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은 왜 북녘 땅을 등지고 서 있을까

[백령도 여행 ⑤] 심청 동상 옆에는 탱크와 대포가 서 있고

등록 2007.07.18 11:29수정 2007.07.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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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얼굴을 한 특별한 이정표

백령도에서 가장 볼 만한, 꼭 보아야 할 곳은 어디일까? 여행객은 늘 이런 질문을 품게 마련이다. 그래서 여행 안내서를 뒤적이고 인터넷을 항해한다. 먼저 다녀온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좀 더 정밀한 사람은 해당 지방 자치단체의 문화관광과에 전화를 걸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길에 들어섰다면 이런 방법들은 대체로 '그림의 떡'이다. 결국 우리는 이정표에 자꾸만 주목을 하게 된다. 특히 도보 여행 중이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나무 그늘 아래 퍼질러 앉은 채 허공에 내걸린 이정표에 잔뜩 기대 섞인 눈길을 던지게 될 것이다.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 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최남선의 시조 <혼자 앉아서>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나는 그저 '오마지 않은 이'에 불과하다. 백령도의 그 누구, 그 무엇에게도 방문 계획을 사전에 말하지 않았으니, 그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나는 단지 '오마지 않은 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정표는 일년 내내 거리에 서서 나의 방문을 '일도 없이'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는 차량의 먼지 속에서도, 짙은 안개 속에서도, 흩뿌리는 비나 정처 없는 바람 속에서도 이정표는 줄곧 나를 찾고 있다. '가는 정 오는 정'이라 했으니 나인들 어찌 이정표에 보답을 하지 않으랴. 나도 이정표에게 '눈이 자주 가더라'고 고백하는 초짜 나그네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관공서를 찾는 사람이 아니다. 일반적인 이정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찾는 이정표는 갈색 얼굴을 하고 있는 좀 특별한 것이다. 녹색이 아니다. 이건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박물관, 미술관, 역사유적, 명승지 등을 찾는 여행객들을 위해 갈색 이정표를 세워 두었다.


a 배에서 내리면 사진의 이정표가 가장 먼저 반겨준다.

배에서 내리면 사진의 이정표가 가장 먼저 반겨준다. ⓒ 정만진

인천에서 네 시간 배를 타고 달려와 이윽고 용기포에 내리면 바로 갈색 이정표가 나타난다. 당연하다. 관광객을 위한 이정표가 서 있어야 마땅할 자리인 것이다. 고개를 들어 이정표를 바라본다. '심청각 3.8km 사자바위 4.9km 중화동교회기념관 12.1km 두무진 14.6km'. 네 가지 명소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나란히 적혀 있다. 거리 순이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혹은 백령면은 찾아온 이들에게 이 네 곳은 반드시 둘러보라고 권유하고 있는 셈이다.

안내판에는 사곶 해수욕장이 없다.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없는 천연 비행장인데 어째서 아무 언급이 없을까. 이 용기포 선착장에서부터 곧장 시작하여 왼쪽으로 4km 가량 줄곧 펼쳐지는 모래밭이 바로 사곶 해수욕장이니 갈색 이정표 등재는 생략된 건가. 갈색 이정표에 '사곶 천연비행장 0km'라고 적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임의적 생략은 잘못이다. 백령도를 찾아온 외지인은 사곶 천연비행장이 용기포 포구에서부터 바로 시작하여 왼쪽으로 10리에 걸쳐 계속 이어지는 평평하고 단단한 모래밭인 줄 전혀 알지 못한다. 무릇 설명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여 알도록 해주는'일 아닌가.

다녀본 결과를 미리 말하면, 두 번째로 안내되어 있는 사자바위는 별로 가볼 만하지 않다. 아무리 보아도 사자 형상이 아닌, 그저 커다란 바위 하나가 덩그렇게 바다 속에 서 있을 뿐이다. 현지 관광사 안내원은 "옛날엔 사자와 무척이나 닮았는데 비바람과 파도에 저렇게 모양이 변해 버렸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고, 잔매에 장사 없지 않습니까? 손님들을 모시고 올 때마다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하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세 번째로 안내되어 있는 중화동 교회는 볼 만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사자바위와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라니 기독교 신자가 아닐지라도 한 번쯤은 가 볼만 하지만, 현지 안내원은 "가봐야 안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입구를 막고 있습니다, 외부인들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입니다"하고 특이한 설명을 한다. 목사와 장로 사이에 다툼이 벌어져 재판이 진행 중인데 그 때문에 교회 건물 입구에는 헌금 통이 두 개 따로 놓여 있다고 한다.

인당수는 수평선 너머의 '무지개'일 뿐

역시 심청각과 두무진이다. 백령도를 대표하는 명소는 바로 이 두 곳이다. '서해의 해금강'으로 칭송받아온 두무진, 효도의 대명사 심청을 기리는 심청각,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두 곳을 기필코 가보아야 한다. 옹진군 홈페이지에 들어가 '역사 인물' 부분을 검색하면 아니나 다를까, 두무진은 그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심청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역사 인물'에 등재된 PDF가 '옹진군사'의 것인 듯싶은데, 이 책을 편찬할 때에 아직 심청각이 세워지지 않은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심청각은 북한땅 옹진군이 그대로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에 있다. 단 12km에 불과한 바닷물 건너가 바로 북한땅이다. 눈에 보이는 반도의 끝이 장산곶이고, 그 뾰족한 끝이 인당수라 한다. 심청이 빠져죽은 그 인당수 말이다. 심청은 그 인당수에서 죽어 용궁에 갔다가 마침내 연꽃을 타고 부활하는데, 아버지 심봉사를 만나는 곳이 바로 이 곳 백령도, 그 중에서도 연꽃 연(蓮)자를 동네이름으로 쓰는 연화동이다.

연화동은 두무진 장군바위에서 병풍절벽을 지나 중화동교회로 가는 사이에 있다. 예로부터 연화동에는 연꽃이 가득 피어나는 연못이 있었는데 깔끔하게 보존된 상태가 아니라서 아직은 손님을 맞이하지 못한다고 한다. 과연 백령도를 다녀보면 어느 갈색 이정표에도 연화동 이름은 없다.

a 심청각. 2층으로 되어 있는 심청 박물관이다.

심청각. 2층으로 되어 있는 심청 박물관이다. ⓒ 정만진


a 심청각 뒤 바다 쪽에 심청 동상이 서 있다. 동상 크기로 미루어 심청각 건물의 웅장함을 가늠해볼 수 있다.

심청각 뒤 바다 쪽에 심청 동상이 서 있다. 동상 크기로 미루어 심청각 건물의 웅장함을 가늠해볼 수 있다. ⓒ 정만진

역시 "심청" 하면 뭐니뭐니해도 인당수가 압권이다. 그녀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효녀인 것도 바로 그 인당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당수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와 같은 난폭한 광고 문안과는 비교할 일이 아니지만, 인당수에 빠져죽지 않은 심청이라면 결코 그녀는 효의 화신이 될 수 없었을 게 자명한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인당수에 갈 수가 없다. 안태섭- 박건호 작사, 남국인 작곡의 유행가는 '잃어버린 삼십 년'이라 했지만 어언 세월이 더 흘러 이제는 60년이 지나도록 인당수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심청은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강렬하게 남은 효의 화신이지만, 그녀가 죽고 다시 살아난 인당수는 우리가 도무지 갈 수 없는 '저승'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마음 놓고,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 되기까지는 안타깝게도 '화중지병(畵中之餠)', 수평선 너머의 '무지개'일 뿐이다.

도둑같이 슬며시 통일되기 바라는 염원 깃든 심청각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은 그리움을 낳는 법이다. 보고 싶고 가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그리움의 표상을 남기게 된다. 기념관, 동상, 전기, 비석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곳 백령도에 심청각이 세워지고 그녀의 동상이 서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치 때문이다. 인당수가 눈에 고스란히 담기는 곳, 가고 싶은 마음에 겨워 바다 위로 넘어지면 그대로 손끝에 닿을 것만 같이 지척에 장산곶이 곱게 보이는 이 곳에 사람들은 심청각을 건립하고, 심청의 동상을 세웠다.

a 심청 동상. 바다에 뛰어들기 직전 치마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심청 동상. 바다에 뛰어들기 직전 치마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 정만진

경기도 파주군 임진각에는 '보고 싶은 얼굴이 있어 눈을 감지 못하고/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어 가슴 저미는/ 우리들/ 단 한 곡의 노래, 한 몸짓의 춤사위라도/ 통일된 조국에서 꽃잎처럼 피우고자' 50만 연예가족이 '뜨거운 염원을 모아' 세운 <잃어버린 삼십 년> 노래비가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 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 메이게 불러봅니다// 내일일까 모래일까 기다린 것이/ 눈물 맺힌 삼십 년 세월/ 고향 잃은 이 신세를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남매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 메이게 불러봅니다.'

아마 심청각을 이 곳에 세운 사람들도 이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갈 수 없는 인당수가 그리워, 잊혀가는 심청이 그리워 심청각을 짓고 그녀의 동상을 제막했으리라. 죽음으로써 자신도 살아나고, 맹인이었던 아버지의 눈도 뜨게 만들고, 이 세상 모든 눈먼 이들에게 광명을 선사한 심청처럼 우리 민족 모두가 다시금 햇살 같은 통일의 그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기념관을 건립하고 동상을 세웠으리라.

삼천만 겨레의 부활과도 같은 통일이 어서 빨리, 하루라도 일찍 성취되기를 간구하여 뜻을 모았으리라.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도둑같이' '슬며시'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충심에서 정성을 모았으리라.

그래서 나는 추측한다. 지금 심청이 인당수와 북녘 땅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그 반대편을 향해 서 있는 것은 바로 통일이 도둑처럼 찾아오기를 갈망한 까닭이리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바로 그 날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이 그 사실도 모르는 채 폴란드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처럼, "'통일 도둑'은 등 뒤로 '몰래' 오는 것이니, 통일의 그 날을 맞을 준비에 매진하라"는 말이 하고 싶어 심청은 저처럼 인당수를 등에 지고 서 있는 것이리라.

심청 박물관이라고 소개하면 될 만한 심청각은 2층 건물이다. 심청각 뒤에는 심청의 동상이 서 있다. 길병원에서 제작하여 기증하였다고 한다. 나는 특별히 이 사실을 여기 기록하여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 이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적 기여다.

그나저나, 거친 파도에 시달린 뱃머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가운데 치마를 뒤집어쓴 심청이 바야흐로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려는 찰나를 표현한 동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저절로 처연해진다. 흡사 박인로의 '조홍시가'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그뿐인가. 심청의 동상 뒤로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북녘 땅에 저절로 눈가엔 슬픔이 드리워진다.

a 옹진반도를 향해 포신을 곧추세우고 서 있는 탱크. 병사들이 이 곳에 와서 북한 쪽을 바라보며 서서 교육을 받고 있다. 병사들의 머리 위에 가로로 길게 보이는 땅이 바로 북한 옹진반도다.

옹진반도를 향해 포신을 곧추세우고 서 있는 탱크. 병사들이 이 곳에 와서 북한 쪽을 바라보며 서서 교육을 받고 있다. 병사들의 머리 위에 가로로 길게 보이는 땅이 바로 북한 옹진반도다. ⓒ 정만진


a 심청각 옆의 탱크

심청각 옆의 탱크 ⓒ 정만진

심봉사도 화들짝 놀랄 살벌한 풍경

남몰래 돌아서서 마음을 진정시키려다 뜻밖의 풍경에 놀라 가슴이 아주 철렁 내려앉는다. "네가 과연 내 딸이냐"하고 번쩍 눈을 떴던 심봉사도 화들짝 놀라 찔끔 눈을 감고 말 것만 같은 살벌한 풍경이다.

심청각보다 좀 더 높은 지점에 탱크가 한 대 위세 좋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 포신이 마치 나를 노리고 있는 것만 같다. 탱크 아래에는 거대한 대포가 역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바다 건너 장산곶 쪽을 향하여 탱크와 대포는 눈을 부라리고 있다. 북한 쪽이다. 아직은 심청이 부활하지 못했는가. 지금은 결코 우리 민족 모두의 눈을 뜨게 하고, 기쁨에 겨워 새 날을 누리게 만들 통일의 그 날이 아니기에, 심청각 옆에 저와 같이 대포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것인가.

탱크에 기대어 북한 땅을 바라보노라니 문무왕이 죽으면서 남긴 말이 생각난다.

"멀고 가까운 곳을 모두 평안케 하였다. 위로는 조상들의 남기신 염려를 안심시켰고 아래로는 부자(父子)의 오랜 원수를 갚았으며,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상을 두루 주었고, 벼슬을 터서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하였다.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으며 백성을 어질고 장수하는 땅으로 이끌었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요역을 덜어주니 집집이 넉넉하고 백성들이 풍요하며 민간은 안정되고 나라 안에 근심이 없게 되었다. 곳간에는 곡식이 산언덕처럼 쌓여 있고 감옥은 풀이 무성하게 되니, 신과 인간 모두에 부끄럽지 않고 관리와 백성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왕은 자신이 통일을 이룸으로써 쌓은 업적을 이렇게 자화자찬했다. 통일을 완수함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했다는 것이 요지다. 특히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다'는 대목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이제 머잖아 이 탱크도 녹아 농기구로 변하리라. 손으로 포신을 쓰다듬으며 나는 통일의 꿈에 젖어본다.

덧붙이는 글 | 6월 25일-27일 백령도에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6월 25일-27일 백령도에 다녀왔습니다.
#백령도 #통일 #심청각 #탱크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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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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