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 흑곰을 안고 있는 우리집 큰 아이 인효.송성영
산을 내려오면서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녀석들이 영리하니까 집을 찾아 올 수 있을 거여, 아니, 오소리 같은 녀석들에게 잡아먹히면 어쩌지….'
내 고무신을 껌처럼 질겅질겅 씹는 것은 예사고 비가 오는 날이면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집구석에 들어와 아무한테나 구질구질한 몸뚱이를 비벼대고 아예 진흙 발로 내 고무신을 질질 끌고 다니다시피하는 녀석들이었습니다. 사고 치다가 콧잔등을 된통 얻어맞고 저만치 달아났다가도 "백곰! 흑곰!" 부르면 이내 쪼르르 달려와 손과 발을 핥아 주던 녀석들이었습니다.
어쩌다 심보가 뒤틀려 서로 죽어라 물어뜯어가며 싸우고 나서도 서로 핥아 주고 잠 잘 때는 서로 따듯한 이불이 되어 주던 녀석들이었습니다.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미워하겠습니까? 녀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미에게서 멀어져 가며 젖을 떼고 있는데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에서 내려와 다랭이 논 물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모퉁이에서 동네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워딜 갔다 오슈?"
"산에유. 혹시 우리 강아지 못봤쥬? 한 놈은 까맣고 한 놈은 흰 놈인디."
"못봤슈. 근디 거시기 논 옆댕이에 딸린 밭두 갈아먹을 거쥬?"
"예."
"뭘 심어 먹으려구?"
"콩 좀 심을까 하는디, 노루 새끼덜 극성에…."
"그류, 콩은 노루 땜에 안듀. 엌그제는 노루 새끼덜이 집 앞까지 내려 왔다니께, 그래서 오늘은 약을 쳐 놨슈."
"어떤 약유?"
"농약이나 쥐약 같은 거 버무려 놔유…."
"쥐약유? 노루 잡게유?"
"다들 그러는디 뭘, 노루새끼덜이 콩 밭을 싸그리 먹어 치우잖유."
나는 얼른 곰순이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곰순이 녀석이 남의 집 밭 가장자리를 어슬렁거리다가 노루 잡겠다고 놓은 쥐약이라도 낼름 주워 먹었다가는 큰일 나니까요.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집에 돌아와 보니 흑곰과 백곰 녀석이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헤헤거리고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곰순이 녀석 역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어대며 뭐라 말하는 듯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곰순이 녀석은 새끼들을 집에다 데려다 놓고 내 휘파람 소리에 다시 산으로 올라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점점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는 흑곰과 백곰 녀석들의 목줄을 만들었습니다. 녀석들은 영역이 넓어질수록 불안전지대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녀석들의 어미 곰순이에게 그렇게 했듯이 녀석들에게 목줄을 걸어 길들이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저녁 때만 풀어놓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게 단단히 주의를 줬습니다. 함부로 산에 올라가 산짐승들을 크게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될 수 있으면 밭이나 집 주변에서 놀도록 했습니다. 녀석들이 다 크면 언제 어느 때고 휘파람 소리에 득달같이 달려오는 곰순이처럼 길들여질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