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아득한 것만이 역사라는 편견은 버려라

소박해서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 옥천 천주교회

등록 2007.07.01 16:27수정 2007.07.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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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부에서 바라본 옥천천주교회. ⓒ 안병기

좀 더 균형잡힌 여행기를 위하여

번거롭고 복잡한 일상에 치여 자신이 정체돼 있다 싶을 때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잘 알려진 경승지나 문화재, 산이나 강 또는 해변을 찾아서 길을 나서는 것이다. 그 결과 어느 때는 기대에 차지 않아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돌아오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기대 이상의 황홀경에 빠져 도취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 채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달래며 억지로 떠나 올 때도 있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사진을 정리하고 순간의 느낌을 되살려 여행기를 써 나간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여행지에 대해선 여행기를 별로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때로는 기대 이상이었던 여행지에 대해서도 여행기를 쓰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여행기를 쓰고 나면 어쩐지 여행에서 느꼈던 좋은 느낌이 통째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아주 특이한 경우에 부딪힐 때도 있다. 여행지가 갖는 의미가 너무 커 내 필력으로는 도저히 소화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진 포기하는 바로 그런 순간이다.

내가 쓰는 여행기 가운데는 사찰 여행기가 유독 많다. 그러나 내겐 눈곱만큼이라도 종교적 편견이나 치우침이 없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 버린 것뿐이다. 어쩌면 불교의 역사가 오래고 긴 반면 기독교 등 여타 종교의 역사가 짧고 문화재라 일컬을 만한 것이 썩 드문 것이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균형을 맞추기 위해라도 천주교 건물이나 성지에 대해서 돌아볼 기회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은 내가 쓴 여행기를 읽어왔던 분들께 내가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지 않고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걸 커밍아웃하는 기회일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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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왼쪽 담장 가에 서 있는 호랑가시 2그루.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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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기

6월 30일에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려고 충북 옥천 지역을 다녀왔다. 옥천에 가면 꼭 옥천 천주교회를 들렀다 오리라고 마음먹은 지 오래됐지만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쳐 오기 일쑤였다. 어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옥천 답사에 대한 사전 자료를 좀 더 확실하게 보충하고자 옥천도서관에 들러 잠시 <옥천군지>를 열람하고 나오던 내 눈 속으로 멀리 옥천 천주교회의 십자가가 들어왔다. 여행이란 이렇게 주도면밀한 계획보다는 우연에 의존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인지 모른다.

옥천 천주교회는 옥천읍 삼양리 옥천군청 가기 바로 직전 언덕 위에 서 있다. 언덕을 올라가자 나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호랑가시나무 2그루였다.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이 나무의 잎은 두꺼우며 윤기가 있는 타원상 육각형이며 잎이 끝이 예리한 가시로 되어 있다. 가을에는 앙증맞은 빨간 열매가 맺는다.

이러한 나무가 가진 특징 때문에 서양에서는 이 나무를 그리스도의 순교와 연관지어 매우 신성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로서도 각광을 받는다고 들었다. 이 나무의 분포지는 전북 변산반도 이남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전 회덕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울타리엔 이 나무가 대량으로 심어져 있다.

어쨌든 나는 이 나무를 매우 좋아한다. 각진 잎도 멋이 있지만 가을에 열리는 빨간 열매가 나를 매혹한다.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자 전면에 서남향으로 몸을 향한 옥천 천주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너무 소박하고 아름다워 아, 하는 감탄사가 입밖으로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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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기

건물은 시멘트 벽돌로 쌓아올린 3층 건물이다. 지붕의 구조는 왕대공 형식이 변형된 목재 삼각형이다. 길이 47.9m 폭 28.8m의 장방형 건물이며 지붕의 높이는 9.3m인데 첨탑까지 포함하면 21.5m의 높이라고 한다(옥천시 자료 참조).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측 출입구가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전면에 3개의 박공형 지붕을 씌운 전실을 두었으며 중앙부에 3층 규모의 종탑을 배치한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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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난 아치형 창과 출입문들. ⓒ 안병기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겉에서 구조를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건물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건물의 각 칸에는 1~2개의 긴 아치형 창과 출입문을 냈다. 그런데 남쪽으로 달아낸 부분은 무엇에 쓰는 공간일까?

이 건축의 설계자는 1945~89년까지 청주교구에서 수사로 활동했던 렉 수사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던 그가 당시 주임신부였던 변 로이 신부의 의뢰로 이 건물을 설계했다는 것이 이 천주교회의 나이 든 신도들의 증언이라 한다.

이 건축은 현재 충북지역에 현재 남아 있는 1940년대에 지어진 천주교 성당 건축물 중 유일한 건물이라고 한다. 해방 이후 지방 성당 건축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건축물로서 가치가 인정되어 이 건물은 현재 등록문화재 7호로 등록돼 있다.

등록문화재란 근·현대시기에 조성된 건조물 또는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들 중에서 보존과 활용을 위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근현대의 문화유산은 조성된 연륜이 짧은 것들이기 때문에 그 문화재적 가치를 자각하지 못한 채 함부로 멸실 훼손의 위험이 그만큼 크다 할 수 있다.

아무리 가까운 근현대일지라도

흔히 근현대는 역사가 아닌 것처럼 오해하거나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삼국시대나 조선시대같이 먼 과거만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가 생활하고 호흡하고 있는 현재 역시 역사에 속한다. 역사는 정지된 한 시기가 아니라 영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는 전통과 현대의 중간 교량 역할을 하는 시기이다. 근현대는 이전의 어떤 시기보다 훨씬 빠르고 다양한 형식으로 변화가 이뤄진 격동의 시기다.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그만큼 보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근대문화유산에 대해 정당한 가치를 매기고 그 문화유산들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책무이다. 아무리 가까운 근현대일지라도 그것 역시 역사이다. 그 역사가 남긴 문화재를 잘 지킴으로써 문화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일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건물의 내부까지 속속들이 들여다 보지 못하고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구경을 끝낸 다음 언덕을 내려가면서 생각한다. 저 소박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에 들어앉아 자신이 신앙하는 절대자에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한갓 건축이 어찌 인간의 마음을 다 규정할 수 있으랴마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건물이 가진 소박하지만 은은한 멋에 자신도 모르게 감염된 그들의 마음 또한 그렇게 소박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큰 것을 채우기는 어렵지만 작은 것을 채우기는 쉽다. 큰 욕심은 채우기 어렵지만 작은 욕심은 채우기 훨씬 쉽다. 작은 예배당에 앉아 작고 아름다운 세상을 희구하는 낮은 목소리로 올리는 옥천천주교회 사람들의 기도가 아주 멀리까지 퍼져 나가 꼭 이루어지기를 빈다. 이것이 오늘 아무도 모르게 왔다가는 한 국외자가 이 작은 교회 사람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축원이다.
#옥천천주교회 #호랑가시나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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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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