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사춘기를 겪고 있을 그대에게

[서평]권지예 <아름다운 지옥>

등록 2007.06.26 08:43수정 2007.06.2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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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름다운 지옥 표지

아름다운 지옥 표지 ⓒ yes24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또 내가 걷는게 걷는게 아니야."
- 리쌍의 <내가 웃는게 아니야> 中


열아홉살. 대학 입학만 하면 세상 모든 고민은 없어지는 줄 알았다. 그토록 꿈꾸던 스무살. 난 그리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게 있다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많아졌다는 정도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매일 매일 무언가 생각하고 고민했다.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고민, 내 미래에 대한 고민,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지고 다녔다. 어쩌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해 반감을 가졌을지 모른다. 사랑, 학점, 사람 이 모두다.

지나고 나서 이야기하니 이 시절 모두가 그러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 엄마까지도. 사춘기 시절보다 더 혹독하게 보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겁고, 새로운 문화의 만남은 언제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정색의 시간도 길었다. 위의 리쌍의 가사 그대로다. 내가 웃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싸하다. 내가 구름 위를 떠다니는지 땅 위를 걷고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제2의 질풍노도가 그렇게 지나갔다.

성장통은 누구나 겪는 성인식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보다는 수필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야기의 시대는 역동의 70~80년대다. 주인공 혜진은 공부 잘하고, 남자 앞에서 부끄러움 많은 맏딸이다. 성장기 소설이 그렇듯 그녀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그녀에게는 여동생이 있다. 문학소녀 혜선. 안타깝게도 16년 7개월 삶을 마감하고 하늘로 떠난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신앙의 힘만 믿다 결국 눈을 감는다. 혜진의 성장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스쳐지나간다. 동생 혜선이 그랬듯 그와 맺었던 인연들은 만났다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사람이 죽는 날까지 만남과 헤어짐은 계속 반복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헤어짐에 아무리 익숙한 사람이라도 직접 맞닥뜨리면 힘들어하는 게 당연지사. 더군다나 스무살을 기점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결혼식도 많이 다니고, 안타깝지만 장례식도 어릴 적보다 훨씬 많았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헤어지기 싫어도 헤어져야 한다. 억지 세울 수 없음은 당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나에게만 해당하는 조건이 아니기에 위안받을 수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 그 인연에 대해

스무살. 가족보다는 내 남자친구, 여자친구 만들고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혹은 내 가족을 부끄럽게 여기어 부정하기 바쁠 수 있다. 부모님 가슴에 못 박는 이야기를 하는 자식, 대한민국 모든 자식이 그러하지 않을까. 부유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모님을 보면 놀라고 만다. 내가 보아왔던 강한 부모님은 어디 가버리고 없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가족은 부인한다고 부인되는 일이 아니다.

“한 몸처럼, 한 뿌리에서 뻗어나간 가족이라는 가지 중의 하나가 아픈 것이다. 나무의 한 가지가 썩으면 끊어내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란 이름의 나무는 함께 아파야 하는 것이다. 뿌리에서 가지로 물관을 통해 나무의 피돌기가 되듯, 고통의 피톨이 한 나무의 한 몸인 우리 가족을 꽁꽁 묶어놓은 핏줄로 속속들이 퍼져나갈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그래, 가족이란 나무는 함께 아파하고 잘라낼 수 없는 가지다. 내가 아프면 내 부모도 아프다. 조금만 아파하자.

가슴앓이 하고 있을 그대에게 권한다

언젠가, 지금은 아닌 언젠가 내가 생의 절반쯤을 보내고 있을 무렵, 나는 이 집에 대해서 그리고 이 집에서 보낸 지옥 같은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내 인생은 어느 길을 향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대의 아픔은 그대만의 아픔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또한 지금의 고통이 고통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나의 추억이고 내 인생의 거름이다. 아름다운 지옥에 살고 있는 청춘이여,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

아름다운 지옥 1

권지예 지음,
문학사상사, 2004


#권지예 #<아름다운 지옥> #사춘기 #성장통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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