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인어가 되고 싶다

부산갈매기, 싱싱한 자갈치 여름바다가 부른다

등록 2007.06.22 11:58수정 2007.06.2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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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외로운 부산 자갈치 갈매기

외로운 부산 자갈치 갈매기 ⓒ 정애자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세박자

'부산'하면 갈매기일까, 자갈치일까?


자갈치의 싱싱한 바다가 여름을 부른다. 자갈치 아지매의 낙지처럼 착 달라붙은 호객의 목소리가 싱싱한 여름을 부른다. 한 마리 인어로 돌아가고 싶은 여름. 코끝을 스치는 해풍에 실려오는 여름은 비릿한 고기냄새가 난다.

해안선 겨드랑이에서 푹푹 땀 냄새가 풍기는 부산 자갈치 바다에 총총 발목이 묶인 크고 작은 배 사이로 손바닥만 한 자갈치 항구의 바다는 부산 갈매기 떼들 날개연습 나가고 병든 갈매기 한 마리만 항구의 바다를 지키고 있다.

a 자갈치시장안 내 마음데로 횟감을 고른다

자갈치시장안 내 마음데로 횟감을 고른다 ⓒ 회센터

회 값은 바다와 내가 정한다

부산하면 외지인들은 대부분 자갈치를 연상하고 싱싱한 회를 떠올린다. 여기서는 평소 비싸서 구경할 수 없는 싱싱한 회를, 각자 구한 생선의 가격 따라 달라서, 다양한 횟감만큼 다양한 맛도 즐길 수 있다.

물론 직접 횟감을 구하지 않고도 회를 즐길 수 있다. 가게마다 가격은 가게 주인 마음이 아니라 그날의 어획량이 정하는 시세와 주문하는 손님의 흥정에, 최소한 회 한 접시의 가격은 1만원에서 2만원 이상 등이다.


한 접시의 양 역시 먹는 사람들의 양에 따라 따르겠지만, 서너 사람이 먹어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 자갈치 시장 안의 회센터 건물은 3∼4군데가 있고, 이 건물 안의 회센터 가게들은 층층마다 싱싱한 횟감을 직접 사온 손님들에게 초장과 마늘, 파 등의 가격을 따로 받아서 운영하고 있다. 1회분을 먹을 수 있는 초장의 가격은 이천원 안팎, 마늘과 상추, 파 등 각각 주문하는 양과 가격은 그날 채소시세에 따라 근소한 차이로 가산된다.

회 한 접시만 주문하면 이에 초장 마늘, 파 등 재료가 무료로 제공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싱싱한 회 맛을 즐기려면 내 손으로 직접 고른 생선이 좋고, 또 노련한 회칼솜씨에 장만되는 구경도 자갈치 구경 중의 하나를 더 할 수 있다. 바닷물에 씻어서 정갈하게 담아주는 회 접시를 들고 자갈치 바다가 보이는 목이 좋은 창가나, 신문지를 깔고 방파제에 앉아 파도가 뱃노래를 불러주는 부산 자갈치 바다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


a 자갈치 항구 발이 묶인 배들

자갈치 항구 발이 묶인 배들 ⓒ 정애자

깊은 낮잠에 빠진 배들

총총 발이 묶인 배들은 야간근로자들처럼 낮에는 항구에 돌아와 잠을 잔다. 밤이면 발이 묶인 배들이 밤바다에 나가 야간어로작업을 하면서 싱싱한 생선을 잡아 자갈치 새벽 항구로 돌아온다. 들고나는 많은 배들 중에는 아엠에프를 맞아서 압류딱지가 붙은 배들도 상당하다.

철썩거리는 바다는 어서 바다로 떠나자고 재촉하고, 아침 출근길의 자명종 소리를 듣고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눈을 뜨지 못하는 피로감 같은 엷은 꿈속처럼 대낮의 자갈치 항구는 한가롭다. 한가롭기에 더욱 시끌벅적한 먹자골목, 꼼장어(갯장어) 구이 가게 안 철망 밖으로 바라보는 자갈치 바다는 해수욕장이 있는 해운대나 수평선을 가로막는 광안대교가 있는 광안리 바다와는 마치 삼팔선 이편과 저편처럼 다르다.

a 엉성한 철망을 단 곰장어구이가게

엉성한 철망을 단 곰장어구이가게 ⓒ 정애자

바다와 이야기한다

곰장어구이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먹자골목. 자갈치 억센 아지매들은 자갈치 바다를 마치 떠리미처럼 싸게 세를 낸 것인지. 시원한 파도 소리를 식탁 위에 차려 놓고 "먹고가이소, 먹고가이소"하며 옷깃을 붙잡는다.

그러나 옛날과 다른 곰장어구이 가격에 약간 놀란다. 만원 약간 웃돌았던 가격이 한 접시에 2만원이다. 소주 한 병은 이천원의 가격은 그대로인데…. 어업한계선 영향일까? 바다 값이 엄청 오른 것을 실감한다. 그래도 이만원짜리 살아서 꿈틀대는 곰장어 구이 불판 앞에 앉은 모처럼의 즐거운 만남 앞에서, 소주 한두 병은 거뜬히 마실 수 있는 양이다.

여기서는 상추와 깻잎, 고추, 마늘은 당연히 공짜다. 거기다가 눈앞에 바다와 갈매기를 즐길 수 있다. 여여한 평일의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의 자갈치 바다는 매우 한산하다. 노인들과 실직자 등 그리고 자갈치 바다를 사랑하는 부산의 예술인과 문화인들도 여기오면 한두 사람은 만날 수 있다. 매년 10월경에는 흥겨운 자갈치문화관광축제가 열린다.

a 손톱을 정리하는 노인

손톱을 정리하는 노인 ⓒ 정애자

돌멩이도 살아서 바다로... 돌아간다

자갈치 시장의 이름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그 옛날 자갈마당이 넓었다던 자갈치 해안의 자갈마당에서 따온 이름이란 설도 있고, 생선 자갈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어떤 게 맞는지 가늠하지만 아무래도 싱싱한 자갈치에서 따온 것이 맞지 않을까.

자갈치는 등가시칫과의 바닷물고기 이름. 자갈치의 몸은 길고 꼬리 쪽이 가늘며, 몸빛은 연한 갈색. 배지느러미가 없다. 자갈치… 자갈치… 하고 입안에 씹히는 파도소리를 음미하면 하얀 파도에 배를 뒤집는 자갈이 자갈치처럼 퍼득거리는 이미지도 어쩔 수 없다.

자갈치에 오면 이렇게 돌멩이도 살아서 바다로 돌아간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알고 있는 듯 자갈치 바다는 하얀 물보라를 가르며 뱃길을 열어준다.

a 바다와 이야기한다

바다와 이야기한다 ⓒ 정애자

반인반어, 자갈치변 사람들

자갈치 바다를 안마당으로 가진 자갈치변 사람들은 바다가 친구이자 벗이요, 애인이다. 무슨 이야기를 바다에 뱉는 것일까. 뱃사람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넋을 잃고 바다와 대화하고, 바다를 향해 두 사람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바다가 가슴에 출렁이는 자갈치변의 사람들은 한없이 여유롭고 한가하고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인다. 바다가 있어 푸근하고 바다에 나가면 아무 걱정이 없는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가득 실어 온 생선이 돈이요, 황금이며 희망이며 신기루이다.

그러나 바다의 신기루를 쫓는 바다를 업으로 삼은 뱃사람들은, 반인반어 인어공주처럼 어쩔 수 없는 삶의 희비를 안고 산다. 바다 속을 품고 사는 물고기처럼 자갈치 변 사람들 바다를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가 없고, 바다는 예전처럼 황금어장과는 거리가 멀다. 어업한계선과 한일어업협정 등으로 발이 묶인 배들이 많다. 그러나 바다가 곁에 있는 한 절망을 하지 않는 자갈치 변 사람들 바다가 있어 늘 활어처럼 싱싱하다.

가끔은 삶이 우리를 속여도, 소금에 절여진 간생선처럼 짜디짠 소태의 절망에 숨을 죽여도, 힘찬 파도소리에 지느러미를 푸득이며 희망찬 삶의 바다로 돌아간다.

a 하선

하선 ⓒ 정애자

폭풍주의보에
뱃길도 발길도 묶인지
사흘이다.
뭍떠난지 삼년이라는
젊은 항해사는
낮술에 취해 잠들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작부처럼 제몸을 내주는 항구에서
총총히
발 묶인 그리움을
연필로 눌러쓰면,
빈배처럼
멀미이는 사랑,
선술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흐느끼듯 신음하는 파도
속절 없어라, 기약 없어라
뱃고동 울리며
꿈결인듯
따라오는 눈썹달 하나

- 자작시 '외항'

덧붙이는 글 | 부산의 명물, 자갈치 현지교통안내 

* 지하철 자갈치역에서 하차시에는 농산물백화점을 지나 신동아시장쪽으로 도보로 5분
* 지하철 남포동역에서 하차시에는 건어물도매시장을 지나 도보로 5분 
* 고속터미널에서는 35번 시내버스를 타고 남포동 정류소에 하차

덧붙이는 글 부산의 명물, 자갈치 현지교통안내 

* 지하철 자갈치역에서 하차시에는 농산물백화점을 지나 신동아시장쪽으로 도보로 5분
* 지하철 남포동역에서 하차시에는 건어물도매시장을 지나 도보로 5분 
* 고속터미널에서는 35번 시내버스를 타고 남포동 정류소에 하차
#자갈치 #부산 #갯장어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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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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