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면 '여자 뇌'에서 '엄마 뇌'로

나이별로 변신하는 '여성의 뇌'

등록 2007.07.11 11:14수정 2007.07.1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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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자들이 우울증에 취약성을 보이는 것은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등의 호르몬 영향으로 인한 뇌 회로의 변화 때문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림 출처: 루안 브리젠딘 <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리더스북)

여자들이 우울증에 취약성을 보이는 것은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로겐 등의 호르몬 영향으로 인한 뇌 회로의 변화 때문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림 출처: 루안 브리젠딘 <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리더스북) ⓒ 우먼타임스

[채혜원 기자] "남자들은 다 어디 가고 우울증에 걸린 여자들만 정신병동에 있는 거죠?"

미국 버몬트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로 재직 중인 모나리자 슐츠 박사는 의대 입학 후 처음으로 정신과 병동에 들어섰을 때 환자 대부분이 여성들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는 곧 여자들은 속으로 화를 품어서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병동에 오고, 남자들은 화를 표출해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감옥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성 심리와 호르몬 클리닉을 설립한 루안 브리젠딘 박사 역시 정신과 레지던트로 일할 당시 여자의 우울증 발병률이 남자에 비해 두 배나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월경전증후군, 산후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등 여성은 전체 생애주기 곳곳에서 우울, 신경과민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동안 의학은 여성들의 기분 변화를 '제2양극성장애'로 분류하여 병리 문제로 취급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여성의 뇌 상태를 관찰함으로써 호르몬과 신경계의 화학작용이 여성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의 질병과 심리를 뇌 호르몬으로 분석하는 연구 결과들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건강 분야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가브리엘 리는 지난 6년간 호르몬에 대한 연구를 지속한 결과, 생리와 관계된 호르몬이 여성의 모든 것, 즉 기분, 학습능력, 이상형, 성욕과 식욕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여성 연구자들의 연구 자료를 살펴보면 '뇌'의 변화는 여자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변화는 사춘기를 겪는 10대 소녀에서 연애와 일에 빠지는 20대의 젊은 여자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에서 완경 이후의 중년 여성으로 이어지는 모든 시기에 걸쳐 일어난다. 중요한 사실은 각종 여성 질병이 호르몬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점이다.

월경주기 4주째, 즉 월경 직전의 여성들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분비가 감퇴된다. 뇌에서 항우울제 효과를 발휘하는 에스트로겐과 엉뚱한 기분 변화를 막아주는 프로게스테론의 수치가 변하면 기분을 안정시켜주는 전두엽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뇌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월경전증후군을 처음 겪는 10대를 지나 20대의 성숙한 여성이 되어 엄마가 될 때쯤, 여성들은 또 한 번 큰 호르몬 변화를 겪는다. '여자 뇌'에서 '엄마 뇌'로 변하는 여성의 뇌는 호르몬 분비를 최대화해 모든 관심을 자궁으로 집중한다. 산후에는 임신 기간 동안 억제돼 있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면서 신경과민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는 산모 중 10%가 겪는 산후우울증을 유발한다.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비밀은 '호르몬'

시간이 흘러 완경기로 다가갈 때쯤 여성들은 또 한 번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바로 에스트로겐 부족 현상. 관계와 보살핌의 호르몬인 옥시코신의 수치가 떨어지면서 육아와 배려하는 마음이 감퇴한다. 하지만 완경 이후의 여자들이 성적 욕구나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완경 이후의 열정'이란 단어를 만들어냈듯이, 그때서야 여성들은 급격한 호르몬 변화에서 자유로워진다. 불안 속에서 매달 치러야 했던 월경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 여성들만이 겪는 다이내믹한 뇌의 여정. 여성들은 월경, 섹스, 출산, 커리어 등 인생 전반에 걸쳐 수많은 문제들에 부딪히지만 '뇌'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주기적 흐름을 형성하는 성호르몬의 변화를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면 자신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 남자들에게는 없고, 여자에게만 있는 특별한 열쇠. 남자들이 여자의 뇌를 질투할 이유, 바로 여기에 있다.

"대체 여자들은 하나같이 왜 그래?" "그러는 남자들은. 도통 대화가 돼야 말이지!"

남녀가 다른 것은 단순히 화성과 금성, 다른 별에서 왔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남녀의 뇌가 애초부터 다르게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유전자의 99% 이상이 같고 뇌세포 수도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1%에 모든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여자의 뇌는 남자의 뇌와 다르게 주기가 있고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

남녀의 뇌 차이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수정 후 8주간 모든 태아의 뇌는 여아의 뇌처럼 보인다. 8주가 지나면서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 태아의 뇌는 확실히 남자의 뇌가 된다.

테스토스테론은 커뮤니케이션 중추에 있는 세포들을 죽이고 섹스와 공격 중추에 있는 세포들을 성장시킨다. 그렇다고 남자는 공격성이 강하고 여자는 정서적 관계를 중시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선 안 된다. 10대 소녀들에게 분비되는 안드로스테네디온이라는 남성호르몬은 공격적 충동이 강하게 만들어 10대들의 '이유 있는 반항'의 원인이 된다.

남자에 비해 여자가 수다와 대화로 관계를 맺는 것은 그 행위가 여성 뇌의 쾌락 중추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는 10대 소녀의 뇌는 더 많은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분비한다. 성취욕과 쾌락을 자극하는 도파민과 친밀성을 자극하는 옥시토신이 언어를 통한 친밀감으로 쾌락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사랑 빠질 땐 남성 '시각' 여성 '직감·주의력' 증가

사랑에 빠졌을 때 남녀의 차이는 더 명확해진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뇌에서는 본능적인 직감, 주의력, 기억력 회로가 활발해지지만 남자 뇌에서는 시각적 처리에 관련된 회로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는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쉽게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포옹과 스킨십을 통해 더 쉽게 사랑에 빠진다. 옥시토신이 방출돼 쉽게 상대방 남자를 신뢰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옥시토신을 포유류의 뇌에 주입하면 사랑 없이도 짝짓기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애정 행위를 할 때 조절되는 신경호르몬도 차이를 보인다. 남자 뇌는 바소프레신을 다량 방출하는 반면 여자 뇌는 주로 옥시토신을 많이 분비한다.

일상 속에서 남녀가 사소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뇌 호르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육감을 발달시키고 고통스런 감정을 느끼고 추적할 수 있는 세포를 발달시킨다. 여기서 육감은 막연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뇌의 특정 부위에 의미를 전달하는 실제 감각이다. 여성은 육감적으로 무엇을 느끼기 시작할 때 육감이 처음으로 처리되는 뇌의 오래된 부위인 랑게스한스섬에 메시지를 되돌려 보낸다. 동시에 감정을 예견하고 판단, 통제하는 전두대상피질에도 메시지를 보낸다. 이곳은 여자가 남자보다 크며 더 활성화되어 있는 영역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사소한 것을 잘 기억하는 것은 정서와 기억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뇌 속 해마상융기(hippocampus)가 더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사고나 위협 혹은 낭만적인 풍경 등에 뇌하수체가 강하게 반응할수록 해마상융기는 그 경험을 상세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애인 때문에 언제, 왜 기분이 상했는지, 그때 날씨와 식당에서 나는 냄새는 어땠는지 등을 스냅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남녀 뇌의 차이점은 지난 1994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캘리포니아대학(UCSF)에서 '여자의 심리와 호르몬을 위한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루안 브리젠딘이 자신의 저서 <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리더스북)을 통해 밝힌 것이다. 그는 "최근 미국에선 성인지 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떠오르면서 남녀의 미세한 차이까지 고려한 치료가 이뤄질 예정"이라며 "남녀가 각기 다른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인정하면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그것이 빚어낸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자의 뇌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호르몬

▲옥시토신: 친밀성과 접촉에 의해 자극되는 호르몬. 유대감과 신뢰감을 높여주고 다량 분비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성행위 중 여자 뇌에서는 옥시토신이 다량 방출된다.

▲바소프레신: 성행위 중 남자 뇌에서 다량 방출되는 호르몬. 이 물질은 사랑에 빠진 남자들로 하여금 연인에게 레이저광선과 같은 집중력을 보이게 하고 마음의 눈으로 상대를 적극 추적하도록 만든다.

▲도파민: 성취욕과 쾌락의 뇌 회로를 자극한다. 특히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는 청소년기에 소녀의 뇌는 더 많은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분비한다. 도파민은 옥시토신과 결합해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세로토닌: 행복과 안녕을 지원해주는 물질. 여자 뇌는 관계가 위협받거나 상실되면 유대를 강화하는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의 수치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다.
#여성 #우먼 #뇌 #여성의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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