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리사 선수촌장 "선수·코치 1년 월급 확보해야"

부천 여성주간 '여성리더와의 만남' 5일 강연

등록 2007.07.06 17:52수정 2007.07.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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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여성주간을 맞이하여 부천시여성회관에서는 '여성리더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태릉선수촌 이에리사 촌장의 강연을 준비했다. ⓒ 임민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체육계에 첫 여성 지도자로 쉬지 않고 달려온 탁구의 여왕, 이에리사(53) 태릉선수촌장이 여성주간을 맞아 5일 부천을 찾았다.

이에리사 촌장은 용인대 교수를 지내면서도 아테네올림픽 여자탁구 감독을 맡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그리고 2005년 3월, 태릉선수촌이 개촌한 뒤 40여년 만에 처음 탄생한 여성 선수촌장이어서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 인물이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태릉선수촌 촌장이기 이전에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단체전 우승의 주역으로서 멋진 모습을 먼저 떠올릴 거다.

이날 경기도 부천시 복사골문화센터에서 그녀는 "동계올림픽 유치는 평창이 되는 줄 알았다. 오늘 아침 8시 22분 '소치'라고 발표하는 걸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도 울먹이고 그랬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잠시 스쳐가는 일일 뿐, 다음을 또 준비하면 되는 것"이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녀는 태릉선수촌 첫 여성 촌장이 됐을 때를 회상하며 "최근에 여자들의 사회활동이나 능력은 굉장히 인정받고 있지만 보수적인 체육계가 촌장을 제의해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누구든지 주어진 직책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각오로 일했다. 촌장이 된 이후 내 인생 최고의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사실 먹고 노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할 일도 많고 너무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어 촌장이 된 이후 행정을 하면서 느낀 문제점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운동은 반복연습이라서 훈련의 양과 성적이 비례한다. 국가대표 선수가 1200명 정도인데 태릉에서 훈련비가 부족해서 1년에 110일밖에 훈련을 못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는 훈련일수에 따라 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110일이라고 하면 4개월 월급도 안 된다는 얘기다. 1년 12달 중에 나머지 8개월은 뭘 먹고 살라는 얘긴가?

그래서 쫓겨날 각오하고 언론에 이야기를 했다. 훈련일수 110일이 다 되는 순간부터 태릉선수촌 문을 닫겠다고, 그러면서 각 언론사에 기사가 나가니까 문광위도 알게 됐다. 결국 예산이 증액돼서 2006년도에 150일로 늘었다. 굉장한 성과였다. 하지만 그 후에도 훈련일수가 부족해서 도움을 요청했고 금년에 180일로 조정이 되었다"며 최소한의 훈련일수 확보가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말한다.

이에리사 촌장은 "훈련일수가 이토록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직업이 없는 코치나 선수들에겐 생계에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180일이 되었다고 해도 9개월이다. 그들에게 12달 월급을 줄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나의 숙제"라며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강의실을 가득 채운 여성들 사이에서 말없이 강연을 듣던 한 남성은 질의응답 시간에 "이에리사 촌장님이 사라예보에서 우승하고 돌아왔을 때 꽃가루를 날리며 환영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부천시청 소속 탁구부가 창단됐는데 혹시 어떤 선수가 있는지 아느냐?"는 갑작스런 질문을 던졌다.

순간 강의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짧은 순간 긴장 속에서 이에리사 촌장의 대답을 기다렸고 이윽고 "부천시청에도 탁구부가 있다는 게 참 기쁘다. 김승환, 주배준 이런 선수들이 있다는 걸 안다. 체육계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이상 모든 걸 꿰뚫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로 태릉선수촌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성주간을 맞아 이번 강연을 기획한 부천시여성회관 관계자는 "이에리사 촌장의 강연에 나도 모르게 도취되어 진행해야 할 타이밍까지 놓쳤다. 여성으로서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고 전하며 앞으로 남은 기간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부천지역 여성들에게 한 걸음 다가갈 것을 약속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문화일보(http://www.ebci.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천문화일보(http://www.ebci.co.kr)에도 실렸습니다.
#이에리사 #여성주간 #복사골문화센터 #부천시 #태릉선수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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