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양보 문화'에 숨은 '나이의 위세'

자리 양보 문화, 과연 아름답기만 할까?

등록 2007.07.18 16:21수정 2007.07.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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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채로, 버스 좌석에 앉는다. 그런데 앉는 그 순간, 나이 드신 할머니가 근처로 오셔서 서 계신다. 학생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못 본 척' 해야 하나? 양보해드려야 하나?"

1991년이었을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죠. 교과서 '생활의 길잡이'에 실제로 나온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제 생각, 그리고 제 기억을 얘기해보겠습니다. 교과서는 양보를 은근히 '강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양보는 스스로 우러나와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형편 봐가면서 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보세요. 다리를 다쳐 서 있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의 '양보'는 '오버'일 수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못 본 척'이라는 용어도 좀 그렇죠? 저 '못 본 척'이라는 단어는, '뭔가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에 앞서, 그 관습을 어겨 부도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식의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리를 다쳤습니다'. 서 있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 학생이 아니더라도, 양보해줄 사람 많습니다. 그런데 '고민'하고 '양심에 찔려' 합니다. 이쯤 되면, 양보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거죠.

'자리 양보 문화', 무의식적인 것?

"한 한국친구에게 왜 자리를 비켜주느냐고 묻자 그냥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버린다고 대답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행동이 나올 수 있겠는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자리 양보 문화를 언급한 어느 외국인의 이야기입니다. '무의식적'이라는 말이 흥미롭죠.

좀 까칠하게 말하면, '무의식적'이라는 말은 '마음으로 생각'한다기보다, 반자동적이라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앞서 제가 언급한 교과서 속의 사례,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나왔던 내용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나이가 벼슬'로 작용하는 면도 있습니다.

나이란, 그만큼 인생을 더 오래 살아 많은 경험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존중하고 예를 표한다기보다는,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더 오래 살았던 삶과 그에 따른 경험, 품위를 존중하는 거죠.

그리고 언젠간 나 역시 나이를 들어 몸이 힘겨워지는 날이 올 것이기에, 내 미래를 생각하면서 존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존중'이나 '양보'는 무엇보다 '자발적인 의지'가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학습효과'에 따른 결과임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타이틀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는 사회입니다. 그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 양보의 '강요'도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교과서에서도 암묵적으로 조장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이런 이면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게다가, 우리 사회는 '나이가 벼슬로' 작용하는 일면도 있는 사회입니다. 막말로, 술 취해서 시비가 붙었을 때도 당장 나오는 말이 "너 몇 살이냐"죠.

글과 글, 생각과 생각이 충돌하는 댓글게시판에서도 나이 앞세워서 나이로 제압하려는 사람들도 은근히 있는데다가, 나이 어린 사람의 의견 제기도 나이로 무마하려는 풍토도 여전한 사회입니다. 이런 풍토와, 교과서에까지 등장하는 '강박관념'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겁니다.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여태껏 행했던 '자리 양보'들,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더 많이 작용했을까요? 아니면 왠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무의식적인 면이 더 강했을까요?

학생들에게 '자리 양보' 지나친 강요 말아야

'자리 양보'의 주된 당사자는 학생들입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민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일부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무력행사'도 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죠.

"젊은 놈이 좀 서서 다닐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양보가 당연하다는 식으로 학생들에게 양보를 강요해선 곤란하죠.

누구나 다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일부 학생들'은 하루하루가 피곤할지도 모르죠.

제 경우를 이야기해보죠.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3학년 등교시간이 아침 7시까지였고, 저희 집은 학교에서 버스로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차가 막혀서 지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7시만 되면 선생님이 문앞에 계셔서 체벌을 하거든요. 지각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4시 50분에 일어나 등교했고, '야자'를 마치면 밤 10시. 집에 가면 밤 11시에서 11시 30분 사이. 잘 시간도 부족했죠. 그래서 전 언제나 버스에서 자리에 앉기만 하면 곧바로 '수면모드'였습니다.

저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대중교통수단 한번 이용해보시죠. 학생들, 어딘가 피곤해 보이지 않습니까? 혹시 창문에 고개를 기대거나, 고개를 숙이고 잠든 학생들, 피곤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아이들한테 '자리 양보 강요'는 그 잠깐의 휴식을 빼앗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 인생 위해 공부하는 애들인데 뭘 그러느냐"는 반응이 있겠지만, 그건 누구나 다 마찬가집니다. 누구 위해 인생사나요? 다만, 그 아이들의 피곤함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대중교통수단에서 보고 싶은 '아름다운 그림'

"할아버지(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아이구, 뭘. 요즘은 학생들이 더 피곤하지. 괜찮아. 학생이 앉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여기 앉으세요."
"그래, 그럼 학생 가방 이리줘. 책 많이 들었으면 무거울텐데."
"감사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양보, 그리고 상대방의 나이가 어려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연장자.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일까요? 양보는 당연한 게 아닙니다. 양보는 강요당할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양보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배려입니다.

그리고 양보받는 사람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게 아니라, 마찬가지로 이해와 배려를 보여야 합니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조금 심하게 말해볼까요?

나이는 벼슬이 아닙니다. 나이는 많아질수록, 그만큼 상대방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 많아집니다. 그 보여줄 것 중 하나가 바로 넓은 이해와 배려입니다.

일부 외국인이 느꼈다는 '한국의 자리 양보 문화'는 분명,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미덕 중 하나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벌떡벌떡 일어나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앉는 '자리 양보 문화'가 아니라,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무게를 덜어주는 '자리 양보 문화'가 돼야 합니다.

외국인들은 이런 아쉬운 일을 겪지 않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우리도 스스로 좀 생각해보고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를 욕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문화를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생채기도 감수하고 고쳐나갈 필요도 있습니다. 사소한 오류라도 알아서 먼저 고쳐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자리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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