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자유로에는 '바보'가 없었다

[체험기] 질주 본능 대신 안전 본능이 필요해

등록 2007.07.08 18:32수정 2007.07.0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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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에서 규정속도를 지키는 차는 얼마나 될까?

6일 늦은 밤 자유로에 들어서자 차량들이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규정속도 시속 90㎞로 달리는 내 차는 점점 뒤떨어졌다. 무수히 많은 차량이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비교적 많은 교통량 때문에 얌전하게 강변북로를 달리던 차량은 자유로에서 해방감을 만끽했다. 일자로 쭉 뻗은 도로와 줄어든 교통량 때문이다.

이런 기회를 그냥 보내는 운전자는 없었다. 소형, 대형 가릴 것 없이 마구 달렸다. 마치 경주를 하듯 이리저리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는 차도 눈에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규정속도를 지키는 것은 '바보짓' 같았다. 내 차 뒤에서 상향등을 깜빡이며 압력을 넣는 운전자까지 있을 정도였다.

불나방같은 자유로의 자동차들

속도를 안 내는 것이 다른 운전자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하기까지 했다.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속도를 높일까도 고민해봤다. 그래도 '규정속도를 지키는 게 맞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꾹 참았다.


하지만 운전자들이 자유로 운행 내내 과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로 위 빨간 테두리의 '90'이라는 표지판과 카메라가 모습을 드러내자 약속이나 한 듯 규정속도에 도달할 때까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지나자마자 다시 엑셀레이트 페달에 발을 올렸다.

자유로를 몇 번이라도 다녀본 사람들은 어디에 무인카메라가 있는지 훤히 알게 된다. 특히 널리 보급되고 있는 자동차 네비게이션의 '친절한 과속경고'도 단속카메라를 무력화 하는 데 큰 몫을 한다.


그런데 이산포IC 근처까지 오자 옆의 차로에 이상한 차가 눈에 띄었다. 규정속도로 달리는 내 차보다 더 천천히 가는 차였다. 반가웠다. '바보짓'에 동참한 사람이나 초보운전자겠거니 하고 그 옆을 지나치며 확인 차 고개를 살짝 돌려봤다.

이럴 수가! 결과는 내 예상과 달랐다. 그 차가 느리게 가는 이유는 DMB 네비게이션 때문. 물론 직접 운전자에게 TV를 보고 있었냐고 물을 수는 없었지만 운전석 바로 옆에서 빛을 내뿜는 화면을 외면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운전자가 운전과 TV 시청을 동시에 하고 있는 차. 처음으로 내가 앞질러 간 차였다.

내 차와 DMB 차를 제외한 다른 차량은 여전히 쏜살같이 달렸다. 마치 불빛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질주 본능 대신 안전 본능을 발휘하자

자유로를 맘껏 달리는 차량들
자유로를 맘껏 달리는 차량들오마이뉴스 박정호
자유로는 운전자들이 '속도의 자유'를 누리는 도로였다. 규정속도는 무의미했다. 단속카메라 앞에서만 감속할 뿐이었다. 기본적인 운전자들의 인식이 '단속에만 안 걸리면 된다'인 것이다. 그래서 '과속 딱지'를 떼는 건 재수없는 일이고 얼마까지 밟았는지는 자랑거리다. 이런 상황은 거의 대부분의 도로에서 비슷할 것 같다.

하지만 규정속도 준수는 안전운전의 기본사항 중 하나다. 빠른 속도는 돌발상황에서의 반응을 느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하기도 어렵고 급하게 핸들을 꺾다가는 다른 차와 충돌하거나 차가 전복될 수도 있다. 속도와 충돌 피해는 비례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시속 100㎞에서 속도가 10%만 증가해도 사망률은 거의 50% 가까이 늘어난다고 한다. 지난해 11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대교 참사도 안개 속 과속과 안전거리 미확보가 원인이었다.

정부는 과속 운전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경찰은 올해 1월 무용지물이 된 단속카메라 대신에 고속도로 터널이나 교량 등 위험구간에 특정 구간을 지나가는 차량의 평균속도를 단속하는 구간 과속단속 방식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또한 각 지자체들도 사고 위험 지역에 무인카메라, 과속방지판 등 과속 단속 장비를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그렇지만 각종 단속 장비가 도로를 뒤덮어도 운전자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소용 없다. 단속카메라가 네비게이션에 의해 무용지물이 된 것처럼 다른 단속장비의 운명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단속장비 앞에서 급감속 하는 게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맘껏 달리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변해야 한다. 우리 모두 규정속도를 지키는 '바보'가 되는 건 어떨까. 질주 본능 대신 안전 본능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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