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안에서 깨진 '선입견'

퉁명스럽다던 기사아저씨가 믿음직스러워 보인 사연

등록 2007.07.03 09:34수정 2007.07.03 13:4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운전기사


우리가 사는 시골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시골버스는 고정 운전기사가 두 명이다.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운전하며 기점에서 종점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되는 안성 시내와 우리 마을 앞을 오간다. 물론 그 다음 날은 다른 기사가 교대로 하루 종일 운전한다. 그러다보니 같은 날 같은 운전기사를 두 번 이상 보게 되는 일이 잦다.

우리 집만 해도 그렇다. 아침에 제일 먼저 딸아이가 등교하며 본 그 운전기사를 아들아이와 아내가 출근하며 또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중간에 안성 시내를 갈라치면 또 그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물론 버스타고 올 때도 아들아이, 딸아이, 아내와 나 이런 순으로 아침나절에 봤던 그 아저씨를 또 만나게 된다. 우리 가족이 한 기사 아저씨를 하루에 만나게 되는 회수는 8번 이상인 경우가 종종 있으니 결코 적은 만남이 아니다.

시골버스가 눈길을 지나가고 있다.
시골버스가 눈길을 지나가고 있다.송상호
이런 실정이니 운전기사나 우리는 서로 잘 안다면 잘 아는 사이일 수밖에 없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어디서 누가 타고 어디에서 누가 내리는지, 누구와 누가 가족사이고 친척 사이인지 얼추 알고 있을 정도가 된다.

그런데 우리 시골버스를 운전하는 그 두 아저씨는 각각 특징이 있다. 한 아저씨는 뚱뚱하고 키가 큰 편이다. 또 다른 아저씨는 키가 작고 비교적 야윈 편이다. 뚱뚱한 아저씨는 좀 퉁명스럽다. 반면에 야윈 아저씨는 상냥하다.

이런 지경이니 아내와 내가 가끔 두 사람을 비교하며 대화를 나누곤 한다. 뚱뚱한 아저씨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다는 둥 인사를 해도 시원스레 잘 받지 않는다는 둥 욕심이 많게 생겼고 한 성질하게 생겼다는 둥. 반면 야윈 아저씨는 사람이 참 좋아 보인다는 둥 역시 친절한 사람은 뭐가 다르다는 둥 운전하는 것도 참 안전하게 잘 한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아내와 주고받는다.


이러던 차에 사건이 터졌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그 편견과 선입견이 깨지는 사건 말이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편견과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지고

안성 시내에서 버스를 타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아이가 뒷좌석에 타고 있다. 우리 집에 거의 매일 놀러오는 막내 아들아이 친구인 우리 마을 아이 사빈(8)이다.


"야. 너 왜 집에 바로 안 가고 여기 타고 있니?"
"기사 아저씨가 태워줬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사 아저씨가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앞 버스 정류소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고 있기에 태워 왔어요. 어차피 이 차가 한 바퀴 돌아 안성 시내에서 출발해야 차를 탈거니까요. 아이가 심심할 거 같아서 타라고 했지요."

그런데다가 아저씨는 사빈이가 먹으라고 아이스크림을 사주신 것이다. 사빈이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그저 싱글벙글이다.

여러분도 눈치 챘겠지만 그 아저씨가 바로 무뚝뚝하고 퉁명스럽다던 바로 그 아저씨다. 퉁명스럽다던 그 아저씨가 아이가 심심할까봐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게 하지 않고 시내로 데려나와 아이스크림까지 사먹이다니.

더 웃긴 것은 그 일 이후 그 아저씨를 향한 내 마음이다. 그 전까지는 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저씨가 그저 무뚝뚝하게만 느껴졌는데, 이젠 아저씨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어찌 그리 마음에 드는지 모를 일이다.

퉁명하다던 아저씨가 어찌 그리 믿음직스러운지...

가만히 보니 그 아저씨는 전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시골 마을에 유독 노인 승객이 많은지라 마을 저만치서 노인들이 버스를 타려고 느릿느릿 걸어와도 여유 있게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다리 건너 저만치서 버스를 타려고 오는 사람인가 싶어서 여유 있게 기다리다가 그 쪽에서 먼저 '버스가 떠나라고, 버스를 탈 게 아니라고' 손짓 해주는 걸 확인해야 버스를 움직인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노인들이 천천히 내리면 그러는 대로 여유 있게 기다린다. 뿐만 아니라 정확한 버스 정류장 앞이 아니더라도 노인들에게만은 꼭 그 집 가까운 곳에 내려다 준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다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시골 버스의 내부 전경이다. 자전거도 함께 타고 있는 게 정겹다.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시골 버스의 내부 전경이다. 자전거도 함께 타고 있는 게 정겹다.송상호
어쩌면 그 아저씨가 하는 행동마다 마음에 드는지. 하다못해 뚱뚱한 것도 참 든든하다는 생각까지 들고 무뚝뚝한 것도 변덕이 없어 보일 정도다. 그러니까 안전 운행할 거라는 믿음이 드는 것은 대체 무슨 마음인지.

집에 와서 아내에게 내 생각을 늘어놓았더니 그 아저씨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분명히 전에는 내 말에 맞장구치더니 그것 참.

이렇게 해서 몇 번 만났던 느낌만으로 판단하던 못난 나의 편견과 선입견이 시골버스 안에서 산산이 깨지고 그 잘난 득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아무리 깨져도 아프지 않다는, 아니 깨지면 깨질수록 좋다는 그 편견이 시골버스 안에서 깨진 역사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선입견 #시골버스 #운전기사 #변덕 #편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