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저렇게 빛날 수가?

등록 2007.07.17 16:39

수정 2007.07.1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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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고구마 줄기가 찬연히 뒤집어 지듯, 내 인생의 역전은 언제 쯤 오나? ⓒ 한석종

장마가 잠시 갓길로 비켜선 지난 일요일 아침, 평소 뿌연 스모그에 형체만 간신히 아른거리던 먼 산이 말끔히 세수하고 거울 앞에 선 것처럼 가깝고도 선명하게 다가와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웬 때 아닌 청명한 가을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가득 펼쳐져 있었고, 초록들판을 스쳐 온 시원한 산들바람이 내 귓속을 후비며 꼬드기는 바람에 무작정 카메라 가방을 메고 방콕(?)을 떠나 남녘들판으로 내달았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비가 그리 많이 오질 않아 논바닥에 흙먼지가 날릴 직전이던 것이 제법 물이 벙벙하게 들어차 있었고,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과 장마통에 모처럼 폭포처럼 쏟아지는 햇볕의 영양분을 듬뿍 받아 파릇파릇 생기를 되찾은 밭작물들이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몸을 내 맡긴 채 싱그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눈 앞에 펼쳐진 산과 들판의 만물들이 그야말로 생기발랄한 연초록의 향연이었고, 이를 접한 내 몸과 마음은 어느듯 세속으로 찌들어 가는 새콤한 중년의 냄새가 씻겨 나가고 풋풋한 연초록의 내음이 스며들어 기분이 산뜻했다.

사방팔방 연초록 내음에 취해 시선의 갈피를 잡지 못할 즈음, 저 멀리 황토 언덕밭에 하염없는 눈부심으로 내 시야를 온통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땐 옥수수밭 같기도 하고, 양파밭 같기도 하고 콩밭 같기도 하여 쉽게 분별할 수 없어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린시절 농촌에서 자란 나지만,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밭작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까이 좀 더 가까이 십여 미터까지 다가서고서야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저것이 저렇게 빛날 수가?

▲ 파아란 하늘처럼 가슴 속에 늘 소박하고 맑은 꿈을 담아야지! 이것이 인생역전 시작이려니... ⓒ 한석종

구황작물, 고구마 줄기였다. 오십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밥 대신 고구마로 허기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볼품없던 얄미운 녀석이 이렇게 찬연히 빛나다니... 고구마는 한 시절을 먹여 살린 그지없이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제발 고구마 그만 좀 먹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 있기도 했다.

어찌됐던 지금, 너른 들판 그 많은 밭작물 중에서 가장 찬란하게 뽐내며 빛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고구마 줄기인 것을... 고구마 줄기가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제 몸을 뒤집고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햇볕을 받으며 온 세상을 눈부시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돌고 돌다고 했던가?
돌고 도는 것이 어디 사람의 인생뿐이랴?

고구마 밭에서 풀을 메고 있는 농부는 요즘 벼농사보다 고구마 농사가 훨씬 수익이 좋다고 한다. 쌀농사 지어봐야 정부에서 수매도 해 주지 않고 쌀 값이 콩비지 값으로 천대를 받고 있으니 누가 생고생하며 벼 농사를 짓겠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고구마는 요즘 값도 좋아 농부들에게 인기가 있단다. 특히, 당도 좋은 물고구마는 수확하기도 전에 중개인에게 밭대기로 팔린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인생역전이 사람들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네...나는 농부의 말을 들으며 잠시 이런 생각에 잠겨본다. 허기를 채워주던 인생에서 웰빙식품, 웰빙인생으로 이렇게 각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