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소유욕이 만들어 낸 4중주!

[리뷰] 연극 <의자는 잘못 없다>

등록 2007.06.30 08:29수정 2007.06.3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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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의자는 잘못 없다>포스터

<의자는 잘못 없다>포스터 ⓒ 극단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난해하다’라는 입장과 ‘생동감 있다’라는 입장 사이에서 우물쭈물 대다 어느 틈엔가 가벼운 농담으로 일관하는 연극만 보던 때가 있었다. 실험적인 창작극에는 왠지 정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보고 달라졌다.

충분히 창작극도 재미와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멋진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꼭 어려운 이야기들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택한 두 번째 작품이 바로 <의자는 잘못 없다>이다.


작품 제목만 놓고 볼 때는 난해하고, 어려울 것만 같았던 <의자는 잘못 없다>는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바를 간단명료하면서도 유쾌, 상쾌, 통쾌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가벼움 속에 진지함을 담아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연극이다.

인간의 소유욕이란 무엇이더냐?

a 인간의 소유욕을 만들어 낸 주인공 의자

인간의 소유욕을 만들어 낸 주인공 의자 ⓒ 극단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이 작품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처럼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소유욕에 대한 이야기다. 네 명의 주인공들이 우연치 않게 의자 하나를 두고 서로의 소유욕을 드러내며, 인간의 소유욕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자신들 안에 숨겨진 상처를 의자를 통해 조금씩 치유해 가는 과정은 통쾌한 웃음으로 승화된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험을 준비하는 강명규. 그는 우연치 않게 가구가게 앞에 놓인 의자에 반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을 사겠다고 주인에게 이야기하지만 주인은 딸의 작품이라며 거절한다. 그럼에도 강명규는 10만원, 30만원 가격을 흥정하려 들고, 이에 주인 문덕수도 마음이 바뀌어 30만원에 주겠다며 계약금 3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의자를 만든 딸인 문선미는 그것을 돈을 받고 줄 수 없다며 무상으로 가져가라 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마당에 하찮은 의자 하나에 30만원을 주고 사겠다는 강명규를 기막혀 하는 아내 송지애가 등장한다.


이들의 각각의 입장에서 ‘의자’는 다른 소유욕의 모습으로 변질된다. 강명규에게는 ‘의자’가 가지고 싶은 이유는 ‘그냥’이다. 사랑에 이유가 없듯 이 의자를 가지고 싶은 자신의 마음도 이유가 없다. ‘그냥’ 저 의자를 가지고 싶은 것이다.

일종의 ‘짝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은 아내 송지애는 정 가지고 싶은 남편을 위해 돈을 깎으려 난리를 친다. 결국 그녀도 남편 때문에 의자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남편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혼하자며 협박한다.


금슬 좋은 부부처럼 보이지만 서로에게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궁핍으로 인해 아내가 라면만 먹다 아이를 유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아내는 무능력한 남편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아이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즉 그런 아내를 보면서 정을 줄 곳이 없는 남편은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의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자를 판매하겠다고 나선 문덕수도 의자를 ‘상품’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판매를 하려든다. 그렇지만 예술 지망생 딸인 문선미에게 ‘의자’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 그리고 아내를 때리며 살아 온 문덕수도 딸에게 함부로 할 수 없고, 딸 또한 남자에게 버림받아 자해를 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즉 의자 하나를 두고 강명규는 ‘짝사랑’을 하고, 아내 송지애는 ‘하찮은 물건’ 취급을 하며, 문덕수는 ‘상품’으로, 문선미는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각자의 입장에서 의자를 다른 형태로 소유하려 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들의 상처가 담겨져 다른 형태의 소유욕으로 표출된다.

그래서 인간의 소유욕이 빚어낸 다른 결과들이 나타나고, 저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소유욕을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의 소유욕은 덧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결말을 만들어 내기까지 공연은 지루함을 없애고자 무던히 애를 쓴 흔적들이 보인다.

또한 그 안에 현대사회 자본주의에서 속박당하는 순수한 예술성에 대한 문제, 가격과 수요 공급의 법칙 등 무거운 주제들이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래서 이 연극은 의자 구매의 가격을 두고 벌이는 일대 소동은 가볍게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다양한 전개 방식으로 매력 발산!

또 하나의 매력적인 요소는 바로 연극을 전개하는 방식이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소유욕을 보여주는데, 주인공 강명규가 선택하는 방향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즉 <인간극장>의 ‘결정했어!’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방식이 순간순간 바뀜에 따라 의아한 표정을 짓는 관객도 있을 수 있겠지만 비디오를 보는 듯한 리와인드 액션을 직접 무대에서 생생하게 보여주는 연기자들의 탁월한 실력 덕분에 우리는 두 가지의 내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이후 두 가지의 내용이 등장하면서 후반부에 난데없는 무협으로 다시 한 번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바로 키치적인 유희가 등장해 신선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물론 가벼움 속에 줄곧 진지한 스토리를 이어가던 중 때아닌 무협으로 그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모두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이들이 무협으로 극이 전환되는 순간 모두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강호의 절대강자들로 분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 가벼움 속에 진지한 스토리를 이어간다. 즉, 절대강자의 고수들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상처를 유쾌함으로 승화하고, 본인들의 좌절감을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 강명규가 모든 것을 돈으로 여기는 아내를 베어버리고, 이해타산에 눈이 어두운 가구점 가게 주인 문덕수를 베고, 그의 딸인 문선미도 베어버린 그 때 의자를 향한 자신의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획득한다.

그래서 연극은 유쾌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묻고, 보여주면서 관객들은 현대사회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소유욕으로 시달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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