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교육독재' 아니라 '특권독재'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주요 대학 선동하고 나선 <중앙일보>

등록 2007.06.26 12:17수정 2007.06.26 12:17
0
원고료로 응원
a 고려대학교 전경

고려대학교 전경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학 입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절충안'에 대해 '주요 대학'들은 이 역시 불만이다. 벌거벗고 뛰고 있는 고려대학이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과 달리 다른 대학들은 유보적인 가운데 눈치를 살피고 있다.

하지만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등 일부 신문들은 오늘(26일) 주요대학들이 모두 반발하고 있다고 전하는가 하면 정부의 절충안을 거부하라고 선동(<중앙일보> 사설 '수험생 보호 위해 교육부 지시 거부해야')하고 나섰다. 전선은 이제 '교육부 vs. 주요 대학'이 아니라 '정부 vs. 일부 언론'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일부 언론이 정부의 '절충안'에 대해서 극렬 비난하고 나선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시 전형은 기본적으로 대학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교육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내신에 대한 불신이다. 각 학교별 격차가 엄존하는 것이 현실인데, 학교간 차이를 무시하고 내신(학생부) 실직 반영비율을 50%까지 높이라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것일 뿐 아니라 "우수한 학생을 탈락시키는 제도를 강요하는 것"(<중앙일보>)이라는 것이다. 제비뽑기(<조선일보>), 교육독재(<동아일보>)라는 극단적 비난까지 나왔다.

셋째, 내년도 입시 요강까지 미리 밝히라는 것은 현 정부의 월권이라는 주장이다. "이 정권은 자기들이 정한 억지 제도를 다음 정권까지 이어받으라고 하고 있다"(<조선일보>)는 주장이다.


수험생과 학부모들 기만한 건 '주요대학'

이 세 가지 주장은 결국 '내신 반영률'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학의 입시 전형의 자율성이란 것도 왜 내신 반영률 50%를 강제하느냐는 반어법에 다름 아니다. 맞는 말인가?


교육부의 뒤늦은 대처와 우왕좌왕한 행보가 문제를 키운 것은 사실이지만, 학생부 위주 전형 방법은 이미 2004년도에 확정 발표된 지침이다. 대학들의 자율 기구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도 2006년 5월 2008학년도 입시에서 대입 학생부 비율을 50% 이상 반영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주요 사립대학들 역시 지난해 9월 학생부 반영비율을 40~50%로 높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교육부는 학생부의 변별력 제고를 위해 학생부 평가를 절대 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꾸었다.

그런 와중에 고려대를 필두로 6개 사립대학들이 지난 6월 12일 내신 1~4등급을 만점 처리하겠다고 '담합'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교육부는 내신 1·2등급을 만점 처리하겠다는 서울대에까지 등급별 차별화를 요구하고, 내신 실질 반영률을 50%로 하라고 다그쳤다.

주요 대학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수험생들의 준비 정도를 감안해 내신 실질 반영률을 단계적으로 현실화시킨다는 전제 하에 행정적, 재정적 제재를 유보할 수 있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대신 8월 20일까지 2008학년도 정시모집 요강을 확정 발표하도록 하고, 2009학년도 입시 요강 세부계획을 11월 말까지 제출토록 요구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사태 전말이다.

약속을 어기고, 명목 반영률이란 숫자놀음으로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을 기만한 것은 주요대학들이다. 교육부가 대학들의 이런 노림수를 미리 예상하고 치밀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교육부의 늑장 대처를 이유로 주요대학들의 '위약'과 '기만'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일부 언론들의 '특권 독재적 발상'

내년도 입시요강을 11월까지 확정해 제출하라는 교육부의 요청도 뒤늦은 일이나마 수험생과 학부모를 위해서나, 대학의 체계적인 입시 관리를 위해서나 바람직한 일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1년 전에 준비할 수 있는 구체적 입시 요강을 밝히는 일은 너무나 마땅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비정상인가.

그런데도 일부 신문들은 내년에 정부가 바뀐다는 이유로 교육부의 뒤늦은 대책까지도 '월권'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일부 신문들이 그렇게 학생과 학부모를 생각한다면 교육부의 지시를 거부할 것을 선동할 것이 아니라, 대학 당국의 맹성을 촉구하는 것이 순서다.

내신 위주의 선발 비중을 늘리도록 한 정부의 방침은 '성적 위주' 한국 교육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또 중등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교육계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어렵사리 내놓은 방안이다.

사실 내신이 좋은 학생이 수능 점수도 좋은 편이다. 다만 내신의 실질 반영률을 높일 경우 외국어고교 등 특수목적고와 서울 강남 등 교육환경이 좋은 학교의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반면에 서울의 비강남지역 학생들이나 농어촌, 그리고 지역 소도시 학생들에게는 대학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확대된다.

이 같은 내신 위주 입시 제도에는 사회적 격차와 환경적 요소에 의한 학력 격차가 존재하며, 기회의 균등과 사회적 통합이란 측면에서 그 격차를 보정해줄 필요가 있다는 사회 정책적 가치가 반영돼 있다. 그것을 '교육독재'라고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특권 독재적 발상'이다.

거꾸로 가는 '주요대학'들의 신입생 선발 방식

내신 위주의 전형 방식이라지만 내신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수능과 면접, 논술 등 다양한 전형 방법을 복합적으로 접목하고 있는 것이 현행 입시 제도다. 여기에 특기자 전형 등 성적이 아닌 다양한 기준의 선발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대입 전형 방식은 무척이나 다양해지고, 다채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대학이 결단만 한다면 훨씬 파격적인 전형방식도 가능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대학들은 다양한 전형 방식을 확대하기는커녕 획일화된 선발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담합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야말로 일부 신문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대학 자율'이나 '교육경쟁력'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21세기형 창의적 인재 육성과도 거리가 멀다. 대학들이 눈을 돌려야 할 곳은 보다 '다양한 전형방식'이다.
#백병규 #미디어워치 #내신 #대입 #대입전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3. 3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4. 4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