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과거사 사죄가 아시아 평화 토대"

광주에 온 일본 여성 정치 대모 도이 전 의장

등록 2007.07.02 18:37수정 2007.07.0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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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이은경 기자] 6월27일 ‘광주세계여성평화포럼’(6월26~28일)에 참가한 일본 진보·여성주의 정치의 대모 도이 다카코(79) 전 중의원 의장을 만나 아시아의 평화 정착을 위한 제언을 들어봤다.

도이 전 의장은 한·일 양국의 역사 청산작업이 아시아의 평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날 아침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찬성 39표, 반대 2표의 압도적 표차로 미 하원 외교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은 그를 고무시켰다.

"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당면한 큰 문제다. 양국 전문가가 자주 모여 머리를 맞대고 사실을 낱낱이 파악해 하나씩 규명해나가는 신중한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일본 정부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해 사죄하고 보상하며 후세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켜야 한다. 일본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처리해야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는 "'군위안부 문제에 강제성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상당히 불성실한 태도"라고 비판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위안부 문제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쟁지역 여성인권운동가들의 목소리

아프간 최연소 여성의원 말라라이 조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이나 포럼에서 말한 것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알려지면 그들 군부독재자는 당장 나를 죽이려들 것이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곧 조국의 모든 억압받는 민중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이기에 진실을 말하려는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05년 여성 참정권이 첫 허용된 아프가니스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파라에 출마해 여성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말라라이 조야(29) 의원. 여성인권의 확보는 군부독재화된 조국이 민주화되지 않고는 요원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여성역량 향상기구’(OPAWC)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21일 한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동료 의원들을 “소와 당나귀만도 못하다”고 한 발언 때문에 의회법에 의해 임기가 끝나는 2010
년까지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다.

“여권 반대주의자인 근본주의 군벌들이 의석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인 데다 ‘진실’을 말하기에 국회로부터 축출당한 것이다. 내 웹사이트(www.malalaijoya.com)에서는 미국, 캐나다 등지의 세계 시민들이 나를 국회로 복귀시키라는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야 의원은 “아프가니스탄 249명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 수는 68명으로, 이는 미국, 영국보다도 여성 비율이 더 높은 것”이라면서 “여성의원 대부분이 군벌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비민주적인 인사들”이라고 비난했다.

“남성의원들은 ‘(조야를) 강간하고 창녀로 만들어라’ ‘자살 폭탄테러로 죽이겠다’고까지 위협했지만, 여성의원들도 이에 못지않다. 심지어 한 여성의원은 ‘남자들도 못하는 무서운 짓을 네게 꼭 하겠다’고까지 협박할 정도다.”

그는 “인신매매, 성폭력 등으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은 여성들의 자살률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며 “교육과 여성들의 안전보장이 최우선 당면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빈번한 살해 위협 속에 조야 의원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민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인 사무실을 가질 수 없다”는 것. 2005년 3·8 세계 여성의 날에 결혼한 남편과는 함께 살지도, 아이를 갖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파키스탄의 여성인권운동가 무크타르 마이

"투쟁에 처음 나섰을 때 난 혼자였지만 이 투쟁은 곧 사회적 불의로 고통받고 있는 파키스탄 모든 여성의 운동으로 이어졌다."

‘여성의 인권과 폭력’ 세션에서 자신의 체험을 증언한 무크타르 마이(35)의 목소리는 포럼장 안에 큰 울림을 주었다. 반면, 인터뷰를 위해 만난 마이는 30대 중반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되고 수줍은 얼굴이었다. 파키스탄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킨 그의 힘은 어디로부터 나왔을까. “알라신”이란 그의 짤막한 답변이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대변해줄까.

“내 사건 이후 여성들에게 힘이 실리고, 특히 여성 피해 사건들이 신속히 처리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됐다.”

시행까지는 수개월이 남았지만 지난 연말 의회를 통과해 무샤라프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여성보호법’도 큰 성과다.

마이 여사는 2002년 6월 남동생이 천민층인 자신들보다 높은 신분 집안의 딸을 사귄다는 이유로 상대 부족 14명의 남성들로부터 집단성폭력을 당했다. 그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하듯 ‘자살’하는 대신 법정 투쟁을 선택했다. 현재 가해남성들은 전원 체포된 채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사건 이후 그는 2005년 미국의 여성지 ‘글래머’에 의해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됐고, 구술로 엮은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이란 책을 냈는가 하면, 올 하반기에 그의 투쟁을 담은 다큐 ‘수치(Shame)’가 국제영화제에 출품되는 등 세계적 인물로 떠올랐다. 그 자신 파키스탄 총리로부터 받은 배상금과 세계에서 답지한 성금을 모아 고향 펀자브주 미르왈라 지방에 초등학교 수준의 여학교 2개와 남학교 1개를 세웠고, 최근에는 고등학교 교육도 시작했다. 사건 당시 문맹이어서 경찰 조사 때부터 불이익을 당했던 그는 자신이 세운 학교의 초등 4년생이기도 하다.

“나처럼 배우지 못한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여성이 공부를 많이 할수록 피해를 덜 당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마이 여사는 ‘무크타르 마이 여성복지기구’를 결성해 활동하는 한편, 법적 의료적 지원을 하는 여성쉼터, 여성권리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이동식 캠프도 운영 중이다.

이스라엘 내과의사회 회장 루차마 마톤

1988년 이스라엘 정부의 억압정책에 대항해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아이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봉기(인티파더, Intifada)를 일으켰다. 이스라엘의 폭력진압에 희생된 이들 대부분도 비무장 상태의 여성과 아동이었다.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에 ‘인권을 위한 내과의사회’가 창립됐다. 루차마 마톤 박사는 이 단체의 창립 때부터 중추 역할을 하다 6년 전부터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국제인권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노벨평화상 여성후보 1000명 중에 이스라엘 대표로 이름을 올린 여성인권운동가다.

“우리는 인권을 위한 연대의식을 중요시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우선은 여성인권이다. 이스라엘인이든 팔레스타인인이든 누구를 치료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치료과정을 통해 인권투쟁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단체는 초기 활동 때 회원 수가 11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500여명의 의사들이 참여할 정도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마톤 박사는 “인권문제는 분쟁의 결과이기에 우선 분쟁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군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갈등을 계속 유지하는 한편, 또 다른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이스라엘 정부는 결코 민주정부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부분적으로 유대인에게만 민주적이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겐 비민주적인데, 이 불균형이 개선되지 않는 한 어떻게 민주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군사적 압박을 최소화하는 것이 분쟁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이라 믿지만, 여성도 군대에 가는 것이 의무인 이스라엘의 상황에서 그의 이상론과 현실 사이의 격차는 크고도 미묘하다.

“여성이 군대에 가지 않으면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평등문제 때문에 나도, 내 딸도 병역의무를 치러야 했다. 미래에는 군대가 아예 필요없는 그런 날이 오길 염원한다.”

‘광주세계여성평화네트워크’ 출범
‘광주선언’과 함께 행사 막내려

▲ 광주세계여성평화포럼 개막식 단상에 자리한 국내외 인사들.

‘여성의 인권 신장과 평화를 위해 우리 여성들은 세계 여성의 지속적인 연대를 다짐하며 광주세계여성평화네트워크 발족을 제안한다.’
지난 6월26일 국내외 민주·인권 여성운동가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막을 올린 ‘2007 광주세계여성평화포럼(이하 포럼)’이 28일 세계여성평화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광주선언’을 선포하고 3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김필식 포럼 공동추진위원장과 베아테 루돌프 유럽여성법률인협회 부회장은 28일 광주선언을 통해 이주여성의 인권 향상,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 철폐,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여성 앞에 놓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의 6개항의 선언문을 선포했다.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이번 포럼에서는 ‘여성의 인권과 문화’를 주제로 여성의 시각에서 민주·인권·평화의 정신과 의미를 조명했다.

27일 개막식에서 이희호 포럼 명예위원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광주 민주항쟁에서 여성의 자발적인 참여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원동력이었던 만큼 광주는 여성 권익과 세계평화 실현을 위한 네트워크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날 광주 여성들의 정신을 바탕 삼아 빈곤퇴치, 여성 억압 및 차별 철폐, 문화·종교적 인습 타파 등 평화 증진을 위해 세계적 연대를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막식에 이어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선 3개 부문으로 나뉘어 ▲다문화주의와 여성 ▲여성의 인권과 폭력 ▲세계평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을 각각 논의했다.

나오미 골든버그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종교학)는 “페미니즘의 진전을 위해서는 남성이 정치적 지배권을 갖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종교와 문화의 정치적 속성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문화를 종교 및 정치와의 연관 속에서 규정하면서 이슬람 종파의 여성 할례를 예로 들었다.

매리 콘드렌 더블린 트리니티대 교수(여성학)는 고대 아일랜드 태양의 여신 마하가 자신이 낳은 쌍둥이를 전쟁영웅인 왕에게 빼앗긴 후 여성들 앞에서 ‘여러분 모두 어머니로 태어났습니다’를 외친 신화 내용을 예로 들면서 무력의 지배 앞에서 어머니 역할의 가치를 역설했다.

유럽인의 시각에서 여성의 현실을 조명한 베아테 루돌프(독일-여성의 인권 인정과 여성폭력과의 전쟁)는 “직장에서 여성평등권은 보장되고 있지만 공적 및 경제적 영역에의 여성 참여에는 여전히 저항이 있다”면서 여성단체들의 완전한 양성평등권 인지를 강조했다.

이밖에 시미즈 스미코(일본), 윤미향(한국), 누알라 아헌(아일랜드)은 일본군 위안부 및 성폭력, 에이즈 확산 문제와 연계해 인신매매 문제를 다루었다. 이연숙(한국)씨는 세계평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을 발표해 여성의 권익 신장과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연대에 공감했다. 포럼 참석자들은 이날 개막식에 앞서 5·18 국립민주묘지를 방문, 헌화와 분향을 했다.

포럼 기간 동안 행사장 1층에서는 여성인권 평화단체 페스티벌, 세계여성평화구호기금 마련 행사 등이 열려 광주는 물론 전세계 여성들의 인권 추구를 위한 친목 및 화합의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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