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 보고서 유출 '연결고리' 역할
방석현 교수는 '세풍' 기획자였다

[정치 톺아보기 157] '대선 대목'에 줄대는 교수들

등록 2007.07.10 17:30수정 2007.07.1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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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명박 전 시장을 지지하는 'MB연대' 회원들이 10일 오후 서울대에서 방석현 교수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을 지지하는 'MB연대' 회원들이 10일 오후 서울대에서 방석현 교수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MB연대 제공


a 경부운하 보고서 유출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과의 김정섭 과장이 24일 도경 기자실에서 수자원공사 간부의 보고서 유출 경위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경부운하 보고서 유출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과의 김정섭 과장이 24일 도경 기자실에서 수자원공사 간부의 보고서 유출 경위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정은

경부운하 보고서 유출 사건에서 박근혜 캠프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방석현(62)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전형적인 '폴리페서(polifessor)'의 무리에 속할 듯 싶다.

'폴리페서'란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를 합성해 만든 조어로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연결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정·관계 고위직을 얻으려는 대학교수들을 지칭한다.

경부운하 보고서 유출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지방경찰청의 9일 발표에 따르면, 문제의 보고서는 수자원공사 기술본부장→결혼정보업체 대표→박근혜 한나라당 예비후보 자문교수 순으로 전달됐으며, 이 자문교수는 박 후보 캠프의 유승민 의원에게 보고서 존재를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결혼정보업체 대표 김현중(40)씨가 지난 5월 25일 수자원공사 김상우(55) 기술본부장에게 입수한 보고서 복사본을 이튿날 자신이 다니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방석현 교수에게 넘겼고, 방 교수는 유승민 의원에게 보고서 존재를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경부운하 관련 '고급정보'와 '자리' 맞바꿔

이와 관련 방 교수는 "박 전 캠프에 이전부터 정책 자문을 해왔고 보고서 복사본이 있어 유승민 의원에게 존재를 알려줬을 뿐"이라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 교수는 보고서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6월 4일)된 지 열흘 뒤(6월 14일)에 박근혜 후보 정책자문위원회 행정개혁특별위원장으로 인선됐다. 그러니 '정보'와 '자리'를 맞바꾼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만 하다.


이쯤 되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연결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정·관계 고위직을 얻으려는 '폴리페서'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이를 합리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는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장차 국가정책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 활동이라기보다는 자리를 매개로 한 정보 활동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사생결단의 경쟁을 벌이는 이명박 캠프에서도 이같은 점을 들어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명박 후보 캠프의 진수희 대변인은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방 교수가 이끈 '마포팀'이 이명박 전 시장이 주창한 '경부대운하론'의 비현실성을 밝히는 연구에 주력해왔다"고 폭로하면서 이런 방 교수를 비선 정책라인으로 둔 박근혜 후보를 직접 겨냥했다.


"오랫동안 박근혜 후보의 숨겨진 싱크탱크로서 오른팔 역할을 했던 방석현 교수가 보고서 유출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점에 비추어 박 후보가 이를 몰랐을 리 없으며, 또 (행정대학원 제자인) 김현중 대표가 방 교수의 지시 없이 언론유출에 적극적이었을 리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박근혜 캠프에서의 방 교수 역할과 그가 유승민 의원에게 문건의 존재 사실을 알려준 점, 그리고 그의 '제자'인 결혼정보업체 대표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보고서를 유출한 점에 비추어 이명박 캠프에서 그런 의혹을 갖는 것은 합리적이고 당연한 추론의 결과다.

방석현 교수는 97년 '부국팀'의 핵심멤버

a 대선후보 경선 공식출마를 선언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지지자로부터 줄푸세 풍선과 꽃다발을 건네받고 있다.

대선후보 경선 공식출마를 선언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지지자로부터 줄푸세 풍선과 꽃다발을 건네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이명박 캠프에서는 '박근혜 후보 캠프의 방석현 교수는 누구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의 전력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빼놓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97년 대선을 앞두고 국세청을 동원해 정치자금을 모금한 이른바 '세풍'을 기획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사조직 '부국팀'의 핵심멤버(팀장)였다는 사실이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세풍' 사건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초창기 부국팀 멤버는 이회창 후보의 동생 이회성씨의 경기고(60회) 동기동창인 방석현 교수를 팀장 격으로 해서 당시 이흥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유경현 전 의원, 진경탁·안동일·진영 변호사, 고흥길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황영하 전 총무처장관 등인데 대부분 경기고 출신들이었다.

이회성씨가 경기고 1년 후배인 이석희 당시 국세청 차장을 경기고 동기동창인 방석현 교수에게 소개한 것은 97년 4~5월경이다. 방석현 교수는 97년 4월부터 12월까지 여의도 부국빌딩 11층에 사무실을 둔 이회창 후보의 비선조직인 '부국팀'의 팀장으로서 핵심 역할을 했다.

방석현 교수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부국팀은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각종 정치권 동향보고 및 여론 주도방안, 대선전략 등을 집중적으로 보고했다.

예를 들어 97년 7월 이회창 총재가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로 당선되고 나서 이 총재의 인기도가 상당히 높았으나 그해 8월경부터 이 총재의 아들인 이정연 등의 병역문제가 터져 이 총재의 지지도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부국팀은 9월경 이회창 총재에게 이정연 등을 소록도로 보내야 한다고 건의하는 보고서를 올렸다.

또 이 무렵에 경선에 불복한 이인제 후보를 어떻게 하든 끌어안아야 한다는 건의와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권유하는 보고서도 제출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부국팀은 97년 9월경 이정연 병역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져 대선자금이 잘 걷히지 않자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취지의 특단의 보고서를 작성해 이회창 총재에게 보고하게 된다. 이른바 '세풍 보고서'의 기획이다.

"국세청·안기부 동원해 대선자금 거둬야"

검찰이 압류한 이 보고서에는, 이회창 후보가 97년 9월 27일 대통령(YS)을 독대할 때 당의 자금사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국세청과 안기부로 하여금 신한국당에 협조토록 하여달라는 말씀을 꼭 드려야 한다고 돼 있다.

주로 기획업무에 치중한 초기 부국팀은 형제 중에서 이회창 후보를 많이 닮아 이 후보의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는 이회성씨에게 이 후보를 대신해서 '얼굴마담' 역할을 수행할 것을 주문했다.

a 지난 2002년 11월 2일 부친 장례식에 참석 중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그의 동생 이회성씨. 세풍을 기획한 이 후보 비선조직 '부국팀'은 이 후보와 가장 이미지가 닮은 이회성씨를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

지난 2002년 11월 2일 부친 장례식에 참석 중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그의 동생 이회성씨. 세풍을 기획한 이 후보 비선조직 '부국팀'은 이 후보와 가장 이미지가 닮은 이회성씨를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방석현 교수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이회성씨에게 주어진 '얼굴마담'의 역할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도움을 주었다는 표시를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후보가 일일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대신 만나 '눈도장'을 찍을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로 몸과 머리로 뛰는 지지자들을 만나 격려하는 일과 대선자금을 지원하는 기업인들을 만나 돈을 거두는 일이었다.

세금을 미끼로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강제모금한 이 '국기 문란' 사건의 여파로 이회성씨와 서상목 전 의원 그리고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등 경기고 동문 '세풍 3인방'을 포함해 8명이 사법처리되었다.

그러나 방 교수를 비롯한 부국팀 멤버들은 이른바 '세풍 보고서'를 기획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자금을 직접 거두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사법처리는 피해갔다. 그 때문인지 방 교수는 10년만에 다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다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이명박 캠프가 '부국팀'의 핵심멤버였던 방석현 교수를 박근혜 후보의 비선 정책라인이라며 비난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업보를 드러내는 것이자 '제 얼굴에 침 뱉기'이다.

'세풍 보고서' 기획자인 방 교수가 사법처리 안 된 까닭

'대선(大選)'은 대통령 선거의 줄임말이자 '큰 선거'를 의미한다. 대선은 5년만에 서는 '큰 정치시장'이다. '대목'이다. 지분만큼 권력을 분점하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 하에서는 승자가 독식하는 권력구조다.

그래서일까. 이 땅의 파워 엘리트들은 5년만에 돌아오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대선판에 '올인(다 걸기)'하면서 너도 나도 줄서기를 하고 있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정경유착이 줄어든 지금, 줄서기의 앞줄을 교수와 언론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a 이회창 후보의 사조직인 '부국팀'은 97년부터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해왔다.

이회창 후보의 사조직인 '부국팀'은 97년부터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해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선 캠프에 참여한 교수는 무려 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규모가 그보다는 못하지만, 언론인들 또한 폴리페서에 빗대어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를 합성한 '폴리널리스트'란 그럴 듯한 조어를 가지고 속속들이 대선 캠프로 향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지식인의 현실 참여'와 '직업 선택의 자유'다. 공동체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향해서건 혹은 개인을 위한 '더 나은 인생'을 향해서건, 이들이 자신을 투신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정치적 도박일지라도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의 세금으로 보수를 받는 공무원 신분인 국·공립대 교수들의 특정 대선 주자 '줄대기' 관행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들은 사실 '폴리페서'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었을 뿐,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70년대의 '어용교수'와 다를 바 없다.

2000년대의 '폴리페서', 70년대 '어용교수'

그런 점에서 필자는 정치권이 부르는 대로 혹은 의도하는 대로 '받아쓰기'를 하다가, 현직에서 정치인의 품안으로 달려가는 이들에게는 '폴리널리스트'라는 복잡하고 그럴 듯한 이름보다는 '폴리포터(poliporter)'라는 단순한 조어가 더 합당한 듯싶다.

과거처럼 일말의 이직이나 일시의 휴지기도 없이 정치권이 부르면 현직에서 쪼르르 달려가는 이들은 애초부터 '저널리스트'라기보다는 '단순 전달자(reporter)'거나 '운반자(porter)'였기 때문이다.
#방석현 #폴리페서 #폴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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