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깃털의 바다로 가는 길

일상의 쉼표 한 점, 휴식 같은 바다

등록 2007.07.20 10:38수정 2007.07.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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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버스터미널에서의 깃털 세 장의 만남

언니인 오문선양이 나의 '우리 세 모녀가 참 가볍다'는 농담에 어울리게 마냥 가벼운 단어인 '깃털'이라는 표현을 썼다. 난 그 말이 하도 재밌어서 까르르 넘어갔고, 곧잘 길에서 함께하는 우리 세 모녀의 여행길은 이제 나에게 있어서 늘상 세 깃털의 비행이 될 것이다.


경기도 구리에 사는 오문선양은 경주에 먼저 일찍 도착해 자전거를 즐거이 탄다는 소식을 전해 난 발만 동동 굴려보았고, 속을 바짝 태운 토요일 업무를 마치고 저녁에 출발하는 경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함께 동행하기를 적극적으로 원한 우리 엄마, 우주바람은 토요일에 선약이 있는 관계로 일요일 아침에 버스를 타고 우리와 경주터미널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

a 세 깃털의 만남의 장소

세 깃털의 만남의 장소 ⓒ 박경내


우주바람은 문무왕릉 있는 그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a 살짝 호러물 기운 나는 바다로 가는 길

살짝 호러물 기운 나는 바다로 가는 길 ⓒ 박경내

점심을 먹고, 차도 마시고 바다를 향해 출발할 즈음에는 장마 때 흐렸던 날씨가 차차 개기 시작했다. 우주바람이 예전에 가본 문무왕릉 바닷가를 가고 싶어 하셔서 경주바닷가인 '감포'가 적힌 100번 버스에 올랐다. 배도 부르고, 햇볕 내리쬐기 시작하고, 셋 다 졸음삼매경에 빠져 꾸벅대다가 눈을 떠보니 바닷가에 다 온 듯, 운전사 아저씨께 다짜고짜 감포에서 내리겠다고 했더니 곧 문을 여시며 여기서 내리면 된단다.

하지만 그곳은, 여태껏 여러 번 문무왕릉을 찾았지만 참으로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저 끝까지 걸으면 혹여 나올까 모래사장을 걸어보아도 푹푹 밟히며 더딘 걸음이 힘들기만 하고, 땡볕에 저 바다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금세 지쳐 소나무밭으로 피신했다.

버스에서 졸다온 후유증인지,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 바다가 그 바다가 아님에 대한 실망이 가져다준 급피곤 때문인지 소나무 곁 벤치에 앉아 다들 눈이 반쯤 감긴 상태다. 결국 우리가 편히 누울 돗자리를 구매하기로 모두 반가이 동의하고, 슈퍼 가서 돗자리 끌어안고 아이스크림 물고 돌아오는 길이 행복하기만 하다. 돗자리 펴고 누워 그 후 두 시간 동안 우리 세 깃털은 꿈나라로 날아가 '3천원의 행복'을 촬영했다.


a 휴식 같은 바다

휴식 같은 바다 ⓒ 박경내

자고 일어나보니 해도 조금 기울어지고, 이제는 편히 바닷가를 걸었다. 거칠게 다가오는 파도 맞으며 어울려 노는 잔뜩 신난 아이들을 힐끔 보다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차마 어쩌지도 못하고 마냥 구경만 하고 있는 여자아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다에 들어가면 죽는 줄 알고 애꿎은 모래만 쌓았다 헐었다를 반복했던 내 어렸을 적 모습만 같이 여겨져 지금 저 아이의 심정을 알 듯, 모를 듯 슬며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a 자연 그대로, 아이와 바다

자연 그대로, 아이와 바다 ⓒ 박경내


a 바다 건너기

바다 건너기 ⓒ 박경내

바닷가를 따라 거닐다가 길이 끊기는 곤란한 상황에 부딪혔다. 강물이 내려오는 길이 있어 건너기에는 어중간하고, 물에 젖지않아 빠질 수는 없었기에 먼저 출발한 우주바람이 최대한 폴짝 뛰었지만 바닷물에 신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걸 안타까이 지켜보았다. 다음 차례는 오문선양, 치마차림이라 신발만 살짝 벗어 첨벙첨벙 걸어간다.


나의 부러움의 시선을 느끼고는 착한 미소로 "업어주까?" 물어온다. 말 떨어지게 무섭게 좋다는 명쾌한 대답을 던지며 어설프게 내민 등에 덜컥 업혀버린 나, 비틀비틀 철퍼덕, 결과는 내 신발을 신은 두 발이 홀라당 물에 담겨 호들갑스럽게 빠져나오기 바빴다. 너무 무거웠다는 오문선양과 순전히 언니를 믿었다는 나 사이의 실랑이는 긴 바닷길보다 더 길도록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바다에는 늘 삶이 있다.

그 곳에는 풍경도 있고, 놀이도 있고, 휴식도 있고, 일도 있었다, 바다에는 그렇게 늘 삶이 있다. 바다낚시를 해서 즉석에서 회 뜨는 장면도 볼 수 있었고, 파라솔 아래 잠도 잤으며, 물놀이는 뒷전, 고스톱도 열심히 치는 중이다. 우리는 쉬기 위해, 다음날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 바다를 보러 찾아가지만 그 곳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생선같은 일상이 배어있기에 더 아름답다. 하늘에서는 장마비구름이 점점 가시며 자아내는 구름풍경이 장관을 이뤄 바다의 일상풍경에 더해 빛을 뿜어냈다.

a 하늘구름선물

하늘구름선물 ⓒ 박경내


a 바다의 일상, 삶

바다의 일상, 삶 ⓒ 박경내


a 햇살과 구름 있던 오후, 감포 동해바다

햇살과 구름 있던 오후, 감포 동해바다 ⓒ 박경내


덧붙이는 글 | 2007년 7월 8일 다녀왔습니다~ : )

덧붙이는 글 2007년 7월 8일 다녀왔습니다~ : )
#문무왕릉 #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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