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광장시장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 백연화 할아버지양주승
색소폰 연주로 유명한 '거리의 악사' 백연화(84) 할아버지가 오는 12일부터 열리는 2007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 트레일러(Trailer) 주인공으로 출연해 화제가 되고 있다. 트레일러란 영화제 시작 전에 상영되는 상징적인 영상물이다.
2007 PiFan 트레일러는 인간 내면에 간직한 '파랑새의 꿈'을 몽환적이면서 환상적인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는데 백연화 할아버지가 '사랑과 환상 그리고 모험'속에서 파랑새을 좇는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것.
장맛비가 쏟아지는 지난 2일 밤 9시, 동대문 광장시장 먹자골목에서 백연화 할아버지를 만났다. 나와 할아버지의 만남은 1990년 지방에서 열린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자선바자음악회 이후 17년 만이다.
당시 길게 길렀던 하얀 수염을 말끔히 잘라 내 하나도 늙지 않은 듯, 건강한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멋쟁이 여자친구(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그 할멈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날 자주 만나주지 않아"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할아버지에게 언제 PiFan 트레일러를 찍었냐고 물었더니 "응, 지난 6월초 제부도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찍느라고 힘들었지"라며 "내가 나온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7월12일 세계 32개국 유명 영화인들과 문화예술인이 참석하는 PiFan 개막식에서 상영되며 현재는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고 말하자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하며 기뻐했다.
트레일러 제작진은 영화를 찍기 위해 별다른 의상과 소품을 따로 장만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평상시 착용하는 모자와 의상을 그대로 입고 출연했으며 영화에 등장하는 보석 브로치, 가방, 꽃 등도 모두 할아버지 것을 이용했다.
1923년생인 백 할아버지는 15살 때부터 유랑극단과 5일장을 따라다니며 잡일을 거들었다. 이 때부터 줄타기를 비롯해 피리와 퉁소를 불었지만 값비싼 색소폰을 구입한다는 것은 가난한 악사에게 환상이며 꿈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