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밤에 국회 앞 전교조 농성장에서 긴급히 대책회의를 하는 사학개혁국본하재근
한나라당이 사학법을 양보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원내 1당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한다. 사학개혁을 추진했던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양보를 환영했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 계속된 사학개혁 싸움은 한나라당의 양보로 일단락 된 것인가?
양보의 주체가 한나라당이라고 선전하는 열린우리당의 태도부터가 황당하다. 한나라당은 양보한 적이 없다. 양보한 당사자는 명백히 열린우리당이다. 그 양보의 대가는 민생법안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학법을 주고 받았다는 교육 분야 민생법안은 로스쿨법이다. 그것도 법사위에서 아직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다. 이것도 황당하다.
로스쿨의 학비는 연간 수천만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연간 수천만 원 학비의 교육과정 설치와 민생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로스쿨은 논란의 여지가 매우 크며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공론이 모아지지 않은 부문이다. 열린우리당은 그런 것을 민생법안이라며 우리 사회의 숙원인 사학법과 맞바꾸려 하고 있다.
양극화 문제는 접어두고, 그나마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현 집권세력이 내세울 유일한 개혁 실적이 사학개혁이다. 열린우리당은 2002년 총선 전엔 이런 개혁을 책임지겠다며 국민에게 호소했고, 총선 후엔 이 싸움으로 몇 년간을 소모했다. 그런데 이제 한나라당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며 사학법을 재개정하려고 한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04년 열린우리당 애초의 안은 개방형 이사가 이사 중 3분의 1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곧 '양보'했다. 2005년에 이르러 개방형 이사는 4분의 1로 줄었고, 그나마도 학교운영위원회 2배수 추천 후 재단이 임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록 미흡하나마 사학의 제왕적 족벌경영을 견제할 장치의 첫 걸음이라고 평가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거침없는 양보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2006년에 이르러 개방형 이사제를 명목상 유지하는 대신 사학에 다른 출구를 주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이사장 친인척의 학교장 임용 허용, 이사장의 타 학교법인 이사장, 교장 겸직 허용, 대학의 학교장 중임 제한 삭제, 위법 방조 임원승인 취소 조항 삭제 등이다. 교사회-학부모회-학생회 법제화나 인사위원회-징계위원회 교사회-교수회 추천 조항은 2005년도에 이미 삭제했다.
개방형 이사제를 존립시킨다는 그 명분 하나만을 가지고 국민을 현혹하며 실질적으론 지속적으로 사학개혁의 취지를 무력화해 온 것이다.
개방형 이사를 추천하는 주체는 학교운영위원회다. 그런데 학교운영위원회는 불행히도 학교 측 이해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학교 운영 구조 개혁의 실질적 주체는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 등이다. 하지만 이 주체들은 우리당의 양보로 사학개혁에서 진작에 사라졌다. 또, 이사장의 친인척이 교장이 되고, 중임할 수 있게 되면 족벌경영을 뿌리 뽑을 수 없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2007년 4월엔 임시이사의 임기를 3년으로 제한해 비리재단이 복귀할 장치까지 마련했다. 게다가 이 모든 거침없는 양보의 행진을 감행하며 끝끝내 지키겠다고 표방했던 단 하나의 명분인 개방형 이사제도 무력화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그것이 개방이사추천위원회다. 이 위원회를 학교운영위원회/대학평의원회와 이사회가 동시에 구성, 개방형 이사를 2배수로 추천하여 이사회의 낙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이사회 자신이 개방형 이사를 추천할 권한을 갖게 되어 개방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된다.
스스로 추천하여 스스로 임명하는 이사가 어떻게 개방형 이사란 말인가? 열린우리당의 거침없는 양보는 급기야는 개방형 이사제라는 단어 하나만 남기고 그 모든 실질적 내용을 스스로 삭제하는 거대한 허무개그의 경지에 다다른 셈이다.
한나라당은 이마저도 받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개방이사추천위원회를 이사회와 학교운영위원회·대학평의원회가 동수로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양보했다는 것은,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양보했던 모든 내용은 다 받으면서, 개방이사추천위원회에 이사회 측 인사가 한 명 적게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학교운영위원회·대학평의원회 측 인사가 위원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한다 해도, 2배수 추천인 이상 이사회가 절반의 추천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추천한 인사를 선임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얻은 것이 있기는 하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개방이사추천위원회에서 2배수로 개방형 이사를 추천할 때 과반수의 인원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추천 당시의 거부권. 이것이 열린우리당의 사학개혁으로 한국사회가 얻은 것이다.
그러나 재단이 거부권의 대상이 될 만큼 결격사유가 분명한 인사를 추천할 리도 없거니와, 학교운영위원회 자체가 기존의 학교장-재단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므로, 학교운영위원회가 개방이사추천위원회에 진입해 행사하는 거부권이 황제경영을 견제할 장치가 될 것이라고 믿기는 힘들다. 그리하여 결국 얻은 것은 허울뿐인 개방형 이사제라는 단어에 불과한 셈이 된다.
지금 한나라당이 마치 큰 양보를 한 것처럼 선전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열린우리당이 애초에 한나라당이 받을 안을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면 사학재단은 개방형 이사 선임 과정에서의 '약간의 귀찮음'만 감수하면 잃을 것이 크게 없다. 사학재단에게 '약간의 귀찮음'을 안겨주기 위해 국회 과반수가 필요했단 말인가?
한나라당에게 원활한 국정운영과 민생법안을 위해 대승적으로 양보했다는 프리미엄을 안겨주는 대신, 교육부문에서 열린우리당은 로스쿨법안 하나를 챙기려 하는 모양새다. 2007년에 로스쿨법안을 얻기 위해 사학개혁의 큰 칼을 빼들었다? 열린우리당의 기념비적인 허무개그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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