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에게 배우는 인간에 대한 '애정'

[서평]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등록 2007.06.27 15:21수정 2007.06.2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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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클라우디아 새 아니오 수도

클라우디아 새 아니오 수도 ⓒ 한길사

어느 시대, 어떤 공간의 것이든 역사는 우리, 바로 우리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고 흥미로운 것이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로 보겠다는 야무진 목표의식은 잠시 저만치 밀어 놓고, 지그시 눈을 감은 후 그 시대를 상상하고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살포시 지어지게 되기 마련이다.

남들에게 으스대기 위해서나 TV 퀴즈쇼의 문제들을 잘 풀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fact)의 암기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독자 입장에서 그 정도로 만족하는 것은 저자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모름지기 역사를 다룬 책을 읽을 때는 그 역사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만큼이나 작가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작가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글을 썼는지, 작가의 생각과 상상에 과연 내가 얼마나 따라가고 있는지, 혹은 작가의 견해와 대결할 수 있는지 등등 독자는 작가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입가에 미소를 머금을 수 있지 않을까. 역사책은 취직대비 시사상식 모음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도 로마보다 로마'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에서 집필을 시작했을 것이라 믿는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곧 인간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이다. 자기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지만, 흐르는 강물이나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볼 수는 있다. 역사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저자가 '팍스 로마나'와 '팍스 아메리카나', 패자동화정책, 로마의 조세·군사·사회복지·지방자치 제도, 그리고 종교 문제 등을 기술한 부분은 무려 2000년 전에 로마인이 보여주었던 위대함을 오히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해나가고 있다는 오늘날엔 찾아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이외에도 저자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정치,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진지하고 냉철한 통찰만이 공동체의 지속적인 번영을 담보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밤새는 줄도 모르고 열광하고,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비애에 숙연해졌으며, 서서히 종말로 치닫는 제국의 역사는 읽고 싶지 않을 만큼 로마인이 좋아지는 순간순간에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은, 역사를 읽으면서 느끼는 쾌감만큼이나 지금의 우리 시대에 눈을 돌리는 일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것이었다. 이제, 저자 시오노 나나미 의 도움을 받아 저만치 밀어 둔 '야무진' 목표의식을 이리로 당겨올 필요가 생긴 것이다.

로마인의 가장 위대한 점은 뭐니 뭐니 해도 패자(敗者)조차도 스스로를 로마인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동화 정책, 타문명·타문화·타종교에 대한 관용과 개방성이 아닐까 한다. 갈리아, 히스파니아, 북아프리카,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모두가 로마라는 거대한 지붕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2000년 전 로마는 보여주었다.


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대영제국에서도, 20C초에 조선을 식민지화 했던 군국주의 일본에서도 피식민지의 사람들은 결코 자신을 영국인 혹은 일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 이후에도 조선인들의 식민 통치에 대한 증오심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정도는 다르지만- 남아있다는 걸 주지하여야 한다.

물론 오늘날의 '민족'이라는 뚜렷한 정체성 개념이 고대의 그것과 당연히 같지 않고, 주권 개념의 확립·국제법의 발달 등으로 인해 곧바로 두 시대를 비교하게 되면 위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화합과 공존도 없다는, 평범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진리를 로마인은 실현했고 현대의 우리는 그들에게서 바로 이 점을 배워야 한다.


또 로마인의 타문명,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그에 대한 개방은 로마를 다인종·다문화·다종교의 보편 제국으로 성장하게 하였고, 남쪽엔 프랑스, 동쪽엔 독일, 바다 건너엔 영국이라는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 네덜란드가 해양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적극적인 대외개방이라는 점도, 역시 개방은 번영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a 판테온

판테온 ⓒ 한길사

한미FTA가 타결된 지금, 물론 찬반 여론이 팽팽하지만 개방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적극적인 개방을 통해 어떻게 하면 좀 더 국민의 생활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마를 배우면서 양에서도 질에서도 경이로운 공공건축물들을 빼놓을 수는 없다. 단순히 전성기 로마시대의 유력자들은 공공심이 뛰어났던 반면에, 오늘날 우리 사회 부자들에겐 사회 연대 의식 혹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식의 말들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저차원적인 논의에 불과하고 생각한다.

시오노 나나미 선생은 여기에서 당시 로마 유력자 사이에 공공건축물 건설 붐을 일으킨, 아우구스투스의 탁월한 정치 감각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 유력자들의 이러한 공공심의 발휘는 특히 부(富)의 편중을 완화하는 장치가 되었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공동체의 연대 의식을 깨뜨리고 사회 안전을 위협하기 마련이다. 누진세라는 개념이 없던 당시의 조세로서는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는 유력자들의 명예욕과 허영심을 자극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익을 사회에 환원시키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의 건축물을 지어 로마 시민에게 기증하는 대신 건축물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따게 하는 관습을 정책화하여, 황제인 자신이 직접 그러한 대규모 사업에 앞장섬으로써 로마 유력자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었다.

이처럼 '로마의 가지지 못한 자'에게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데에 국가의 막대한 예산도 필요하지 않았고, 유력자들의 명예욕과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는 탁월한 정책을 구상했던 것이다.

공동체의 이익이 동시에 자신의 이익이 되어야만 '공공심'도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고대 로마인은 깨닫고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우리 사회의 유력자들에게 연대 의식이 없다고 비난만을 할 것이 아니라, 공공심을 발휘하는 행동이 결국엔 자신의 이득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로마인의 대(對) 야만족 정책도 역시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야만인에게 접경 지역에서의 무역 허용과 경제 지원으로 그들의 폭력성을 누그러뜨린 로마인의 지혜를 언급했는데, 나는 여기서 한국의 대북 정책을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가진 것이 많으면 보수적이 되기 쉽고, 잃을 것이 없으면 과격해지기 마련이다. 궁지에 몰려 체제의 생존마저 위협을 받는 북한 정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바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a 트라야누스 시장

트라야누스 시장 ⓒ 한길사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고 이데올로기의 싸움도 과거의 이야기가 된 지금, 북한의 지금은 굶주림에 지쳐 목숨을 걸고 라인 강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게르만족과 상황이 크게 다를 바 없다. 평화는 그 가치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소중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경제 원조와 봉쇄의 해제를 통해 북한에게 생존을 보장해 준다면, 한반도에 고통스런 군사적 긴장상태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따라서 '우리는 퍼 주고도 왜 북한의 눈치를 보느냐'란 식의 시각은 올바르지 않게 된다. 북한에 대한 지원은 한반도의 위기관리 차원의 정책이고, 북한을 온순한 게르만 혹은 가상 적국 파르티아 정도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와 역사를 배우는 이들은 어찌 보면 같은 배를 탄 동료가 아닐까. 물론 기항지는 역시 우리 인간이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의 해석과 전달이라는 나침반과 별자리를 통해 우리를 기항지까지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가가 안내하는 항로를 따라 인간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유유히 수면 위를 미끄러져 나가고 있는 뱃사람들이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배에 올랐지만, 지금은 인간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해나가고 있다는 자긍심에 가득 찬 선원이 되었다. 난 항해사를 아주 잘 만났고 그런 의미에서 기막히게 운 좋은 뱃사람이다.

해박한 지식을 기반으로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통찰력, 흡입력 있는 문체, 거기에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하게 할 수 없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나 간단한 논평은 이미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접할 만큼 접했다. 과거의 역사를 이렇게 감칠맛 나게 서술하는 시오노 나나미는 그런 점에서 탁월한 항해사가 아닐까한다.

우리 인간의 삶은 짧고도 유한하다. 찬란한 인생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삶에 무게에 지쳐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람에게도,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러기에 역사는 순간 눈부신 빛을 발하다 이윽고 사라지고 마는 인간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것이다.

위대하지 않고 장엄하지 않았던 인간의 역사가 어디에 있으랴.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의 역사이든 모두가 수많은 우리 선배들의 삶의 자취이기에 그 소중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고대 로마인은 2000년 전 지중해를 둘러싼 광대한 영토에 살았던, 우리의 위대한 선배들 중 하나였다. 고대의 보편제국을 이룩한 위대한 민족인 로마인을 통해 우리는 작금의 세상에 대해 고민해 보고, 인생을 배우고, 더 나아가 인간을 배워갈 수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단순히 '로마인을 알았다'고 자신한다면 난 이미 뱃사람의 자격이 없을 것이다. 먼저 우리 선배들의 유한했지만 위대했던 삶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배를 탄 자들의 도리일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미 2000년 전에 유래 없는 광대한 보편제국을 이룩한 로마인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소득은 그 위업 속에 가려진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고대 로마인을 알아가면서 결국엔 우리 인간 스스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한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시오노나나미 #로마인 #로마인이야기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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