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악법에 저항하다

자기희생적 정의지향형 사람들

등록 2007.07.12 19:53수정 2007.07.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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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법다운 법이기 위해서는 법적 효력을 가져야 한다. 즉 '법의타당성'과 '법의실효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악법(惡法)이란 '타당성'은 없으면서 '실효성'만 있는 법을 말한다. 반면에 '타당성'만 있고 '실효성'이 없는 법은 사법(死法)이다.

법 준수의무를 강조하기 위하여 흔히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말 가운데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옥중에 있을 때, 그의 친구 크리톤이 찾아와 탈옥을 권유하자,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게 그런 말을 한 후,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과거 군사독재시절에 법 준수의무라는 미명 하에 국민들로 하여금 악법에 적응토록 하기 위해서 크리톤과의 대화를 그럴 듯하게 왜곡하여 교시했던 것에 불과하다.

악법에 대한 태도는 악법의 내용적 구성체계를, 타당성이 결여된 본질적 측면과 그 법의 실효성 측면으로 구분해서 보지 않고, 그냥 하나로 뭉뚱그려 놓은 채, 악법에 적응적이냐 저항적이냐 라는 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악법에 대한 태도는 우선 '법의타당성'이 결여된 측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법의실효성' 측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느냐로 구분한 후, 다시 이 두 가지의 대응방식을 서로 교차시켜 조합한 유형론에 의거해서 보아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유형화하면, 악법에 대한 태도는 ① 타당성이 결여된 측면에 저항함과 동시에 그 실효성 측면에도 저항하는 태도(체제도전적 정의지향형), ② 타당성이 결여된 측면에는 저항하고, 그 실효성 측면에는 적응하는 태도(자기희생적 정의지향형), ③ 타당성이 결여된 측면에 적응함과 동시에 그 실효성 측면에도 적응하는 태도(체제일원적 정의방관형), ④ 타당성이 결여된 측면에는 적응하고, 그 실효성 측면에는 저항하는 태도(자기중심적 정의방관형) 등 네 가지로 분류된다.

언필칭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에서 인정하는 신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섬겼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탈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물리치고 기꺼이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의 악법에 대한 태도는 어느 유형에 속할까? 세간에서 회자되고 있듯이, 타당성이 결여된 측면에 적응함과 동시에 그 실효성 측면에도 적응했던 '체제일원적 정의방관형'일까?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편, '크리톤'편 등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악법에 대한 태도는 타당성이 결여된 측면에는 단연히 저항하였고, 그 실효성 측면 즉 형벌에는 스스로 적응했던 '자기희생적 정의지향형'이다.


그가 법의 타당성이 결여된 측면에는 단연히 저항했다는 것은 재판과정에서 철학의 탐구를 중단하고 체제에 적응한다면 석방해 주겠다는 회유를 일거에 거절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가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근본적인 이유도 사실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에서 인정하는 신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철학과 진리의 탐구를 금지하고, 정의로운 삶을 금지했던 당시의 법체계에 저항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법의 실효성 측면에 스스로 적응했다는 것은 감옥에서 친구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정중히 거절하고 오히려 탈옥의 부당성을 납득시켰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는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은 철학적 소명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진리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사회에서도 민주화와 정의와 진실의 실현과정은, 지금까지 악법에 대해 '자기희생적 정의지향형'의 태도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되어왔고, 또 현재도 그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릉 영동매거진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강릉 영동매거진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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