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코도 아닌 버섯이 어딨어?"

산초 열매 따러 갔다가 만난 버섯들, 버섯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네요

등록 2007.07.18 17:07수정 2007.07.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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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예쁜 꽃도 흔치 않을 거예요. 찬찬히 살펴보니 비단실로 한올한올 짜놓은 거 같았어요.
요렇게 예쁜 꽃도 흔치 않을 거예요. 찬찬히 살펴보니 비단실로 한올한올 짜놓은 거 같았어요.이승숙

아침밥을 하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17일)이 제헌절이었다. 그런데 암만 생각해도 제헌절 노래가 안 떠오르는 거였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광복절 노래고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는 개천절 노랜데, 제헌절 노래는 어떻게 시작이 되는지 통 생각이 안 났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자기도 제헌절 노래는 잘 모르겠다며 오히려 나한테 묻는 거였다.


태극기는 꽃 속에 펄럭이는데 제헌절 노래가 생각이 안 나

제헌절 노래를 생각하면서 흥얼대고 있는데 남편이 태극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는 거였다. 태극기를 달려고 나가는 모양이었다.

마당 한 쪽에는 능소화가 활짝 피어 있다. 능소화는 저 혼자 힘으로는 서 있지 못하는 나무라서 지주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 집 능소화는 늙어서 죽은 대추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능소화가 피는데 올해도 능소화가 활짝 피었다.

능소화가 감고 올라가는 대추나무 고사목은 우리 집의 국기 게양대이기도 하다. 국경일이면 우리는 그 곳에다가 태극기를 단다. 오늘은 제헌절이라서 태극기를 달았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활짝 핀 주황색의 능소화 무리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색달랐다. 꽃에 둘러싸여 있는 태극기는 아마도 우리 집 태극기 밖에 없으리라 자부하면서 다시 한 번 태극기를 바라봤다.

'운지버섯'이라고 남편이 그랬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죽은 나무 등걸에 구름처럼 달려 있었어요.
'운지버섯'이라고 남편이 그랬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죽은 나무 등걸에 구름처럼 달려 있었어요.이승숙

방학을 한 딸애가 집에 온 탓에 근 열흘간 통 글을 못 썼다. 딸애가 있다고 글을 못 쓸 거까지는 없는데 그런데도 나는 일상의 리듬이 깨져버려서 그런지 통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딸애가 서울로 떠나자 비로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음을 잡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빙빙 맴을 돌다가 겨우 마음을 잡아서 글을 써내려갔다. 머리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들을 글로 만들기까지는 마음이 동해야 한다. 마음이 움직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모처럼만에 신명이 난 나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글 쓰는 재미에 빠져 버렸다.

산초 열매 따러 산에 갔다가 만난 버섯들


아침밥을 먹자 식구들은 다들 제 자리로 가버렸다. 아들애는 공휴일인데도 공부한다며 학교로 가버렸고 남편은 사랑방으로 내려가 버렸다. 안채 거실에 있는 컴퓨터는 이제 내 차지다. 컴퓨터 앞에 앉아 어젯밤에 써놓은 글을 살펴보고 있는데 사랑방에 있던 남편이 위채로 올라오며 그러는 거였다.

"여보, 산에 안 갈래? 산초 열매 따러 산에 가자."

오랜만에 마음잡고 글 쓰고 있는데 참말로 식구들이 도와주지를 않는다.

얼핏 보면 꼭 빵 같이 보입니다. 만져보진 않았지만 겉보기로는 딱딱해 보였어요.
얼핏 보면 꼭 빵 같이 보입니다. 만져보진 않았지만 겉보기로는 딱딱해 보였어요.이승숙
"여보, 이거 좀 올리고 가자. 그런데 산초열매는 뭐 하려고?"
"산초열매로 장아찌 담아보자. 제피 열매도 좋지만 비슷한 향 나는 산초열매도 괜찮을 거 같아서 말야."
"에이, 산초열매로 무슨 장아찌를 담아? 그거 맛 없을 텐데?"

말은 그리 했지만 나 역시 좀 움직여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등산화 끈을 단단이 조여 매고 집을 나섰다.

꾀꼬리 버섯은 뭐며 개 코도 아닌 버섯은 또 뭐야?

우리 집 뒤 산인 '진강산'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산이다. 널리 알려진 산이 아니라서 그런지 외지 사람들은 잘 찾지 않는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가끔씩 나들이 삼아 가곤 하는데 우리 역시 산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진강산에 간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마니산이 있지만 우리는 늘 진강산만 찾는다.

산에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비 온 뒤라서 그런지 골짜기마다 청간수가 촐촐촐촐 흘러내려갔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피부에 전해져 왔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이 처져왔다. 앞서가는 남편을 따라서 산을 오르는데 거리가 자꾸만 멀어져갔다. 한참을 가던 남편은 뒤를 돌아보며 기다려주었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곤 했다.

스머프들이 살고있는 집 같죠? 버섯도 예뻤지만 그 옆에 있는 이끼도 참 예뻤어요.
스머프들이 살고있는 집 같죠? 버섯도 예뻤지만 그 옆에 있는 이끼도 참 예뻤어요.이승숙

앞서가던 남편이 허리를 굽히고 뭔가를 살펴보는 거였다. 흘낏 보니 노란색 버섯을 보고 있었다. 장난기가 동한 나는 남편에게 그랬다.

"여보, 그거 꾀꼬리 버섯 아냐?"
"뭐, 꾀꼬리? 그런 버섯도 있어?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다."
"노란 게 꼭 꾀꼬리처럼 생겼네 뭐. 이름이사 아무 거면 어때? 내가 붙이면 그만이지."

꾀꼬리 버섯이라고 짓고 보니 썩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꾀꼬리라는 그 한 마디에 우리 둘은 기분이 좋아졌다.

관심을 두자 버섯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또 무슨 버섯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보, 그거는 무슨 버섯이야?"
"개 코도 아닌 버섯."

내 장난끼를 이어받아서 남편이 장난을 친다.

"뭐, 개 코도 아니라고? 개 코도 아니다 그래 개 코도 아냐."

평소에 농담으로 '개 코도 아니다'라는 말을 잘 하는 남편은 오늘도 역시 개 코 타령을 한다. 그 때부터 우리 둘은 버섯만 보면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별 다른 재미가 없던 산행이었는데 갑자기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색깔이 붉어서 그런지 괜히 불길해 보였어요. 겉모습만 보고 무조건 독버섯으로 쳐 버렸는데, 무섭게 생겼죠?
색깔이 붉어서 그런지 괜히 불길해 보였어요. 겉모습만 보고 무조건 독버섯으로 쳐 버렸는데, 무섭게 생겼죠?이승숙

"여보, 오늘 주제는 버섯이다 버섯. 이야, 이야기가 술술 나오네. 그림이 저절로 그려진다."

괜히 흥이 난 나는 신이 나서 외쳤다. 좀 전까지만 해도 헉헉대던 산길이 그 때부터 하나도 힘이 안 들었다. 버섯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버섯들이 많았다. 생긴 모양새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버섯들이 막 보이는 거였다. 앞서가던 남편은 좀 색다른 버섯만 보이면 여기 와 보라고 불렀다.

버섯이라면 다 독버섯으로 봤는데...

"당신 전에 버섯에 관심이 많았잖아. 난 당신이 버섯 따와서 요리해 달라고 할까봐 무서웠는데 요새는 버섯 안 찾데? 여기 먹을 수 있는 버섯 없어?"

버섯 따서 먹자고 할까봐 겁을 먹으면서도 그래도 혹시 먹을 수 있는 버섯이 없을까 하고 물어봤다.

"다 독버섯처럼 보이네. 아는 버섯이 하나도 없다. 색깔이 곱고 예쁘게 생긴 버섯은 다 독버섯이라잖아. 버섯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나?"
"왜 없을까? 사진 찍어서 버섯 전문가에게 물어봐. 인터넷에 올리면 전문가들이 다 답해 줄 거야."
"전에 어른들은 먹는 버섯 잘 알던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버섯 잘 몰라. 버섯이라면 느타리나 표고 같이 파는 버섯밖에 모르잖아."
"그러게 나도 버섯은 잘 모르겠더라. 전에 우리 할부지는 산에 갔다 오실 때 싸리버섯 따와서 반찬 하라고 엄마 주시곤 했는데, 그 싸리버섯 어릴 때 먹어보고는 한 번도 못 먹어봤네. 지금은 멸종됐을까?"

우리 둘은 어릴 때 먹어봤던 버섯들을 되뇌어보기 시작했다.

민달팽이가 한창 뜯어먹고 있었어요. 버섯의 일생 중 '죽음' 편을 보는 것 같았어요.
민달팽이가 한창 뜯어먹고 있었어요. 버섯의 일생 중 '죽음' 편을 보는 것 같았어요.이승숙

"전에 어릴 때 어무이가 버섯 따와서 정구지 넣고 국 끓여주곤 했는데, 그 때 비 오고 나면 참나무 숲에 버섯이 돋았거든. 약간 아리한 듯하면서도 맛이 괜찮았어. 저 버섯, 참나무 버섯이랑 비슷하네. 그런데 독버섯인지도 몰라."
"독성분이 약간 있는 게 더 맛있다며? 복어도 독을 다 빼버리면 맛이 없대. 약간의 독이 맛을 더 나게 한다더라. 아마 그 버섯도 약간은 독이 있었을 거야. 아리한 맛 그게 독일지도 몰라. 먹어도 치명적이지 않은 독은 괜찮은갑지?"
"본래 치명적인 유혹은 달콤한 유혹이잖아. 예쁜 버섯은 대개 독버섯이야."

버섯에 대해서 아는 게 없네요

버섯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았던 남편은 버섯만 보면 먹을 수 있는 버섯인지 아닌지 관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안했다. 독버섯 먹고 일가족이 중태에 빠졌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혹시 우리도 그런 기사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곤 했다. 그래서 버섯을 보면 무조건 못 먹는 버섯이라고 단정을 내리곤 했다.

무조건 못 먹는 버섯이라고 타박을 놓아도 그는 버섯을 잘 따왔다. 그렇지만 그도 독버섯일까봐 무서웠는지 먹어보자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상하게 생긴 버섯만 보면 이게 무슨 버섯일까 하며 궁금해 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정말 버섯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참 많다. 어떤 버섯은 먹을 수 있고 또 어떤 버섯은 못 먹는 버섯인지도 모른다. 또 버섯이 어떻게 생겨나서 어떤 경로를 거치면서 살다가 죽는지 그것도 역시 모른다. 버섯은 많았지만 아는 버섯은 하나도 없었다.

참나무 낙엽더미 속을 뚫고 올라오는 버섯들, 올망졸망 서있는 모습이 참 귀엽지요?
참나무 낙엽더미 속을 뚫고 올라오는 버섯들, 올망졸망 서있는 모습이 참 귀엽지요?이승숙

축축하고 그늘진 곳에 버섯들이 돋아나 있었다. 이제 막 봉긋하게 올라오는 버섯이 있는가 하면 갓이 다 펼쳐진 늙은 버섯도 있었다. 민달팽이가 달라붙어서 한창 뜯어먹고 있는 버섯도 있었다.

"여보, 버섯은 자연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일까?"
"글쎄, 내 생각에 버섯은 식물 생태계의 맨 밑바닥이 아닐까 하는데… 하이에나와 같은 역할이 아닐까?"
"그래? 하이에나처럼 청소부 역할을 버섯이 한단 말이지? 버섯의 일생은 어떤 건지도 모르겠네. 무얼 먹고 자라며 또 어떻게 일생을 마감하는 걸까?"

정말이지 우리 둘은 버섯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고작 '버섯'이라는 넓은 의미의 이름 밖에 몰랐다. 버섯 하나하나마다 저마다의 이름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 이름들도 하나도 몰랐다. 우리는 산초 열매를 따러온 본래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온통 버섯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독버섯 #진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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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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