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속의 고요함을 만나다

새로 단장하는 양수리 '세미원'을 다녀와서

등록 2007.06.26 09:45수정 2007.06.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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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원의 연꽃들
세미원의 연꽃들이형덕
이제 막 눈을 뜨는 연꽃을 찾아 6월 25일 저녁 무렵에 양수리 '세미원'을 찾았습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두물머리 일대를 대대적인 생태환경구역으로 다듬는다는 말이 있더니, '세미원'도 일대 변신을 하느라 여기저기 부산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새로 조경을 하는 곳을 찾아 미리 살펴보았습니다.


확장 공사중인 세미원
확장 공사중인 세미원이형덕
현재 입구보다 양평 방향으로 200미터쯤 올라간 입구는 맨발로 발목을 적시기 좋은 개울로 시작됩니다. 지나치게 넓고 반듯한 바닥돌이 걷기엔 편했지만, 징검다리의 아기자기한 맛은 덜했습니다. 이제 막 옮겨 심은 듯한 나무들과 여름국화는 당장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너무 배어 나무들이 자라면 어찌해야 할까 조바심부터 났습니다.

연밭
연밭이형덕
서울 시민의 상수원으로 각종 개발과 농약 사용이 규제되는 두물머리 인근 지역의 제약을 거꾸로 살려, 늪지에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생태공간을 마련한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왠지 여기저기 부산하게 펼쳐진 공사 흔적들을 대하자니, 무언가 아름답다는 탄성과 함께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새로 세워질 대형 조형물들
새로 세워질 대형 조형물들이형덕
침목이 놓인 기찻길을 지나, 연꽃 사이로 놓인 돌다리를 가로지르니, 교각 밑에 아직 뜯지도 않은 각종 조형물들이 쌓여 있습니다.

세미원의 아름다움에 탄복하면서도 아쉬운 것은, 자연의 경관과 별로 어울리지 않은 인공 조형물이 눈에 자꾸 거슬린다는 점이었습니다. 강을 향해 침을 뱉듯 서 있는 용 모양의 분수라든지, 좁은 공간에 여기저기 함부로 배치된 대형 도자기 모양의 분수들.

그리고 묘를 지키고 있어야 석물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광경을 대하노라면, 그저 아무 장식도 없이 탁 트인 강을 망연히 바라보고 싶고, 그 물이 길러낸 연꽃들의 고요함을 온전히 만나고 싶은 갈증에 빠지게 됩니다.


정체불명의 석물들
정체불명의 석물들이형덕
갈 때마다 새로 늘어가는 그런 조형물을 보면서, 혹시 이곳을 마련한 분들이 이곳을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볼거리들로 가득 찬 장터처럼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 곳이라면 민속촌과 대형 놀이공원에 이어 청계천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적어도 이곳만은 사람의 손과 돈이 아니라, 오대산의 어느 이름모를 샘의 맑은 물과 내린천의 열목어가 붉은 눈을 식히던 그 서늘한 물들이 길러낸 연꽃과 갈대, 그리고 고요함만으로 비어 있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요.


아름답게 '꾸며지고' 있는 새 길
아름답게 '꾸며지고' 있는 새 길이형덕
다양한 연꽃들을 기르자면 아무래도 인위적인 둑을 막아 함부로 흘러가는 강물을 가로막아 보살필 필요는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내 눈길이 온갖 기화요초와 부드러운 잔디로 다듬어진 '세미원' 안쪽을 넘어, 둑에 가로막혀 밖으로 내몰린 갈숲과, 무심히 그 발목을 적시며 흐르는 저녁 강으로 자주 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린 새들이 이따금 삑삑거릴 뿐, 무엇 하나 보여 줄 것도 없이 비어 있는 강의 고요함이 오히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연밭
연밭이형덕
끝없이 이어진 갈숲 사이로 가만히 걸어가, 강물과 세월이 길러낸 연꽃과 그 사이로 꿈처럼 유영하는 물고기들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그것이 어떻게 맑고 고요한 강을 이루어내는지 내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왜 우리는 자연을 사랑한다면서, 그 자연의 가슴에 함부로 다리를 놓고, 그의 목에 둑을 가로막고, 무수한 팻말과 문자들로 그것을 설명하려 하는지 내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를 다듬고 맑게 씻는 '세미원'에서 더 이상 밖으로 내쳐진 강을 향해 침을 뱉는 용 분수는 그만 세워도 좋겠다고 내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자연 상태의 갈숲
자연 상태의 갈숲이형덕
강을 아름답게 바꾸려 하기보다, 황량한 갈대와 별로 볼 것이 없는 강의 고요함을 사랑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일에 힘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네 돈도 아닌 나랏돈이니 얻어낸 만큼 무엇이든 사들여, 돈값만큼 무언가 내보일 것들로 이곳을 채워야 한다면, 차라리 그 돈으로 저 강과 갈 숲과 작은 새들이 사람들에게 쫓겨나지 않도록 사들여, 아무것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놓여 있도록 하는 일에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피기 시작하는 연꽃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하룻밤 얻어 자기를 꿈꿔 봅니다.

세미원의 연꽃
세미원의 연꽃이형덕

덧붙이는 글 |  세미원 가는 길 

* 세미원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문화체육공원 안쪽에 있으며, 관람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입장료는 없으나 사전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세미원 http://www.semiwon.or.kr/에서 알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추후 '남양주뉴스'에도 실리게 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세미원 가는 길 

* 세미원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문화체육공원 안쪽에 있으며, 관람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입장료는 없으나 사전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세미원 http://www.semiwon.or.kr/에서 알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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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원 #연꽃 #양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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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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