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에 놀라고, 즉석사진에 바가지 왕창 쓰고

[4박5일 중국여행기 ⑤] 장가계의 비경과 원주민의 삶

등록 2007.07.09 17:36수정 2007.07.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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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계절경에서 만난 사랑과 사업의 자물쇠들 ⓒ 이승철


"관광객들이 장가계에 오면 그냥 와! 와! 와! 하다가 돌아간다고 합니다. 경치에 놀라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우와! 우와! 우와! 한다는 말입니다."

보봉호를 둘러보고 다음에 찾은 곳은 천자산이었다. 천자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가 하는 말이었다.

천자산 입구 주차장에는 벌써 많은 차량들이 주차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였다. 관광객들은 중국인들과 동남아인들이 조금 보였지만 역시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며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우와! 우와! 를 연발한다는 가이드의 말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마치 봄철의 죽순처럼 뾰족뾰족하게 솟아 있는 바위봉우리들이 어쩌면 그렇게 많은지 이건 아예 바위봉우리의 정글이었다.

"저기 좀 봐요? 저 봉우리, 어쩜 저렇게 생길 수가 있지?"

케이블카를 같이 타고 오르는 일행들의 입에서도 감탄사가 그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케이블카의 노선길이만도 2084m나 되어 오르면서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경치를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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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산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풍경 ⓒ 이승철

드디어 천자산에 올랐다. 해발 1250m로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다. 천자산이란 한나라를 세운 유방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난 향왕 천자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의 본거지가 이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한나라 군대에 패한 후 이곳 벼랑에서 떨어져 생을 마쳤다고 한다.

"저쪽을 보십시오. 저 봉우리가 바로 어필봉입니다."

장가계의 백미는 단연 어필봉이다. 이 봉우리는 세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있으며 높이가 서로 다르면서도 보기 좋게 잘 어울리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특이한 모습은 흙이 없는 바위봉우리 위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서 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그래서 이곳 사라들은 어필봉을 장가계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봉우리라고 자랑을 한다는 것이었다.

"저쪽으로 가셔서 버스를 타십시오, 저쪽 식당에서 점심을 드시고 원가계로 가겠습니다."

정상에서 잠깐 걸어 내려오니 주차장에 우리들이 타고 왔던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천자산의 정상까지 도로가 뚫려 있었던 것이다.

버스를 타고 잠깐 달리자 이번에는 정말 널따란 주차장이 나타났다. 관광객들도 많았다. 절벽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 몇이 두리번 두리번 관광객들을 찾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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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계 등산로 옆의 교포가 운영하는 가게 ⓒ 이승철


그들은 어느새 찍었는지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 만든 조잡한 열쇠고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녀석들은 그 열쇠고리에 들어 있는 얼굴의 당사자를 찾아 그것을 눈앞에 내밀었다. 관광객들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천원!" "천원!" 하며 자신의 작은 얼굴사진이 들어있는 열쇠고리를 내미는 아이들을 뿌리치지 못했다.

나도 한 개를 샀다. 그리고 동행한 일행의 사진을 찍고 돌아섰을 때였다. 한 녀석이 일행 앞으로 다가왔다. 예의 "천원!"이라고 외치면서, 그리고 손짓으로 바로 옆에 있는 컴퓨터를 가리킨다. 컴퓨터 화면에는 일행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 열쇠고리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녀석은 다시 컴퓨터의 배경화면을 가리켰다. 이날은 부연 안개 때문에 경치가 흐렸는데 컴퓨터 화면의 배경은 정말 선명한 풍경이었다. 녀석은 일행의 얼굴을 그 배경화면에 겹쳐 넣으며 역시 뭐라고 떠들어 대는 것이었다. 그 배경화면에 얼굴을 넣어 사진을 빼준다는 말 같았다.

일행은 다시 "천원!"이냐고 물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녀석은 잽싸게 프린트기를 통해 사진을 인화하는 것이 아닌가. 녀석들의 컴퓨터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진의 크기가 A4용지 크기다, 이건 약속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얼마냐고 물으니 4만원이란다. 이건 완전히 바가지였다.

사지 않겠다고 돌아서자 옷자락을 붙잡으며 매달린다. 그러나 사진 한 장에 4만원이면 이건 너무나 바가지가 심하지 않은가. 입장이 난감해졌다. 그러나 상대는 꾀죄죄한 소년이다. 일행이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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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반이 꺼져내린 협곡 풍경 ⓒ 이승철


바가지가 너무 심했지만 일행의 성격상 그냥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는 본래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이나 관광지에서도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가이드가 주지 말라고 말려도 몰래 슬쩍 얼마큼 집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4만원은 너무 심했다. 5천원이라면 모르지만 4만원은 액수가 너무 컸다. 그런데 아이는 아예 떼를 쓰듯 막무가내다. 그러나 일행뿐만 아니라 곁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도 이런 아이들과의 약삭빠른 흥정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일행은 2만원을 주겠다고 흥정을 했다. 그러자 녀석이 오케이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허, 그 녀석 참, 오늘 녀석에게 바가지 한 번 톡톡히 썼군!"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직 어려보이는 소년에게 2만원을 바가지 쓰고 허허 웃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만원이었다.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잠깐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산의 정상에 있는 유일한 음식점이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손님을 독점하고 있어서 그런지 메뉴도 음식 맛도 별로였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에 다가가보니 식당의 주인이 우리 교포다. 역시 조선족이었던 것이다. 손님은 거의 대부분 한국인 관광객들이라고 한다. 관광객들의 매너가 어떠냐고 물으니 모두 좋은 사람들이란다.

그런데 장가계 지역을 관광하는 동안 곳곳에서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원가계 산길에서 만난 어느 가게는 아예 '교포집'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은 곳도 있었다. 이 지역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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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의 기묘한 봉우리들 ⓒ 이승철

점심을 먹은 후 우리 일행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이번에는 원가계 지역이었다. 원가계를 돌며 바라보는 경치도 장관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보이는 경치들이 우리들이 산길에서 바라보는 눈높이보다 아주 높은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마주보이거나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치들이다. 이런 경치는 이 지역의 지형 형성과정이 우리나라나 다른 지역의 산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산들은 화산활동을 할 때나 지각변동에 의해 위로 솟아올라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솟아올라 생긴 것이 아니라 꺼져 내려가 생긴 산이요 협곡이다. 수 억만 년 동안의 풍화작용과 침하에 의한 자연적인 영향으로 오늘의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 아름다운 계곡의 자연절경이 이루어진 것이다.

협곡을 살펴보면 침식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협곡 위 봉우리들 높이가 일정하고 정상은 평평해 보인다. 3억 8천만 년에 걸친 풍화와 침식작용이 장가계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단단하지 않은 흙더미는 비바람에 쓸려나가거나 가라앉고, 단단한 바위 덩어리만 남아 봉우리가 되었다. 신의 손길로 억겁의 세월이 빚은 걸작품인 것이다.

산길에서 아주 특이한 협곡과 역시 뾰족하게 솟아있는 날카로운 봉우리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걷다가 놀라운 모습을 발견했다. 한 곳에 이르니 전망대 난간에 수많은 자물쇠들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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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편계곡 입구 주차장 옆의 한글 간판들 ⓒ 이승철


자물쇠의 용도는 대개 방범용으로 방문이나 창고문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별 뚱딴지처럼 산꼭대기 절벽 위의 난간에 걸려 있다니, 이건 정말 인간들이 만들어낸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이런 산꼭대기에 웬 자물쇠들이 저렇게 많이 걸려 있지?"

관광객들이 하나같이 느끼는 의문점이었다. 그런데 자물쇠들은 전망 좋은 협곡 위의 전망대 주변에 수백 수천 개나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연애하는 사람들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사랑이 자물쇠처럼 꼭 잠겨서 변하지 말고, 사업도 재물이 단단히 잠겨서 빠져나가지 않고 번성하라는 의미로 걸어놓은 것들입니다."

중국인들 특유의 기복사상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전망대 아래는 천길 벼랑이었다. 그 깊고 아슬아슬한 협곡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말 대단한 풍경이었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보다 훨씬 더 대단한 풍경이야!"

몇 달 전에 미국관광을 하고 왔다는 한국인 관광객이 감탄하며 하는 말이었다. 호남성 서북부에 자리 잡은 장가계는 1992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무릉원 관광구에 속해있다.

주요 관광지 면적은 390만㎢로 장가계 국가 삼림공원, 삭계협곡자연보호구, 천자산 자연보호구, 장가계와 원가계 풍치구 등으로 이루어졌다. 장가계는 중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수려한 봉우리와 용암동굴 외에, 인적이 드문 자연지리 조건으로 원시상태에 가까운 아열대 경치와 생물 생태환경을 가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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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화랑 입구 모노레일 열차 타는 곳 풍경 ⓒ 이승철

"아니 내려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더니 왜 버스를 타지?"

천자산에 오를 때 가이드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원가계를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우리 일행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을 내려갔다.

이 정도면 거의 다 내려왔겠구나 싶은 장소에서 버스가 섰다. 그런데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한다. 평평해 보이는 원가계가 그만큼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상당히 고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깎아지른 기암절벽에 동굴을 뚫어 만든 엘리베이터는 건설 당시 자연보호 문제가 제기됐었다고 한다. 높이는 326m로 절반 정도는 동굴 속에 가려 있고 나머지 절반은 유리창 너머로 협곡과 기암괴석의 장관이 바라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금방 내려간 곳은 금편계곡 입구였다. 계곡을 둘러보려면 2시간이 걸린다고 했으나 시간이 없어 계곡 입구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주차장 근처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2천원어치 과일을 샀는데 일행들 6명이 포식을 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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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화랑 골짜기 속의 세 자매봉 ⓒ 이승철


"아니, 이곳이 중국이야? 한국이야? 정말 헷갈리네. 저 간판들 좀 봐?"

일행 한 사람이 놀랍다는 듯 혀를 찬다. 정말 이곳 주차장 근처의 가게들도 한글간판 일색이었다. '짱구네 스넥' '한씨 스넥' '외할머니 집', 찰떡구이, 순대, 떡볶이, 막걸리, 커피, 꿀차, 각종 부침, 해물파전 등 없는 것이 없다. 하긴 장가계 지역의 관광객 중 한국인들이 거의 90%나 된다니 충분히 납득이 가는 풍경이었다.

금편계곡 입구에서 잠시 쉬고 난 다음에는 다시 십리화랑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가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십리화랑은 자연협곡으로서 협곡양쪽으로 우거진 수풀이 무성했다. 개울 옆으로 이어진 모노레일열차를 타고 오가는 경치는 가히 전하절경이라 할만 했다.

주변에는 기묘한 봉우리와 바위들이 각양각색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마치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를 방불케 한다. 골짜기 깊숙이 들어간 모노레일의 종점 앞에는 거대한 바위봉우리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바로 세 자매 봉우리였다.

종점에서 내린 일행들이 세 자매 봉우리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려 하자 원주민 미인들이 나선다. 자신들과 함께 찍자는 것이었다. 모델료는 1인당 1회에 1천 원씩이었다. 일행 중 몇 사람이 같이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하자 그녀들은 일행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덤벼드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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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레일 종점의 원주민 사진모델들과 한국인 관광객들 ⓒ 이승철

"거 미인들이구먼. 같이 찍고 천 원씩 주지 뭘 그러나."

다른 일행이 농담을 던진다. 토가족의 전통의상을 입은 그녀들은 하나같이 미인들이었다. 그녀들은 다른 일행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일행들이 사진을 찍는 곳으로 다가가 아예 팔짱까지 끼는 것이었다.

일행들은 할 수 없이 그녀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우리 돈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씩을 쥐어 주자 몹시 좋아한다. 그렇게 그녀들은 순식간에 1인당 1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다시 모노레일열차를 타고 십리화랑을 빠져 나오는 뒤에서는 원주민 사진모델 여성들이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벌이에 여념이 없었다.

열쇠고리 사진을 파는 소년들이나 사진모델을 하는 이들 여성들은 모두 이 지역의 소수민족이다. 장가계지역의 원주민으로서 스스로 천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이들 소수민족들의 삶은 여전히 가난하고 고달픈 모습이었다.

"(人生不到張家界, 白歲豈能稱老翁)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었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국의 속담이라고 한다. 장가계의 관광 안내 책자에는 장가계의 특징을 8자의 한자로 요약해 놓고 있었다. '넓고(野), 높으며(峻), 험(險)하고, 기이(奇)하고, 수려(秀)하며, 아름답고(巧), 묘(妙)한 것이 전혀 다른 세상(幽)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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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부연 안개 속의 장가계 절경 ⓒ 이승철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이름난 장가계 지역의 관광지들은 한국인들이 이런저런 용도로 뿌리는 돈이 지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한반도의 작은 나라 사람들이 대륙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장가계의 허술한 호텔에서 이틀째 밤을 묵은 일행들은 다음날엔 아침부터 용왕굴과 천문산 관광으로 강행군을 계속했다.

덧붙이는 글 | 6월초에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6월초에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자산 #원가계 #장가계 #십리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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