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담그는 날, 난 시침 '뚝' 떼는 연기자

김치를 담글 때면 항상 도와주는 남편이 고맙습니다

등록 2007.06.28 13:44수정 2007.06.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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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편 몰래 살짝 더 넣은 고춧가루가 김치를 먹음직스럽게

남편 몰래 살짝 더 넣은 고춧가루가 김치를 먹음직스럽게 ⓒ 서미애

총각무 김치를 또 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에 담근 김치가 맛있어서 벌써 밑바닥을 드러냈고, 저는 김치 담그는 날을 주로 남편이 노는 날로 택하는데 곰살맞은 남편이 잘 도와주기 때문이지요.


저는 김장도 남편 없이는 못 합니다. 배추도, 양념거리도 같이 다듬고, 무거운 것도 남편이 날라다 주어야 하고, 뒷심부름도 남편이 해주어야 하거든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옛말이 있듯이 제가 몸이 불편한 만큼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편을 만나 참 다행입니다.

총각무 역시도 장마를 타는지 예전보다 값이 비쌉니다. 한 단에 2500원씩 하는 총각무 세 단을 사서 남편과 함께 다듬었습니다. 억센 겉잎은 떼어내고 무의 지저분한 부분도 칼로 살짝 도려냈습니다. 다듬어진 무를 씻어 절이는 동안 남편은 양념거리를 다듬었습니다.

마늘과 생강을 까고, 쪽파, 대파, 양파도 다듬어 소쿠리에 가지런히 담아 놓고 쓰레기까지 깨끗하게 치워 놓았습니다. 무가 절여질 동안 저는 찹쌀을 불려 놓았습니다. 김치를 담글 때는 찹쌀 풀을 쑤어 넣어야 하는데 미리 빻아놓은 찹쌀가루가 없어 불린 찹쌀을 갈아서 풀을 쑤기 때문입니다.

a 절인 무가 백옥같이 하얗습니다.

절인 무가 백옥같이 하얗습니다. ⓒ 서미애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무를 한 번 뒤집어 주어야 골고루 절여집니다. 대략 두세 간을 절이면 알맞게 절여지는데, 무가 단무지처럼 말랑말랑해지면 잘 절여진 거지요. 절여진 무를 씻어 작은 무는 2등분, 큰 것은 4등분을 해 놓았더니 백옥같은 하얀 속살을 드러냅니다. 소쿠리에 건져놓고 물이 빠지는 동안 양념 준비를 했습니다.

찹쌀 풀에 새우젓과 멸치액젓을 먼저 부어 국물을 만들어 놓은 다음 고춧가루를 풀어 휘휘 저어놓고 찧어놓은 마늘과 생강, 갈아놓은 양파, 썰어놓은 쪽파 대파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조미료를 조금 뿌리고 통깨를 듬뿍 넣어 골고루 섞은 다음 총각무를 넣고 잘 버무려 주었습니다.


a 생강과 마늘을 함께 넣고 찧어 준비해 놓은 것.

생강과 마늘을 함께 넣고 찧어 준비해 놓은 것. ⓒ 서미애

짜고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남편은 제발 짜고 맵지 않게 하라며 사정을 합니다. 그러나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있다고 김치란 모름지기 어느 정도 빨간빛이 나 주어야 먹음직스럽지, 하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는 제 눈에는 자꾸만 고춧가루가 부족해 보이니 이것이 병이지요.

그래서 김치를 버무릴 때마다 그만 넣으라는 남편과 더 넣고 싶어서 널름대는 저와의 신경전이 벌어지는데 "여보 이 김치 통이 어째 작을 것 같다. 저 선반 위에서 조금 더 큰 것 내려줘 봐요"하며 엉뚱한 심부름을 시켜놓고는 몰래 더 집어넣기도 합니다.


a 찹쌀 풀은 걸쭉하다 싶을 정도의 농도로 맞추면 됩니다.

찹쌀 풀은 걸쭉하다 싶을 정도의 농도로 맞추면 됩니다. ⓒ 서미애

귀신같은 남편이 "고춧가루 더 넣었지?"하며 새우 눈을 뜨고서 추궁하지만 "무슨 생사람을 잡느냐고" 똑 잡아떼는 저는 강부자씨 못지않은 연기도 훌륭히 잘해냅니다.

티격태격 거리면서도 김치는 맛깔스럽게 담가지고, 며칠 지나면 새큼하게 잘 익은 총각무 김치를 고슬고슬하게 갓 지은 밥에 얹어 아삭하게 베어 먹으면 진수성찬이 그리 부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총각무김치 #김치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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