫어하시는 북한을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깜냥도 안 되는 '젊은 놈'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사님의 기도 소리를 곰곰이 들으면서, 목사님이 싫어하시는 정치집단을 그냥 싫어하는 맹렬 신자들이 있다.

우리를 보호해 주는 미국을 몰아내려는 철부지들이 있다고 걱정하는 목사님의 기도를 가만히 들으면서, 목사님이 싫어하시는 반미 경향에 무조건적 혐오감을 갖는 신자들이 있다.

목사님이 그런 기도를 하면 눈치 빠른 장로와 집사도 다음 번 대표기도(목사 설교 전에 평신자가 하는 기도)에서 똑같은 기도를 울부짖으며 내뱉는다. 하나님 들으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목사님과의 일체성을 표시하는 기도인 동시에 동료 신자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기도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올리는 기도다.

이제 대통령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6개월 동안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는 또다시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들으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유권자들 들으라고 하는 유세가 될지도 모른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목사 설교에서 옥석을 가리지 못하고 비성경적인 기도에 대해 "아멘!" 대신 "노!"라고 외치지 못한다면, 외식(外飾)과 외식(外食)을 분간하지 못하고 평생 집에서만 식사를 한 그 할머니 신자를 비웃을 자격이 없을 것이다.

목사가 신자들을 인도할 곳은 천국이지 서울시청 앞은 아닐 것이다. 목사가 소개해줄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이지 미국과 특정 정치집단은 아닐 것이다. 목사가 흔들어야 할 것은 천국의 깃발이지 성조기는 결코 아닐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3. 3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4. 4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5. 5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