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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 2007년 오늘이 법정 공휴일로는 마지막이라는 데 대해 많은 네티즌들이 불만이 있는 모양이다. 주5일제가 확산되면서 공휴일을 줄이다 보니, 만만한 게 법이라고 제헌절이 희생양이 된 모양이다.
법 얘기가 나왔으니 '합법'이니 '불법'이니 하는 단어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 쉼터엔 체류 자격으로만 따지면, 주말 상담에서 열에 두 명 정도는 흔히 말하는 '불법 체류자'라는 딱지를 달고 온다. 다른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에 비해 합법체류자의 비율이 훨씬 높은 것은 국별 이주노동자 공동체 모임을 만들고 해당국 언어가 가능한 활동가들을 통해 체류 자격에 따른 상담과 교육을 계속적으로 실시해 왔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본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비율이 낮다고 해서 그들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체류 자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과 인권침해의 문제가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불법체류자들은 말 그대로 '불법'인데 왜 도와 주느냐, 잡아서 다 추방시켜야 되는 것이 순서가 아니냐"고 따지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굳이 불법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들의 체류자격이 합법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들의 인권과 노동권, 행복추구권까지 묵살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불법체류라는 것이 외국인 스스로 작정해서 된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제도적인 맹점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고, 내국인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던 나는 답답하고 어이가 없는 경험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슈브르라는 이름의 이주노동자는 65년생이었는데 구리빛 피부색에 건강해 보였지만, 한눈에 봐도 숫기가 없는 시골 사람이었다.
그는 4년 동안 일했던 회사에서 퇴직금을 못 받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해고와 함께 두 달여의 급여를 받지 못했다면서 조카뻘 되는 젊은이와 함께 쉼터를 찾아왔었다. 숫기가 없는 슈브르를 대신하여 동행한 청년이 인도네시아어로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한국에 온 지 4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말과 글을 전혀 할 줄 몰랐다. 의외였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출국 전 한국어 교육을 통해 유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자기 이름 정도는 한글로 쓸 줄 알고, 기본적인 대화는 하는데, 입국한 지 4년이나 됐다는 사람이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4년 동안 한 회사에서만 일했나요?"
"네."
"3년 넘게 일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일할 수 있지요?"
"회사에서 일 잘한다고 나가지(출국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나가라고 해서 나왔다는 거죠?"
"지금은 합법만 남고 다 나가라고 했어요."
"그럼, 월급은 왜 안 줘요?"
"그냥, '나중에', '나중에'라고 말해요."
"그럼, 외국인등록증이나, 급여봉투 같은 거 있으면 줘 보세요. 회사에 연락해 보게."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주소가 적혀 있는 외국인등록증도 없고, 급여봉투나 회사 정보를 알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데다, 슈브르는 자신이 일하던 회사의 주소는커녕 이름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몰랐다. 아무리 몰라도 회사 이름이나, 전화번호 정도는 알고 다니는데, 이렇게 모르는 사람을 만난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가 회사 주소가 적혔다고 내민 종이는 두터운 골판지 한 귀퉁이를 찢은 것이었는데, 단 두 글자로 '남양'이라고 적혀 있었다. 친구가 편지 보낼 때 한국 사람이 적어줬던 주소를 받아 적은 것이라고 했다. 이 역시 회사 이름인지 지명인지 확실치 않아 상담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형편이라는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슈브르는 말이 없지만, 휴일에도 어디 나다니지 않고 성실하게 일만 할뿐더러, 일하고 돈을 버는 것 외에는 달리 신경 쓸 것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손이 필요했던 사측에서 출국 일정이 지난 그의 출국을 만류하고 일을 시키다, 경영상의 문제가 발생했는지, 불법체류자 고용에 따른 부담을 느꼈는지, 갑작스레 해고를 한 것이었다. 이때 체불임금이 발생했는데, 숫기가 없던 슈브르가 도움을 호소하러 쉼터를 찾은 것이었다.
그래도 슈브르의 경우는 한 회사에서 당한 일이고, 4년 넘게 일했다고 하는 회사를 방문하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 '불법체류'를 핑계 삼아 급여를 주지 않기로 작정한 고용주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용인시 모현면에 소재한 모 종이컵 제조업체에서 일했던 인도네시아 출신 완또와 그 친구들은 얼마 전 임금체불 문제로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 이유는 제일 먼저 일을 했던 완또는 급여를 받지 못하자 회사를 그만두면서 지급 약속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속한 급여일에 업체 사장은 "일할 사람 있어? 있으면 데려와. 그러면 줄게"라고 완또를 꼬드겼다. 결국 완또는 마침 일자리를 찾고 있던 친구 세 명을 소개했고,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역시 급여를 받지 못했다.
완또와 그 친구들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신들 앞서 일하던 네팔, 베트남 사람들 역시 같은 처지에 있었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공장에선 직원들이 수시로 바꿨다.
이 문제로 전화를 하자, 업체 사장은 "내가 왜 월급 안 줘. 그놈들이 도망간 거지. 오라고 그래. 월요일에 오면 줄 테니까. 다신 이따위 전화하지마!" 하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회사를 찾아간 완또와 그 친구들에게 업체 사장은 월요일에도 같은 제안을 하며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완또의 경우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했다가, 회사에서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면접만 봤던 회사가 고용신고를 해 버리는 바람에, 근무처 변경 횟수를 넘겨 불법체류자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이후, 그는 우리 사회가 씌워준 '불법'이라는 딱지로 인해 매번 비슷한 피해를 당하며 점차 지쳐가고 있다. 완또는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나를 불법이라고 하지만, 나를 불법으로 만든 건 한국 사람들이고,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불법이라고 돈을 안 준 것도 한국 사람이다."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을 핑계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면서도 자신은 불법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법을 우습게 아는 풍토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고기복 기자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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