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신정아는 과연 가짜였을까

정상급 실력으로 인정받아... 대학은 학위에 개방적이어야

등록 2007.07.13 09:39수정 2007.07.1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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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동국대 교수. ⓒ 연합뉴스 형민우

"한 학기에 수백만 원의 등록금을 내면서도 '가짜 박사'에게 배우고 있을 학생들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한국일보>의 칼럼 중 마지막 대목이다. 대충 무슨 사안을 다루었는지 알 수 있다. 등골이 오싹하다. 또 하나의 학력 아니 학벌주의가 배어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난데없이 무슨 말일까.

우선, 신정아씨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설픈 임용 과정은 '아직도 저런 대학이 있구나' 싶게 했다. 세상을 끝까지 속일 수 있다고 여긴 그녀와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판단을 고수하다 낭패 본 이들은 김승연 회장의 폭행 사건만큼 웃지도 화를 내지도 못하는 어안 벙벙한 사태를 만들었다.

다만, 사람의 선성(善性)을 생각해보면, 이번 사태의 과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절대 악인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 해외 대학에 학위수여 여부를 알아보지 않았다면, 그녀는 광주비엔날레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을 것이다. 그녀는 예술적인 안목과 전문지식이 필요한 예술계에서 10년 동안 정상급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점에서 이번 사태를 다르게 보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실력과 학위 사이의 인과 관계없음의 문제, 그리고 국내 대학이나 학술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단지 검증 시스템을 잘 만들고, 잘 걸러내야 한다는 결론이 타당하지만은 않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문화 예술계 인사들을 모두 속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 속은 것 자체가 예술계의 현실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우리 미술계의 사람 보는 식견이 이 정도란 말인가"라며 한심하니 반성하라고 했다. 모두 엉터리라며 질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한국 문화 예술계가 엉터리라고 볼 수는 없다. 결코 속인 것만은 아니고 신씨는 어쨌든 인정받아 유명세를 이루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실력이 전혀 없었다면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문적인 평가를 제외하고라도 대중적 반응이 없었다면, 가능하지도 않았다.

<조선일보> 사설은 "가짜로서 진짜를 압도해 온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 그녀는 영어는 물론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인간관계의 구성도 매우 훌륭했다는 평가다. 정상급 큐레이터로 최고의 전시기획을 통해 상도 자주 받았다. 물론 비판하는 이들은 이벤트성 행사를 주로 하고 미술사적 기획은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중성을 접목시킨 것은 그녀의 차별성으로 볼 수 있다. 예술의 역사는 끊임없는 대중성 확보의 역사이기도 하다.

어쨌든 언론들은 그녀의 작품을 훌륭하다고 극찬해왔다. 그런데 만약 이번 사건 이후에 그녀가 기획한 전시회를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까? "아마도 어쩐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어"라는 비난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고졸 학력이 전부인 사람이 만든 것이니 말이다.

엄연히 한국은 실력보다 학력 특히 학벌이 더 중요한 사회다. 여기에 학위가 국내산이냐 국외 것이냐에 따라 대접과 평가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어떤 연구를 했는가보다 어느 나라 대학을 나왔는가가 중요하다. 명문이라고 해도 다 훌륭한 과만 있는 것이 아닌 데도 높게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학비가 높은 대학일수록 오히려 선호되는 일도 벌어진다. 심지어 '우리 학과에는 해외 박사가 있어야 폼 난다'는 인식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풍토 때문인지 아예 민족사관고 같은 경우에는 국내 학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것도 미국 대학에 주로 가려 한다. 물론 엄청난 학비 때문에 귀족학교라고 불리는 곳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고 했지만, 대학교수의 씨는 이미 정해져 있다. 갈수록 그 정도는 심해지고 있다. 학술계에 남아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들은 폴리페서가 되어 사회 권력층으로 진입한다.

국내에서는 처음부터 학문적 자질이 있는 이들은 학업을 포기한다. 희망이 갈수록 멸종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박사에 대한 쿼터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그것이 실력 없는 이들을 불평등하게 예우하여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징적 효과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위, 그것도 학위가 어느 나라 것이냐가 아니라 '실력'일 것이다. 그것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그들만의 실력이 아니라 현실 사회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검증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계속 활발한 활동을 했을 것이다. 학위가 없는 이들은 학위 있는 이들의 노예가 되는 곳이 한국사회다. 학위 없는 이들의 능력과 아이디어는 학위 있는 이들의 업적으로 치환될 뿐이다. '열 받으면 출세해라'가 아니라 '꼬면 학위 받아라, 해외에서!'이다.

무엇보다 대학은 학위에 개방적이어야 한다. 관련 분야의 활동과 연구 업적이 뛰어난 이들에게 대학 교수직을 개방해야 한다. 학위 자체는 연구 활동이나 업적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특히 문화 예술계는 더욱 강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제도적 시스템은 오히려 엄격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단지 학위가 있다는 이유로 혹은 해외 대학의 학위가 있다는 이유로 실력 없고, 연구 능력도 없는 이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보낸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보낸 글입니다.
#신정아 #가짜 학위 #광주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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