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의원이 주도한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게 과연 한나라당이 내놓은 정책인가 싶을 정도의 파격적인 것이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남북화해 프로세스를 제시한 것이나, 남북 간 통신 및 언론의 전면개방과 자유왕래를 선언한 것이나, 혹은 대북 쌀 15만 톤 무상지원이나, 연 3만 명 규모의 북한 산업연수생 도입을 선언한 것 등은 기존의 햇볕정책의 수준을 훨씬 더 뛰어넘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한나라당이 남북화해와 통일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언제라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 보수세력 전체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새롭고 파격적인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세 가지의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대북정책 전환의 전제이고, 둘째는 대북정책 전환의 의도이며, 셋째는 대북정책 전환의 능력이다.
첫째,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전환에는 중요한 전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그것은 과거의 적대적 대북정책에 대한 한나라당의 명확한 반성 내지는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한나라당이 대북정책에 대해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은 정당이라면, 지금 와서 아무리 파격적이고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왜 갑자기 돌변하느냐?"는 물음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과거에 한반도 냉전과 대결구도를 심화시킨 정치집단의 계보를 잇는 정당이며, 그 자신도 북한을 원수처럼 대해온 남북관계 악화의 주범이다. 그런 정당이 대북정책을 본질적으로 수정하려면, 자신의 이전 행위에 대한 뭔가의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책전환에 앞서 반성을 하든가 해명을 하든가 하는 등의 사전행위가 있었어야 하는데도, 한나라당은 과거에 대한 명확한 설명 없이 갑자기 올해부터 자신들의 입장을 180도 돌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태도로부터 과연 얼마만큼이나 일관성과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둘째,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전환 의도는 순수해야 한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는 선비는 남들로부터 일단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대선국면을 앞두고 갑작스레 대북정책을 바꾸었으니, 그 의도가 선거와 연관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한나라당은 추정되는 의심을 깰 만한 반증을 제시해야 할 책임을 안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파격적인 대북정책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는, 하반기 이후에 예상되는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사전에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나라당 주도 하에 일찌감치 남북관계를 이슈화시킴으로써 유권자들이 하반기에 벌어질 남북관계 변화에 대해 미리 '면역'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유권자들이 웬만한 남북관계 변화에는 쉽사리 놀라지 않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미리 '면역주사'를 놓음으로써, 대선국면에서 남북관계가 이슈화되어 한나라당 후보가 유권자들로부터 소외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이 아닌가 하는 우려다.
만약 한나라당이 대선과 관계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면, 그런 순수성을 입증할 만한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대선 이전에 한나라당이 국가보안법 등의 남북관계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실천이 없다면, 한나라당의 순수성을 입증할 만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셋째,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전환은 그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한나라당의 능력범위 내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문서상으로 내놓은 화려한 정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선거를 앞두고 마치 무슨 선거공약을 하듯이 화려한 정책을 내놓는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파격적인 대북정책은 마치 초등학생이 짠 대학입학 로드맵과 같은 것이다. 대학을 가겠다고 선언한 초등학생은 그런 '비상식적'인 선언을 하기에 앞서, 자신의 능력을 남들에게 입증하는 절차를 먼저 취해야 한다.
초등학생이 갑자기 대학에 가겠다고 나서면,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아이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거나 혹은 '얘가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이런 황당한 말을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 그 초등학생이 진정으로 대학에 가고 싶다면, 자신이 천재적으로 공부를 잘한다거나 혹은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그런 기적을 일구어보겠다는 식으로 남들을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이해시킨다고 해서, 초등학생을 정말로 대학입학 학원에 보내줄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북정책에 관한 한 초등학생만도 못한 한나라당이 햇볕정책보다도 더 고난이도의 대북정책을 내놓았으니, 누가 보더라도 한나라당이 과연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겠는가 하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한나라당이 이번에 내놓은 대북정책 속에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 줄만 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무언가가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신뢰를 유발할 만한 전제조건도 마련해 두지 않고 곧바로 고난이도의 정책을 내놓았으니, 과연 한나라당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남북화해와 통일이라는 한반도 평화의 큰 물결에 동참하려면, 이번 대북정책 전환과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를 실행해야 한다.
첫째, 지난날 자신들이 저질렀던 대북적대정책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 혹은 반성해야 한다.
둘째, 대선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려면, 대선 이전에 국가보안법 등 남북관계 진전의 걸림돌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셋째, 화려한 '공약'을 남발하기에 앞서 그 공약을 이행할 만한 능력이 한나라당 안에 있다는 것을 먼저 입증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