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와 진짜 사이

극단 파크의 <진짜, 하운드 경위>를 보고

등록 2007.07.11 10:23수정 2007.07.2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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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파크

세상은 이분법으로 구분되거나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그런 세상이라도 가끔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흰색은 흰색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렇지만 '과연 흰색이 진짜 흰색일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가짜와 진짜를 찾아내는 유쾌한 게임 <진짜, 하운드 경위>(연출 박광정)가 진짜 하운드 경위를 찾아내기 위해 정보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오스카 작품상을 거머쥔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작가로 잘 알려진 톰 스토파드 원작을 극단 파크(대표 박광정)가 국내 무대에 처음 소개한다. 극의 초반은 번역극에서 오는 문제점, 특히 번역투라고 일컫는 일상에서 쓰지 않는 말들을 극복하기 위해 신파적인 어투를 사용한다.

그리고 연극평론가 2명이 등장해 객석의 반대편에 앉아서 공연, 백만식, 사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은 공연을 보면서 연극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대위 유리창 너머로 연극평론가들이 앉아있는 또 다른 무대가 존재한다.

무대 위에서는 진짜 하운드 경위를 찾아내기 위한 연극이 진행된다. 테이블 밑에 시체가 놓여있고, 라디오방송에서는 정신이상자를 찾는 소식이 계속 흘러나온다. 누구나 쉽게 찾아오지 못하는 저택에 오랜만에 카드게임을 할 수 있는 인원 멀둔 부인, 매그너스, 펠리시티, 사이먼이 만나게 된다.

사이먼은 멀둔 부인을 사랑하고, 펠리시티는 사이먼을 좋아하지만 그가 멀둔 부인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는 매그너스는 멀둔 부인을 사모한다. 그렇게 사랑관계에 약간씩 얽혀 있는 네 사람은 카드게임을 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매그너스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저택에 사이먼이 왔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그를 정신이상자라고 몰아간다. 아무도 없는 무대, 홀로 서있던 사이먼은 갑작스럽게 총에 맞아 죽는다.

그러는 사이 자신을 하운드 경위라고 소개하는 인물이 도착한다. 그리고 그는 죽은 사이먼과 테이블 밑에 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하운드 경위는 멀둔 부인에게 죽은 남편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지만 시체는 멀둔 부인의 남편이 아닌 평론가들이 찾았던 백만식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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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주 역(최선영)과 방경호 역(유연수) ⓒ 극단 파크

시체의 신분이 백만식 선생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객석에 앉아있던 평론가들이 무대 안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한 번, 똑같은 공연이 평론가들에 의해 다른 버전으로 올려진다. 배우 키워주기로 정평이 나있던 방경호(유연수) 평론가는 사이먼 역으로 하운드 경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백만식의 대타평론가 문명주(최선영)가 하운드 경위인 줄 알았지만 그녀 역시 하운드 경위에 의해 죽는다. 그렇게 현실과 연극이 묘하게 맞물려지면서 복잡해진다.

연극평론가들의 이야기와 무대 위에서 공연화되는 이야기가 분명 엮어 들어가기는 한다. 평론가들의 일상과 그들의 모습을 꼬집으면서 평론가 자체에 대해 비판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공연에 등장하는 연극평론가들은 관극 태도가 적극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불순하다. 그들은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 하나씩 감추고 있던 자신들의 욕망에 대해 말하기 바쁘다. 방경호 평론가는 여자배우들을 희롱하면서 성적욕망을 채우려 하고, 문명주 평론가는 대타 인생 2인자가 아닌 문명주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그들의 억눌린 욕망은 죽은 시체가 백만식 선생으로 밝혀지던 그 시점에서 급격하게 흘러간다. 결국, 하운드 경위는 가면을 벗는다. 그렇지만 관객은 긴장감이 빠진 채 하운드 경위를 발견할 뿐이다. 하운드 경위를 찾아내기 위해 만들어져야 할 긴장감은 공연이 주는 지루함에 의해 따라가기가 버겁게 느껴졌고, 공연의 중반부까지 신파극 느낌이 나는 과장된 어조를 듣고 있어야 해서 더욱 그렇다.

그들조차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게임에서 하운드 경위라고 하는 진짜에 집중하느라 가짜를 만들어 내야 하는 치밀한 부분에 대해선 신경을 못 쓴 것이거나 그런 모든 것들조차 의도된 것이었다고 본다. 어쩌면 가짜와 진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조차 불분명했던 것은 아닐까.
#연극 #진짜, 하운드 경위 #평론가 #극단 파크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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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사람. 프로젝트 하루5문장쓰기 5,6기 진행자. 공동육아어린이집 2년차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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