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년간 일한 학교에서 유령이었다"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 중단... 비정규직 보육교사들 반발

등록 2007.06.26 15:49수정 2007.06.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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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에게 방과후 교실은 굉장히 필요한 제도다. 방과후 교실이 없어지면서 그동안 이 곳을 잘 다니던 40명의 아이들이 가장 큰 희생양이 됐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가 7년간 운영하던 방과후 교실을 중단키로 한 가운데 방과후 교실을 이용하던 학부모 및 비정규직 보육교사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방과후 교실은 ▲학교의 교육기능 보완 ▲사교육비 경감 ▲교육복지 실현 등을 목표로 교육청이 각 학교에 운영비 등을 지원해 만든 제도다. 특히 저소득층, 한부모 및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을 우선 대상으로 삼아, 공교육이 사교육을 대신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언주초등학교(강남구 도곡동)는 학교 건물 재건축을 이유로 지난 3월 1일부터 방과후 교실 중단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보육교사 채성미씨와 일부 학부모,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강남·서초구위원회 등은 26일 오전, 언주초 앞에서 학교측의 결정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언주초등학교가 방과후 교실에 대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버젓이 공부하고 있는 교실을 강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며 "방과후 교실 건축 지원금 3천만원은 다른 곳에 쓰고, 방과후 교실 아이들은 가건물에서 수업하게 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이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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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초등학교에서 7년넘게 보육교사로 일하던 채성미씨가 학교측의 부당한 강제해직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7년간 헌신적으로 일한 학교에서 버림받았다"

보육교사 채성미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교측은 7년간 계약서를 한 번도 쓰지 않다가 지난 3월 '재건축 전까지만 근무하라'는 계약 내용을 통보했다"며 "또한 연봉제 전환에 따라 월 50만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계약직 강제 전환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채씨는 "학교가 요구한 계약서는 독소조항 투성이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공개한 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은 올해 3월 1일 재건축일까지로 하고 고정급(120만원) 외에 일체의 인건비를 청구할 수 없다고 적혀있었다.

이 외에도 학교는 채씨에게 근무일 또는 근무 시간 외에도 근무를 지시할 수 있고, 병가는 연 3일이라고 못 박았다.

또한 학교측은 "고정급 및 경력 미인정을 동의하는 보육교사만 계속 학교에서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의 지침서에 동의할 것을 요구했다. 채씨는 "동의를 거부하자 학교측은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채씨는 이어 "계약기간을 못 박은 것 외에 별도의 해고 통지는 없었다"며 "이미 지난 3월부터 교감은 근무장부에 (근무 여부를 확인하는) 도장도 찍어주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철저히 유령 취급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학교측은 방과후 교실 중단을 결정했지만, 아이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채씨가 지금까지 방과후 교실을 계속 운영해오고 있다. 학교측은 방과후 교실을 중단하겠다고 지속적으로 학부모들을 압박해 현재 방과후 교실에 나오는 아이들은 18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채씨는 지난 3월부터 '유령' 취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급여도 제때 받지 못했다. 결국 노동청에 민원을 접수해 이번 달 처음으로 제 날짜에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7년간 보육교사로 일한 데 대한 보상은 없었던 셈이다. 채씨가 겪은 설움은 그 뿐만 아니었다.

"2000년 이 학교에 왔을 때 출산하게 됐다. 한달간 자비를 들여 대체 교사를 고용했고, 대체 교사 인건비를 아끼려고 수술을 통해 아이를 2주 먼저 낳았다. 학교로 돌아온 뒤에도 임신 중독증으로 고생했지만, 학교 일을 다 끝낸 뒤에야 겨우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일했는데, 이제 더 큰 벽에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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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교실 폐쇄 규탄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강제해직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언주초등학교앞에서 민주노총, 공공노조, 민주노동당 강남·서초구위원회 등 강남·서초지역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학교측 "방과 후 교실 폐쇄 아닌 일시 중지"

학교측은 이에 대해 방과후 교실은 '폐쇄'가 아닌 '일시 중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신명철 교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방과후 교실 폐쇄가 아니라 재건축 완료까지 일시 중지하는 것일 뿐"이라며 "재건축 이후에는 교실 두 개보다 더 큰 보육교실이 들어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확한 기간을 못 박을 수는 없지만 재건축을 위해 약 28개월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며 "재건축 완료 뒤에는 방과후 교실을 계속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비정규 보육교사 채씨의 고용에 대해서는 "공립학교의 교장 및 교감은 순환직이기 때문에 차기 담당자가 결정할 문제"라며 "다만 성실히 추천해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교측 관계자는 "학교 본관뿐만 아니라 지하주차장 공사 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방과후 교실 폐쇄는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어진 민주노동당 서초구위원장은 "재건축 때문에 방과후 교실을 없앤다고 하지만, 학부모와 아이들의 수요가 있다면 기존 교실을 이용하는 등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반박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부모 김아무개씨는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를 위해 방과후 교실은 절실하다"며 "학교가 지난 겨울방학 갑자기 방과후 교실 중단을 알린 뒤 학부모와의 어떤 논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비정규 보육교사 #언주초등학교 #방과후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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