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힐 차관보 방북 사실 몰랐다

이틀전 안 외교부, 통보도 안해... 정보공유 심각한 문제

등록 2007.06.22 13:33수정 2007.06.2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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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재정 통일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윤창원

대북 정책의 주무 부서인 통일부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사실을 당일에야 안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통일부는 외교부를 통해서 정식으로 통보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경로로 알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정부 부처간 정보 공유 및 대북 정책 수립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언상 통일부 차관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통일부가 힐 차관보의 방북 사실을 외교부가 파악한 지 이틀이나 지나서 알게 되었다"는 <연합뉴스>의 보도와 관련 "이재정 장관님이 21일 오전에 인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힐 차관보의 방북 사실을 외교부로부터 정식으로 통보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 알게 됐다.

신 차관은 "대북 정책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있는데 정보 전달과정에서 시차가 있을 수 있다"며 "아쉬운 점이라면 외교부로부터 즉시 공유가 되었으면 더 좋았지 않겠느냐는 것"이라고 밝혔다.

21일 오후, 외교부 당국자는 "힐 차관보가 19일 오전 송민순 장관을 만나 방북 계획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그날 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으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21일 오전 11시께 외교부는 출입 기자들에게 힐 차관보가 당일 방북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결국 통일부는 기자들하고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힐 차관보의 방북 사실을 알게 된 셈이다.

외교부 독주체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힐의 방북은 북미 관계 뿐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며 "따라서 관련 부서는 즉시 정보를 공유하고 대북 쌀 차관 제공 문제 등에 대한 대책 수립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정부 부처간의 정보 공유와 대책 수립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은 통일, 외교, 안보 분야에서 외교부 독주체제가 갈수록 심화되면서 빚어진 사태라는 해석도 한다.

남북 관계를 중시하는 통일부의 입장과 대미 관계를 중시하는 외교부의 입장은 충돌 여지가 많다. 그런데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면서 외교부의 입김이 대단히 강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잦은 말실수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입지가 약화되면서 이런 상황이 더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a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21일 현직 북핵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한 뒤 리 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21일 현직 북핵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한 뒤 리 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대북 쌀 차관 제공을 2·13 합의에 연계시키거나 남북 관계는 6자 회담의 반발짝 뒤에서 따라가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반발짝론'은 외교부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21일 "대북 식량지원 문제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연계시켜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식량은 조건을 걸어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2·13 합의와 대북 쌀 차관 제공을 연계시켰던 정부 방침을 갑자기 뒤집는 것이었다. 송 장관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힐 차관보의 방북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북 쌀 차관 제공 문제의 주무 장관인 통일부 장관을 제쳐두고 외교부 장관이 먼저 나서서 발언한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외교부 독주 체제가 계속되면서 그동안 일부 기자들은 "대북 쌀 차관 제공 여부는 이재정 장관이 아니라 송민순 외교부 장관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결국 농담이 현실화됐다.) 송민순 장관을 가리켜 '외교통상부' 장관이 아니라 '외교통일부' 장관이라고 빗대는 말도 있었다.

한편 신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북 식량 차관 제공은 무엇보다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며 "차관 제공 시기문제는 다음 주 초에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40만t의 물량을 수송하는데 4개월 정도 걸린다"며 "첫배가 출항하는 시기를 포함해 전반적인 일정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이재정 #힐 #방북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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