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6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토지보상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보상금 규모를 줄이고 현금보상 비중도 축소하는 게 핵심이다. 행정도시, 신도시 등 대형 개발사업의 보상금이 한꺼번에 풀려 경제를 교란하고 또 부동산에 다시 유입되어 투기를 유발할 것을 염려해서라고 한다. 보상금의 재원 마련도 물론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여러 조치 가운데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보상금을 계산하는 기준시점을 사업인정 고시일에서 주민열람 공고일로 바꾼 것이다.
신도시 등 공공개발 사업을 하려면, 계획을 입안하여 주민에게 열람시킨 후 여러 절차를 밟아 사업을 인정하고 그 후에 사업자가 토지를 보상한다. 지금은 보상금 기준 금액을 정부가 사업을 인정하는 해의 공시지가로 하는데 반해 앞으로는 계획을 주민에게 열람시키는 해의 공시지가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체로 1년 정도 기준시점이 앞당겨진다고 한다.
신도시 등 공공사업을 한다는 정보가 있으며 땅값이 급속하게 오르는데, 기준시점을 앞당기면 당해 사업의 영향을 받아 오른 땅값을 그만큼 덜 보상해도 된다. 당해 사업으로 인한 지가 상승분은 불로소득이므로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하는 보상금에서 제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점에서 좋은 결정이라고 본다.
종전과 다름없는 생활? 현실에서 불가능
그러나 이 기회에 토지보상에 대해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자. 토지 보상의 근본 취지는 원소유자가 '종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데 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보상방법은 그 인근 지역에 비슷한 토지로, 즉 농지는 농지로, 택지는 택지로 보상하여 종전처럼 생활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인근 지역에 나누어줄 땅이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고, 개발사업으로 땅값이 올랐는데 동일한 면적을 주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금전으로 보상하거나, 토지구획정리사업이나 재개발사업에서처럼 가치가 비슷한 땅이나 부동산을 주는 환지·환권 방식을 쓰게 된다.
현금보상이든 환지·환권이든 '종전과 다름없는 생활'이라는 관점에서는 문제가 있다. 1천평 농사짓던 사람이 보상을 받으면 그 보상금으로 인근에 농지 1천평을 살 수 없다. 이미 보상금 이상으로 올라 버렸기 때문이다.
환지를 받는 경우에도 당연히 면적이 줄어든다. 농지를 재산으로 보지 않고 일터로만 보는 사람은 면적이 줄어 곤란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1천평을 다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임대를 한다면 몰라도 소유권을 주면 언제라도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막대한 불로소득이 사유화된다.
이것이 토지보상의 딜레마다. 종전과 다름없는 면적을 주면 재산가치가 늘어나고 재산가치를 동일하게 하면 면적이 줄어든다. 부모를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부모가 우는 격이다.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와 같이 토지에 대한 절대적 소유를 인정하는 사유재산제에서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 노력하여 생산한 것에만 절대적 소유를 인정하는 진정한 사유재산제에서는 쉽게 해결된다.
진정한 사유재산제라면, 토지 사용권은 강하게 보장할 수 있지만, 생산물과 같은 정도의 절대적 소유권을 토지소유자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특히 토지가치는 토지의 자연적 조건, 사회경제적 특성, 정부의 조치 등 토지소유자의 노력과 거의 무관하게 결정되므로 토지소유자의 것이 될 수 없다. 즉 토지가치는 '공동체'에 귀속되어야 한다.
토지가치 공동체에 귀속... 지대세 신설하자
토지가치를 공동체가 환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토지보유세다. 매년 토지의 임대가치 즉 지대를 징수하면 된다. 이런 세금을 '지대세'라고 한다. 지대세를 부과하면 토지의 매매가치 즉 지가는 '0'이 된다. 목돈을 지불하고 토지를 매입한 현 토지소유자를 보호하려면 매입지가의 이자를 공제하고 나머지 지대만 징수하면 된다. 이를 '이자공제형 지대세'라고 하는데, 이런 방식을 쓰면 현재의 토지소유자는 매입지가의 원금과 이자를 보장받게 된다. 지대세와 이자공제형 지대세는 '토지정의 시민연대'에서 여러 해 전부터 목표치로 제시해온 제도다.
이런 제도가 현실화되어 모든 토지소유자가 지대세(또는 이자공제형 지대세)를 납부한다고 가정해 보자.
공공사업에 의해 토지가 수용되는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보상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현금보상을 원하면, 정부는 보상금을 산정하는 기준시점을 따질 필요도 없이 매입지가를 보상하면 된다. 반면 땅을 받기를 원한다면, 종전과 같은 면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지대세를 (또는 이자공제형 지대세를) 부과한다는 조건 하에 그 면적만큼 구해주면 된다. 종전과 같은 지대세를 (또는 이자공제형 지대세를) 납부하고 싶어 한다면, 정부는 상응하는 면적만큼만 구해주면 된다. 그 외의 조합도 가능하다.
지대세나 이자공제형 지대세는 생소한 세금이어서 얼른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으므로 비유를 들어 보자. 지대세를 징수하면, 마치 토지소유자가 땅의 진짜 주인인 공동체로부터 보증금 없이 토지를 임차하여 쓰는 것과 같게 된다. 이자공제형 지대세를 징수하면, 토지소유자는 매입지가 만큼을 보증금으로 내고 그 이자를 공제한 나머지를 임차료로 지불하는 것과 같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토지보상의 딜레마가 생기지 않는다. 공동체에서 땅을 회수하면 토지소유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면 되고, 토지소유자가 돈보다 땅을 원한다면 다른 토지의 취득을 희망대로 주선해 주면 된다.
이처럼 토지보상의 딜레마는 진정한 사유제산제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로 인해 생김을 알 수 있다. 원론에서 벗어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다.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불의한 토지사유제가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불의한 토지사유제는 토지투기를 일으켜 국민을 끊임없이 괴롭힐 뿐 아니라, 토지보상 문제까지 꼬이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 김윤상 기자는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이며,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추구하는 <토지정의시민연대>의 지도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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