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에다가 고무줄 바지 차림인 박선생님, "아이구 차림이 이런데 어쩌지?" 그러면서도 아들과 함께 사진 찍는 게 좋으신지 활짝 웃었습니다.이승숙
박 선생님을 알고 지낸 지가 벌써 햇수로 9년이나 됩니다. 늘 존경하고 따르는 분이지만 막상 박 선생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스쳐 지나가며 본 사람에 대해서는 다 아는 듯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랫동안 근처에서 바라본 박 선생님에 대해서는 섣불리 아는 체 하기가 어렵습니다.
서점에서 우연히 박 선생님이 쓴 책을 만나다
1999년 1월의 어느 날, 서점에서 박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박 선생님은 부군이신 김남주 시인을 멀리 떠나보낸 슬픔에 잠겨서 오랫동안 땅 속에 묻힌 것처럼 살았던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입이 떨어지고 울음처럼 글이 나왔다고 합니다. 남편을 먼 곳으로 떠나보낸 지 5년이나 지나서야 박 선생님은 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거였습니다. 박 선생님이 온 마음을 다해서 쓴 글들을 묶은 책이 그때 막 출간이 되었는데 다행히도 내가 그 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는 강화도로 이사를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던 때였는데 박 선생님의 책을 보고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래, 이런 분이 사시는 곳이라면 분명 좋은 곳일 거야. 언젠가는 박 선생님을 만나 볼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그래서 우리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강화로 용감하게 이사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