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바람남과 순진녀의 '명랑스캔들'

[아줌마, TV를 말하다 16] KBS 수목드라마 <경성스캔들>

등록 2007.07.04 14:52수정 2007.07.0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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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목 드라마 <경성스캔들> ⓒ KBS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SBS <쩐의 전쟁>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소수 마니아층을 확보하며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드라마가 있다.

<쩐의 전쟁>에 비해 화려한 캐스팅도 눈길을 끌만한 소재도 아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아기자기한 재미와 탄탄한 스토리에 빠지게 하는 KBS 수목드라마 <경성스캔들>이 바로 그것이다.

때는 1930년대, 서슬 퍼렇던 일제치하에서 비밀스럽게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야학교사를 하고 있는 흰 저고리 검정치마의 신여성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나여경(한지민분). 그녀는 비밀결사조직인 애물단(애국, 애족, 애민은 물론 만물을 사랑하는 단체)의 요원이기도하다.

경성 최고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남자. 여자 꼬이는 데는 선수라 10분이면 온 경성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하는 최고의 플레이보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선우완(강지환분). 기생방에서 기생과 놀이를 하는 것에 싫증이 나면 가십거리나 합성사진으로 판매부수를 올리는 저질 잡지 <지라시>(肢-팔다리를 挐-붙잡는 視-시선)의 객원기자로 무료함을 달래는 것이 고작이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도 않고, 어울려서도 안 될 것 같은 여성독립투사와 당대최고 바람둥이의 사랑. 배경도 이념도 생황방식도 너무나 달라 서로를 괴물 보듯 하는 두 사람의 사이에 운명적 사랑이 싹튼다. 이 부분에서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과 김우진의 슬픈 사랑을 떠 올렸다면 당신은 시대극에 상당히 학습된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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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와 여성독립투사의 코믹한 러브라인 ⓒ KBS

드라마 <경성스캔들>의 소리 없는 인기의 원인은 시대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가볍게 뛰어 넘어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는데 있다. 애국만 알고 세상 물정은 모르는 순진녀 나여경과 돈과 여자는 많지만 단 한번도 진지한 사랑을 경험 해보지 못한 난봉꾼 선우완. 1930년대를 살고 있는 이들의 사랑방식은 엉뚱하게도 2000년대식 상큼발랄 코믹모드를 따른다.

"조국, 민족, 해방, 계급, 혁명, 자유, 독립, 투쟁, 테러 그딴 건 개나 줘버려."
"젠장, 연애 좀 해보려는데 조국이 협조를 안 해주네. 연애를 하려면 조국을 먼저 해방시켜라 이건가."


스윙댄스를 즐기며 대낮부터 술에 취해 기생들 치마폭에나 쌓여 있기를 즐기는 선우완의 냉소 섞인 외침. 그는 암울한 시대의 행동하지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그는 조국 대신 여자를 독립운동 대신 연애를 택했다. 그러다 우연히 여경을 만나고 조금씩 달라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연애와 조국사이에서 고민하는 암울한 시대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이렇게 상큼, 발랄, 명랑, 쾌활하게 그려낸 작품은 이제까지 없었다. 이념과 애국, 독립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다보니 근엄, 엄숙, 심각모드가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지 62년이나 흐른 지금, 시대의 아픔을 고통으로 그려낸 작품에 대중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질까. <경성스캔들>은 과거 시대물의 표현방식을 완전히 벗어던지는 것으로 일반의 관심을 잡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시청자들은 시대의 아픔을 희화하느니 역사정신도 로맨스도 시대정신도 없는 드라마라느니 날 선 비판을 하기도하지만 <경성스캔들>에 대한 청소년층의 관심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이들의 관심이 젊은 두 연기자 한지민과 강지환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혹은 드라마 구석구석에 등장하는 "꺼지십시오", "쪽팔려" 등의 정통 시대물답지 않은 톡톡 튀는 대사와 스랩스틱 코미디를 연상하게 하는 오버액션 때문일지라도 웃음과 해학 그리고 풍자를 통해 시대를 경험하고 역사를 느끼게 될 터이니 이 유쾌 발랄한 시대물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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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들의 추적을 피해 들어간 기생방에서 선우완과 마주친 여경. ⓒ KBS

<경성스캔들>의 원작은 한때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기였던 이선미의 인터넷 소설 <경성애사>다. MBC에서 방송되고 있는 새 월화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원작 역시 이선미의 작품이다.

원작 <경성애사>는 로맨스 소설답게 희화와 풍자보다는 정통 로맨스에 치중하고 있으며 방송심의에 저촉될만한 선정적인 표현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에 비해 드라마는 애정 표현의 강도를 과감히 낮추고 풍자와 해학 그리고 웃음을 주는 색다른 캐릭터들을 첨가해 원작과는 전혀 다른 다양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탄탄한 스토리에 바탕을 두고 드라마적 재미를 충분히 더해 좀 더 완벽한 코믹시대물로 재탄생 된 것이다. 또한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주·조연 연기자들의 짜임새 있는 연기 호흡이 드라마 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도 <경성스캔들>의 큰 장점이다.

여경이 혁명과업완수를 위해 위장연애를 하게 되는 총독부 보안과장 이수현(류진), 명빈관의 고혹적인 기생이며 애물단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차송주(한고은), 매회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지라시 식구들, 그리고 이들의 모든 것을 더욱 빛내게 하는 악역 이강구(윤기원)의 활약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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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재미를 더 해주는 조연들의 활약-지라시 식구들 ⓒ KBS

동시간대 화제 드라마인 <쩐의 전쟁>에 밀려 큰 빛을 보고 있지는 못하지만 모른 채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작품. 그래서 인터넷 다시보기든 재방송이든 반드시 챙겨보게 된다.

골치 아픈 세상일, 어려운 경제문제, 잊고 싶은 나쁜 기억들로 장마철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유쾌, 경쾌, 발랄한 <경성애사>를 추천하고 싶다. 잠깐 동안이라도 일상의 우울함을 잊고 그들의 순수함과 발랄함에 빠져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티뷰기자단 작성기사

덧붙이는 글 티뷰기자단 작성기사
#경성스캔들 #선우와 #여경 #한지민 #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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