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쩐의 전쟁>, 두 여배우가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연애 놀음'이 나올 것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SBS
원작자 박인권 작가도 <주간조선>(6월 25일자) 인터뷰에서 '연애질'에 대해 강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비판도 아주 직설적입니다.
그는 드라마에 대해 "3회부터는 대놓고 로맨스 모드다. 어제 부모가 사채 때문에 죽었는데 오늘 여자랑 희희낙락하는 게 말이 되는가? 요즘 비통해서 드라마를 못 보겠다"고 했습니다.
박인권 작가가 만화 <쩐의 전쟁>을 위해 기울였다는 노력을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더군요. 4년간의 자료 수집, 6개월간의 가짜 전주(錢主) 노릇, '포졸'이라는 개인 정보원까지 활용하며 지하 금융시장에 대한 정보를 이 잡듯 수집하는 등 그가 <쩐의 전쟁>을 위해 기울인 노력은 정말 처절했습니다.
박인권 작가는 그러면서 "요즘 시청자는 더 이상 삼각관계, 불륜, 로맨스에 열광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바보인가?"라는 말도 했습니다. 뼈 있는 지적입니다. 불륜 놀음을 그린 드라마가 아직도 시청률 상위권을 차지하다 보니, 드라마 제작자들은 시청자들 수준을 딱 그 정도로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제작자들이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는데, 인터넷 시대에서는 표면적인 시청률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MBC 드라마 <하얀 거탑>을 생각해봅시다. 표면적인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대대적인 화제가 됐던 드라마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표면적인 시청률이 낮은 이유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TV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계층은 '주부'입니다. 하지만 <하얀 거탑>의 시청자층은 상대적으로 인터넷에 더 친숙한 젊은 세대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방송국 사이트에서 '다시보기'를 보거나, P2P 사이트 등지에서 다운받아 보는 분들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하얀 거탑>을 선호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지긋지긋한 연애놀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포함돼 있습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살펴보면, 김수현이나 임성한과 같은 기존의 주부 대상 연속극 극본을 쓰는 작가들에 대한 성토가 대단하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누리꾼들은 '일본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 등이 그리는 특정직업과 분야에 대한 치밀한 전문성을 오래전부터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 드라마'는 만화가 추구했던 전문성과 상상력까지 잘 표현하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을 보다가, 불치병이나 출생의 비밀, 억지 연애 놀음을 시청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드라마 제작자로서는 "이런 사랑놀음이라면 먹히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먹히는 대상'이란 여성 시청자로 선정했을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여성 전체, 나아가 시청자 전체를 모독하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여성이 사랑과 연애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하다 할지라도, '부모가 돈 때문에 죽어 돈에 한 맺힌 사채업자'가 즐기는 억지 연애놀음까지 환호하진 않을 것입니다.
연애놀음 보려면 차라리 잘 생긴 순정파 재벌2세가 가난한 순수소녀 사랑하는 드라마를 보고 말지, 빚도 많고 사채업자 노릇까지 하는 사람이 연애질하는 드라마를 보겠습니까? 초점이 완전히 어긋났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주 시청률이 1.9% 하락했더군요. 이유요? 간단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2가지인데, '억지 연애놀음'하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쩐의 전쟁>은 기업인수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